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살아버림

by 헤엄


그러고 보니 그랬다. 지난 주에 나는 분명 죽으려고 했었다.

모든 게 의미 없다고 여겨지는 하루였다. 아침에는 주치의 선생님을 뵙고 왔지만, '자살사고는 OO씨 몫'이라는 말에 마음이 토라져 있었다. 자살사고를 고쳐주는 게 정신과 의사가 아니라면 대체 누구란 말인가. 알겠다며 진료실 문을 나서면서도 억울하기 그지 없었다. 그즈음 내 자살사고는 극에 달해 숨 쉬듯 자연스럽게 죽음을 떠올리는 상태였다. 상담에서는 다음 주에 어떻게 살아낼지 정했는데, 집으로 걸어오다 보니 그냥 모든 게, 살아있다는 게 귀찮아졌다. 이번 주를 내가 어떻게 버텼는데. 다음 주까지 살라니 너무한 거 아니야?

어떻게 보면 반발심리였던 것 같기도 하다. 그게 삶에 대한 반발이어서 문제였지. 좋아, 삐뚤어질 테다. 우리 집은 16층 오피스텔. 그 위에서 뛰어내리면 몇 퍼센트의 확률로 죽을까. 생각하면서 상담을 마치고 집으로 향했다. 별 생각이 다 들었다. 이렇게 갑자기 죽느냐 사느냐를 정해도 되는 걸까. 뭐 어때, 내가 지금 힘들다는데. 집에 있는 가족들은 어쩌지. 뭐 어때, 내가 지금 죽겠다는데. 집으로 돌아오는 길, 자살은 나를 위한 달콤한 보상처럼 느껴졌고 나는 그 보상을 곧 맛볼 참이었다.

가족들에게는 혼자 집에 돌아가겠다고 말해뒀으니, 준비는 완벽했다. 이제 뛰어내릴 용기만 있으면 되는데 이미 있는 것 같다. 그런데 어라. 저만치서 새까만 형체가 걸어오는 거였다. 몇 번이고 봐서 냄새까지 알 것 같은 카디건을 걸친, 낯익은 여자가. 엄마였다. 내가 죽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인 우리 엄마가, 당신은 아무것도 모르는 채 나를 죽지 못하게 하려고 걸어오고 있었다.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그렇게 죽으려던 나는 여태껏 살아서 글을 쓰고 있다.

그 눈물의 의미는 아쉬워서라고 알고 있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기뻐서였던 것 같다. 나는 철저히 혼자라고 단정짓고 삶의 마지막을 결심한 순간에 누가 나를 붙잡아준다는 게 눈물이 날 만큼 기뻐서. 그러고 보면 엄마들은 참 대단해. 엄마 머리 위에는 레이더라도 달린 것 같다. 딸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감시하는 레이더망. 때로는 이런 계획된 우연이 사람을 살리고, 다시 살고 싶게 만드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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