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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죠의 삶 Oct 11. 2023

인류애(愛)너지 고갈 사회

세상을 변화시킬 작은 마음에 대하여

  비가 쏟아지는 날이었다. 무거운 가방을 메고 버스에 올랐다. 버스 기사님은 '안녕하세요'라는 내 말과 목례를 가볍게 무시했다. 시내버스에서 흔히 있는 일이라 생각하고 버스 안 빈자리를 찾았다. 무거운 가방과 우산을 양손 가득 들고 축축한 발걸음을 내디뎠다. 한 발자국을 떼는 순간, 버스가 훽-하고 출발했다. 나는 순간 휘청했지만, 곧 중심을 잡아 자리에 앉았다. 날씨가 우중충해서인지 짐이 많아 짜증이 났던 것인지, 나는 목적지를 향하면서 기사님의 무성의한 직업 정신에 불만을 토했다. '비가 많이 오는 날은 바닥이 미끄러워서 조금만 기다렸다가 출발하면 좋을 텐데... 그러면 손님들이 위험하지도 않고...' 물론 아무에게도 들리지 않게 혼자 속으로만 토해냈다. '기사님은 운전석에만 있어봐서 탑승객의 입장을 모르나? 에이 설마.'라는 생각들이 꼬리를 물며 마음을 불쾌하게 물들였다. 목적지에 도착할 때쯤 난 버스나 택시에서 불친절한 기사님 때문에 겪었던 일들을 경유하며 '한국 대중교통은 이래서 안돼!'라는 결론까지 도달해 있었다. 버스는 정류장에 도착했다. 나는 재빠르게 내리려 발걸음을 서둘렀다. 토라진 마음에 빨리 내리고 싶었던 것은 아니다. 나는 빨리 내리지 않으면 기사님과 승객들이 불편할 거라고 생각해 늘 나를 재촉하는 편이다. 그때, 기사님이 세상 밝고 상냥한 목소리로 '안녕히 가세요'를 외쳤다. 어벙벙한 채로 버스에서 내린 나는 나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내가 겪은 날카로운 단면만 보고 기사님을 재단했다. 나는 치닫는 양극화를 보며 항상 우리 사회에 관용이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관용이 부족한 것은 나도 마찬가지였다.


  오늘날, 우리 지구에는 너무 많은 문제가 있다. 지구 온난화, 화석 연료 고갈, 빈부격차 등 오래된 문제들이 매일 새로운 이슈를 만들어 우리를 괴롭히지만, 그중 내가 주목하고 싶은 것은 바로 인류애 고갈이다. 사람들은 너무 쉽게 타인을 혐오한다. 나는 누구보다 빠르게 기분이 나빠지는 방법을 안다. 바로 SNS 댓글을 읽는 것. 인간이었던 것이 남긴 잿덩어리 같은 글이 하얀 댓글창을 더럽히는 것을 보면 화가 난다. 최대한 무시하고 지나가려고 하지만 쉽지 않다. 멸시와 조롱, 혐오에 무뎌져 가는 나 자신이 싫다. 한 때는 이런 생각을 했다. 댓글 창을 누르면 카메라가 나와 자신의 얼굴을 비추고 난 후, 댓글을 쓸 수 있다면 악플이 줄어들지 않을까? 거울 속 자신을 똑바로 바라보고 외칠 수 있는 말만 남겼으면 좋겠다. 상대를 수용하는 태도도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현실 세상은 흑과 백으로 나눌 수 없는데 인터넷 세상은 마치 선인들과 악인들의 세상으로 나누어져 있다. 어쩌면 우리는 인간 그 누구도 겪어보지 못한 사후 세계를 체험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앞서 말했지만 나조차도 이러한 사고에서 완벽히 자유롭지 못하다. 그래서 나는 버스에 내려 길을 걸어가면서 다시 한번 스스로 다짐했다. 누군가를 옳고 그름으로 판단하기 전에 딱 한 번만 사랑해 보자고. '저 사람도 뭔가 사정이 있겠지, 내가 모르는 그 무언가가 있겠지'하고 생각해 보려 한다. 지구를 살릴 신재생 에너지처럼, 인류를 살릴 신재생 애(愛)너지는 '나'로부터 뿜어져 나오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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