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직도 비행기 이륙 직전에 심호흡을 하고, 비행기가 이륙할 때 옆 사람의 손을 (물론 아는 사람이라는 전제하에) 찾아 꽉 잡는다. 난기류 때문에 기체가 심하게 흔들릴 때에도 눈을 질끈 감고, 바로 옆에서 들려오는 엔진 소리를 듣지 않으려 귓속에 이어폰을 깊숙이 집어넣는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답답한 상황이 제일 두렵다. 내가 타고 있는 비행기가 추락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를 때를 걱정한다. 그 걱정이 사실이 되지 않길 바라며 매번 가슴을 졸이며 비행기를 타지만 비행기가 무사히 땅에 착륙하면, 언제 걱정을 했는지 모를 정도로 비행기를 타고 지구 반대편으로 건너 온 것을 잘했다고 생각한다.
여행은 낯선 곳으로 떠나기 위해서, 늘 어떤 매개체를 통해 새로운 그 곳으로 가야 한다. 그 곳으로 가기 위해 나는 내가 무서워하는 비행기를 타고 10시간을 넘게 엄청나게 높은 하늘 위에 떠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곳으로 가려면 우리나라에서 당연했던 것들을 그 곳에서도 당연할 것이라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낯선 곳에서의 여행은 나에게 너무 당연하지 않은 것에 부딪치는 것의 연속이다. 외국인이 내가 구사하는 영어를 알아들을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배가 고프니 먹고 싶은 것을 주문하는 것,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강매를 당할 것 같으니 아는 영어를 총 동원해서 항의하는 것, 난생 처음 가보는 곳에서 어딘가로 가기 위해 구글 지도 하나에 의존해 길을 찾는 것, 그리고 같이 여행하는 가족의 구성원과 (조금 많이) 의견충돌이 생기는 것… 내가 가고 싶은 곳을 가기 위해, 그 곳의 사람들에게는 당연할 모든 것을 새롭게 받아들이는 것은 부딪치는 사람이 감수해야 할 모든 것이었다.
그렇지만 나는 그곳의 낯선 것들에 부딪치지 않았다면 떠나지 못했을 것이다. 부딪치지 않았다면 나는 늘 제자리에 머물러 있을 것이다. 부딪치지 않았다면 두려움을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또, 부딪치지 않았다면 두려움이 무엇인지도 모를 것이다. 그리고 그것만큼 후회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