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불 밖은 위험해

근데 그게 진짜야

by 헤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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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제목에 함정이 있다면, 나는 이불 밖을 정말 '위험하다'고 느낀다는 것이다. 내 병명은 우울증과 PTSD, 그리고 약간의 공황장애로, 다른 문제는 약으로 어찌저찌 다스리고 있지만 최근 가장 애를 먹는 것 하나가 밖에 나가기 어렵다는 것이다. 솔직히 밖에 왜 나가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집순이라면 다들 공감할 것이다. 그러나 내가 가진 병은 집순이를 넘어서서 집 밖으로 나가는 것을 두려워하고, 현관문을 열고 나가기가 벅차며, 바깥 공기와 사람들이 무서울 지경까지 나아간다. 지독한 공황장애의 예기불안 증상이다.

처음 공황이 왔던 것은 하굣길이었다. 요 앞 모퉁이만 돌아서면 집인데 갑자기 토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러더니 심장박동이 빨라지고, 온몸이 얼어붙었다. 선바람이 부는데도 식은땀이 뻘뻘 났다. 말 그대로 하늘이 노래지는 느낌이었다. 뭐라도 붙잡아야겠다는 생각에 허우적거려 봤지만, 아직 이성은 멀쩡한 탓에 다른 사람에게 폐를 끼칠 순 없다고 판단했다. 나는 그날 그 누구에게도 도움을 청하지 못했다. 집까지 어떻게 들어왔는지도 모르겠다. 돌아와서도 한참을 헉헉대며, 나는 죽고 싶은데 죽을 것 같은 건 무서운 상태를 자조했었다. 겨우 처방받은 비상약을 먹고 잠들었던 게 그날의 기억이다.

그 뒤로 2주 동안 세 차례의 공황발작이 더 있었다. 일주일에 두 번 꼴로 발작을 일으켰던 셈이다. '대 공황'의 시기 뒤에는 우울의 시기가 찾아왔고, 나는 몇 차례의 자살시도 끝에 입원을 하게 된다. 이 이야기는 언젠가 다른 글에 더 자세히 하기로 한다. 입원 이후 공황장애는 차츰 나아졌지만, 퇴원을 한 지 몇 주가 지나고부터 외출 자체가 불가한 형태로 다시 찾아왔다. 특히 사람 많은 대중교통, 밀폐된 영화관이 무서웠다. 두 장소 모두 보는 눈은 많지만 내가 쉽사리 도움을 청할 수 없으리라 생각되기 때문이었다. 사람들에게 이런 내 모습을 들킬까 봐 두려웠다.

집 안에는 그래도 통제 가능한 내 세상이 있다. 냉장고 돌아가는 소리, 창문으로 들어오는 빛, 내 물컵 위치 같은 것들. 그런데 문 밖의 세상은 그렇지 않다. 사람들의 시선이나 낯선 공기와 같은 예측할 수 없는 변수들이 홍수처럼 밀려든다. 밖으로 나간다는 건 단순히 물리적인 이동이 아니라, 안전하다고 느끼던 내 세상을 잠시 포기하는 일이다. 그래도 가끔 나가야 할 때가 있다. 그럴 때는 최소한의 동선으로 효율적인 이동을 한다. 정신병원에는 엄마 차를 타고 가고, 카페는 무조건 도보 3분 거리의 프랜차이즈를 이용한다. 운동은 하지 않는다.

평생 이렇게 살 순 없겠지. 아마 주치의 선생님 말씀처럼 '좋아하는 것'과 외출을 결합시킨 무언가가 필요할 지도 모르겠다. 좋아하는 것이 아직은 없지만, 아마 언젠가는 생길 지도. 지금은 그저 주치의 선생님께서 권유하신 대로 정신병원에 딸린 재활센터에 주3회 나가고 있다. 이거라도 하면, 아니아니 이것부터라도 차근차근 해나가면 어떻게든 되겠지 싶은 마음이다. 언젠가의 글은 카페에서 발행할 수 있기를 바라본다. 그날이 오면 오늘의 내가 얼마나 멀리 왔는지 조금은 실감할 수 있을까. 여전히 이불 밖은 위험하지만, 그럼에도 한 걸음쯤은 세상에 기꺼이 내딛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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