내가 듣고 싶은 말

by 헤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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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집던 과거는 잠시 접어두고, 오늘 상담에서는 현재의 나에 대해 이야기했다. 대외활동 하나에 지원했고, 일주일 동안 소설 두 편을 읽었고, 최근 앱으로 영어 공부를 시작한 나. 나는 한 번도 그렇게 생각한 적 없는데, 선생님께서는 '헤엄씨는 참 도전을 즐겨하네요'라고 하셨다. 매주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것 같다면서. 나는 내가 마냥 정체되어 있다고 생각했었다. 규정 속도가 80인 고속도로에서 고작 5를 밟고 있는 사람이 나인 것 같았다. 선생님의 다정한 시선에서 바라본 내 모습은 달랐고, 그 다름이 나는 퍽 마음에 들었다.

근황 토크는 내 하루 일과로 넘어왔다. 자발적으로 밖에 나가는 일이 없다는 내게, 선생님은 하루에 한 번 바깥 외출은 찬성이라셨다. 밖에 나갈 수 있는 일들을 하나씩 만들어보자고 제안하셔서 내가 나가기 귀찮은 마음을 겨우 딛고 떠올린 것은 아이스크림 할인점 방문이었다. 예전 상담 선생님과도 밖에 나가기 미션을 했었는데 결국 흐지부지됐었다. 솔직히 나는 바깥 외출이 왜 필요한지 아직도 잘 모르겠지만, 확실히 집에만 있었던 이틀 동안 정신건강이 나빠졌던 것은 같다. 이번 주에는 미뤄뒀던 영화도 보러 가고, 약속이 없어도 집 밖에 나가는 날을 늘려봐야지.

한편 비자발적인 외출은 엄마와의 카페 나들이였다. 엄마랑 카페에 가면 어떤 얘기를 하냐는 질문에, 나는 집에 있을 때랑 똑같다고 짧게 대답했다. 노트북을 보는 일이 많아지고 집에만 있으려는 내게 그거 그만 보고 나가서 봉사활동이라도 하라고 소리치는 엄마. 그럴 때 종종 손목을 긋고 싶어진다고 솔직하게 말했다. 선생님은 만약 내 말에 적절히 호응해주는 엄마가 눈 앞에 있다면 어떤 말을 하고 싶냐고 물으셨다. 나는... 내가 노트북으로 무얼 하는지 말할 것 같다. 내 나름의 바쁨을 엄마가 인정하고 지지해준다면. 그것은 지지받은 기억이 없다는 말이기도 하다.

엄마는 여전히 내가 재작년까지 임원을 맡았던 학회 활동을 달가워하지 않으신다. 학회 활동을 하는 1년 동안, 나는 학교 수업이 아닌 다른 모든 활동은 엄마가 싫어한다는 신념을 갖게 됐다. 어쩌면 학교 수업 외의 다른 보상 체계를 전부 잃어버린 이유가 이것이 아닐까 싶다. 겉으로는 학회장으로 온 마음을 바쳐 열심히 일했던 지난 시간을 아름답게 추억하면서도, 속으로는 그깟 학회가 벼슬이냐는 엄마의 말을 흡수해 나도 그렇게 내 노력을 가치 폄하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면 학회장이라는 나의 정체성의 일부에 스크래치가 난다. 이제 스스로에게 흠집내는 일은 그만할 때지.

선생님께서 엄마에게 듣고 싶은 말을 자유롭게 해보라고 하셨을 때, 내가 이렇게 말했나 보다. "지금 너도 어쩔 줄 모르고 헤매고 있는 거 알아. 헤매는 만큼 네 땅이야. 괜찮아.", "내 딸, 지금 이대로도 괜찮아." 어떻게 알았냐면, 선생님께서 내가 하루를 마치며 나에게 했을 때 응원이 될 문장 5개를 쓰는 동안 데스크에 가셔서 이 글귀를 적은 카드를 만들어오셨기 때문이다. 카드에는 [천천히 읽고, 꼬옥 안아주세요]라는 지시사항과 함께 앞뒷면에 내가 엄마에게 듣고 싶은 말이 적혀 있다. 이 카드를 엄마에게 보여드리고 원하는 말을 듣는 게 이번 주 숙제다. 못하겠으면 안 해도 된다고 하셨지만, 용기를 내어 다음 근황 토크 때 해냈다고 말씀드리고 싶다.


image.png?type=w1 내가 내게 듣고 싶은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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