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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하 Aug 05. 2018

Decide Who You Are

Decide Who You Are.


뉴욕 현대 미술관(모마, MoMA)에 열린 흑인 예술가 아드리안 파이퍼(Adrian Piper)의 전시에 있었던 한 작품의 제목이다. 작품은 미국 사회에서 오래 전부터 흑인이 차별 당했던, 차별 당하는 현실과 그 사이에서 ‘너’는 어떤 태도를 취할 것인지 물어본다. 미국 여행에 오기 전에 본 영화 <디트로이트>의 배경이 된 알제 모텔 살인사건의 피해자들의 사진 또한 전시회 속 액자 안에 걸려있었다. 영화 속 배우들과 닮은 실제 피해자들은 경찰에 저지 당해 공포에 찬 눈으로 카메라를 응시하고 있었다.

<Decide Who You Are> 작품.

아드리안 파이퍼의 전시는 모마의 맨 꼭대기 층인 6층에 자리잡고 있었다. 바로 아래 층인 5층에는 가장 많은 사람들이 보고 싶어하는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에>와 모네, 드가, 마티셰 등 여러 유명한 화가들의 작품들이 함께 전시 되어있다. 사람들은 5층, 고흐의 작품 앞에 굉장히 붐빈다. 세상에 단 하나뿐인 미술 작품을 보기 위해 앞자리를 차지하려고 쭈뼛쭈뼛 움직인다.


6층의 전시는 너무나도 현실적인 미국의 단면을 보여주지만, 바로 아래층의 고흐의 작품보다 관심을 끌지 못한 것 같았다. 아마 작품들이 너무나도 현실적이라서 그런 것 일까. 미국인들은 자신이 살고 있는 사회의 단면을 적나라하게 표현하고 풍자한 미술 작품을 고흐의 작품만큼 뚫어져라 응시하거나 그 앞에서 인증샷을 찍지 않았다.

나는 내가 약자에게는 한없이 약하고, 강자에게는 한없이 강한 사람이 되길 바랬다. 적어도 불의를 보고 넘어가거나 모른척하지 않는 것부터 시작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나름대로 내 자리에서 최선을 다 했다고 생각한 일들도, 결국엔 약자에게 강해지거나 강자에게 약해져서 이룬 일들 같았다. 아무 부끄러움 없이 사는 사람들이 세상에 어디 있겠냐 싶지만, 나는 권력이나 힘으로 자신의 자리를 지키는 사람들이 너무 싫었고 그런 사람들 곁에 가까이 가고 싶지도 않았다.


사람들에게 권력은 곧 사람을 살리고 죽일 수 있는 힘이었다. 그리고 아직 미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에서의 인종차별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그 사이에서 내가 누구일지 결정하는 것은 반강제적이면서도 폭력적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렇지만 삶에서 어떤 태도를 취할지 결정할 수 있는 것, 그게 우리가 가진 유일한 자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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