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씻기라는 행위는 왜 이리 귀찮단 말인가. 내가 분석한 세 가지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몸을 일으키는 것부터가 고역이다. 씻으려면 샤워실에 가야 하는데, 안타깝지만 누워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나같은 정신병자에게는 '간다'는 활동 자체가 엄청난 에너지 소모다. 가만히 누워 있으면 공짜로 광합성도 할 수 있고, 몸에서 냄새는 조금씩 나는 것 같지만 뭐 어때 나는 지금 식물인데. 그렇게 씻기를 미루고 미루다 시간은 어느덧 오후. 그러면 이제 슬슬 오늘 하루쯤은 괜찮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망했다.
둘째, 내 맨몸 전체를 봐야 한다. 솔직히 샤워실에 도착해서 옷까지 벗고 나면 샴푸와 린스까지는 어떻게든 하겠는데 바디워시가 가장 큰 산이다. 이 산은 씻기라는 행위의 하이라이트이자, 이 행위를 멀리하게 되는 핵심적인 이유이다. 옷으로 감춘 내 군살이나 흉터, 피부질환까지 남들에게는 사소하겠지만 내 눈엔 결코 사소하다고 말할 수 없는 내 몸의 결점들을 속속들이 봐야 샤워가 끝난다. 몸은 또 어찌나 큰지, 애먼 샤워타월을 박박 문질러도 아직 덜 훑은 부위가 남았다. 그 순간 다시 옷을 입고 샤워를 끝내버리고 싶다.
셋째, 결국엔 우울증과 멀어져야 한다. 사실 씻기 힘들다는 것 자체가 우울증의 대표적인 증상 중 하나 아닌가. 이 증상과 잠시나마 헤어져야 씻기라는 행위가 가능하다. 그러니까 익숙한 삶의 방식대로 살기를 내려놓고, 잠깐 다른 사람을 연기해야 하는 일과도 같은 것이다. 얼마나 큰 용기가 필요하겠는가. 우울증 환자처럼 살기를 멈출 용기를 잃어버릴 때면 '귀찮다'라는 감정이 스멀스멀 치고 올라온다. 그렇다고 귀찮다는 감정이 핑계라는 말은 아니다. 그 감정은 진짜다. 다만 우울증 환자와 나 사이의 간극을 만드는 데 드는 엄청난 비용에 대해 말하려던 것이다. 이 값을 치르지 못하면 씻기라는 행위와 점점 멀어진다.
이 세 가지 이유로 우울증 환자에게 씻기는 귀찮음 덩어리다. 그렇지만 그만큼, 할 가치가 있는 행위이기도 하다. 내가 방금 씻고 와서 하는 말은 아니다. 실은 맞다. 씻으니까 세상이 달라 보인다. 벌써 냄새가 나는 구질구질한 내가 아닌, 브런치 작가인 나로 돌아와서 글을 쓰고 있지 않은가. 아마 아까 씻으면서 무기력, 우울, 또 케케묵은 감정들이 씻겨 내려가서 그런 것 같다. 우울은 수용성이라는 말처럼. 그러니까 씻는다는 건, 묵은 때를 벗겨 나를 다시 세상으로 꺼내는 일인 셈이다.
그러므로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에게, 혹시 무기력하게 누워 있다면 씻기를 강력히 권한다. 처음엔 '씻어야지' 생각만 하는 것으로도 좋다. 그 다음에는 샤워를 했을 때 샴푸향을 떠올려 보고, 묵은때를 벗겨낸 스스로의 모습을 그려보는 것이다. 우울이 만들어낸 샤워를 싫어하는 감각에 잡아먹히지 말자. 그렇게 샤워를 마치면, 오늘도 성공했다고 나 자신을 쓰다듬어 주기를 바란다. 일단 나부터 그렇게 해야 겠다. 오늘도 성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