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상담에서는 과거를 안전하게 놓아주는 작업을 하고 있다. 다녀올 때마다 나도 몰랐던 새로운 과거사가 파묘되어 나오고, 별 일 아니라며 넘겼던 일에도 살이 붙으니 얘깃거리가 된다. 지난 시간 잠시 나와 심리적 거리가 비교적 먼 편인 관계까지 나가봤었는데, 오늘은 다시 나와 가장 가까운 엄마 이야기로 돌아왔다. 시작은 엄마와 있었던 에피소드 중 베스트 3개와 워스트 3개를 뽑는 것. 역시나 헤매는 나를 위해 선생님이 먼저 시범을 보이셨고, 선생님의 진솔한 유년기 이야기에 마음이 열려, 나도 입 밖으로 몇 마디를 꺼낼 수 있었다.
가장 좋았던 기억은 내가 백 점을 맞아와서 엄마가 성적통지표 부모님 의견란에 '우리 딸 장하다, 화이팅(하트)'라고 썼던 것. 그 다음은 초등학교 수행평가에서 엄마가 부직포로 커다란 우체통을 만들어준 것, 또 내가 아나운서 역할을 하고 싶었는데 다른 친구의 고집으로 못하게 되자 그건 네 정당한 권리라며 편 들어준 것. 나쁜 기억은 어린 시절 엄마가 나를 훈육하고 체벌한 방식과 연관되어 있었다. 가장 나쁘다고 느낀 건 "이기적인 년"이라며 뺨을 맞은 것. 그리고 엄마가 회초리를 들었던 어느 날 나누었던 대화. 그리고 동생과 나를 집 밖으로 쫓아낸 것. 이 정도였다.
좋았던 기억은 겨우겨우 떠오른 반면, 나쁜 기억은 단박에 떠올라서 나를 불쾌하게 했다. 그 기억에 대해 이야기할 때면 내가 한없이 작아져서 그때 그 어린아이로 되돌아가는 듯한 느낌이 든다. 다행스럽게도 나를 어른으로 붙잡아 줄 선생님이 계셨기에, 나는 나의 유년기 생존법을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었다. 엄마는 내 마음 속의 판관이었고, 엄마가 맞을 만하다고 하면 그런 것이었다. 어른이 되면서 나는 저항하는 법보다 체념하는 법을 먼저 익혔다. 내 동생은 달랐다. 때려도 말을 듣지 않았고, 마음껏 대들었으며, 모면하기 위해 애교를 부렸다. 그런 동생이 부럽기도 했다. 그렇지만 다시 돌아가면 내 동생과 같이 행동할 거냐는 선생님의 물음에, 나는 그런 일은 없을 거라고 대답했다.
평소 매를 맞아도 상황이 더 악화되지 않게 대들지 않고 넘어간 나에게도, 선생님은 억울한 마음이 있었을 거라고 하셨다. 그러면서 종이에 '일 키우지 말자는 마음', '억울함' 두 마음을 그리셨다. 일 키우지 말자는 마음의 대사는 '내가 장녀니까 참아야 해, 엄마가 가뜩이나 힘든데 집안 분위기 흐리지 말자'였다. 억울함의 대사는 '나도 엄마의 불합리한 판결에 이의가 있어, 나도 말하고 싶어'였다. 대변하기 쉬운 마음을 고르라고 하셔서 나는 고민 없이 전자를 선택했다. 내가 '일 키우지 말자는 마음', 선생님이 '억울함'을 맡아 두 마음이 서로 한 마디씩 주고 받았다. 선생님과 손을 잡고, 말을 할 때마다 각자의 쪽으로 맞잡은 손을 끌어당겼다.
누가 이겼을까? 내 예상과는 달리, '억울함'이 이겼다. 손들이 두 사람의 사이를 몇 번 왔다갔다 하다가, 선생님 쪽으로 거의 완전히 넘어갔을 때 내가 참지 못하고 눈물을 흘렸기 때문이다. 억울함 쪽에서 "나도 힘들단 말야"라는 대사가 나오니 완전히 물러설 데가 없었다. 그렇구나. 내가 힘들었구나. 과거에 두고 온 내 마음은 의연한 척 하면서도 사실은 상담실에서의 나처럼 울고 있었다. 이제 그 어린아이를 끌어안고 토닥여 줄 차례. 아이에게 가장 필요했던 것은 자기 얘기를 들어줄 사람이었으니까. 내가 그 사람이 되어야 한다. 스스로에게 순도 백 퍼센트의 이해를 제공하는 연습은 아무리 해도 끝이 없을 것만 같지만, 그래도 성공적으로 나아가고 있는 듯한 기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