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지 않은 생일에게

돌아와줘서 고마워

by 헤엄


새해 인사를 건넨 뒤, 나는 남몰래 손가락을 다섯 개 접는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5일은 내 생일. 오늘은 내 스물 한 번째 생일이다.


올해는 특히 감회가 새롭다. 생일이 다시 돌아올 줄 몰랐기에. 작년 내 생일 소원은 자살이었다. 그 소원을 스스로 들어주려고 한 해 동안 참 많이도 시도했었다. 자살이 셀프 구원이라 믿던 내 핵심 신념은 엄마가 내 생일이면 장난스럽게 부르던 노래 가사처럼 '왜 태어났니'였다. 왜 태어났니. 엄마가 나를 태어나게 한 일을 원망하지는 않았다. 그건 어쩔 수 없으니까. 대신 다이어리에 엑스 자를 그리며 나같은 건 아예 태어나지 말았어야 한다고 썼다. 세상에 존재하는 상태 자체를 취소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런 기능은 없었고, 몇 달이 지나 나는 얌전히 생에 묶여 돌아왔다.


죽지 않고 맞이하는 스물 한 번째 생일. 빠른년생인 탓에 케이크에 큰 초 두 개, 작은 초 세 개가 꽂힌다. 스물셋이면 20대 중반이라는 릴스를 본 적이 있다. 누구는 거기 반박 댓글을 달고, 누구는 좋아요를 누른다. 나는? 내가 공식적으로는 스물셋이라는 사실을 긍정하면서도 20대 중반은 너무 부담스럽다고 생각한다. 무엇이든 될 수 있기에 무서운 이십 대가 얼른 지나갔으면 좋겠다. 매년 생일이 돌아올 때마다 한 해는 더 어른이 된다는 설렘을 느끼곤 했었는데, 올해는 어른이 되어야 한다는 압박감이 든다. 나이 먹는 일에 덤덤하지 못한 걸 보니 내 정신연령은 아직 아이인가 보다.


생일이면 뭔가 거창한 이벤트가 있어야 할 것 같지만, 대부분의 생일날은 여느 하루처럼 무난하게 지나간다는 사실을 경험을 통해 알고 있다. 오늘 내 일정은 상담에 내담자로 참석하기 위해 서울로 올라가는 것이다. 과연 들뜨지 않는 생일다운 차분한 일정이다. 가서 상담 선생님께 생일이라고 말하면 어떻게 반응하실까 상상하는 재미가 있다. 그 정도의 산뜻한 기분만으로도 충분하다. 단지 오늘 하루가 무탈하면 좋겠다. 행복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어른이 된다는 건 어쩌면 무덤덤한 눈으로 나를 둘러싼 것들의 평안을 조용히 소망하는 일일지도 모르겠다.


케이크 촛불을 불면서 내가 축하하는 것은 나의 생존이다. 스물 한 해를 살아낸 기념으로 사진을 찍고, 다음 한 해의 소원을 빈다. 이번 소원은 뭐로 정하면 좋을까. 작년에는 가까운 사람의 안위와 나의 소멸을 빌었었지. 이제는 제발, 넘어지지 않게 해주세요. 넘어지더라도 다시 일어설 힘을 제게 주세요. 그리고 나와 관계맺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대부분 안녕하길 두 손 모아 빌어본다. 촛불을 후, 부는 순간 한 해의 소원이 흩뿌려진다. 덥혀졌던 공기가 식는다는 건 내 소원이 어디론가 전해졌다는 뜻이겠지. 고운 입자가 되어 날아간 소원이 이루어져 2027년 생일도 이 자리에서 무사히 맞을 수 있기를.


민음사 1월 5일자 세계문학일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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