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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험설계사 홍창섭 Jun 24. 2020

Part 0 프롤로그

챔피언이 아니어도 괜찮아

                                                                                                                                                             

올해로 벌써 경력이 만 10년이 넘는 보험인으로 살고 있지만, 사실 나는 단 한 번도 챔피언은커녕, 인정받고 실적 좋은 보험 설계사조차 아니었다. 오히려, 매주 매월 단 한건의 계약조차 못하고, 힘들어하고, 저실 적으로 인해 항상 해촉 및 생활고의 고통 속에서 보낸 시간이 많았던 저실 적 설계사 쪽에 더 가까웠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결과적으로는, 그래도 7년 정도의 영업기간 동안, 전체 보험설계사 중 상위 1%라 불리는 MDRT를 두 번 달성했고, 연도상도 2번(1번은 세일즈 매니저), 베스트 루키라 불리는 신인상도 받았고, 대부분 조직의 설계사 중 상위 3-40%는 한 평균 이상의 성과를 낸 설계사인 거는 같다.


솔직히 난 내가 생각한 것보다는 굉장히 잘했다고 생각이 든다. 난 정말 보험영업이 맞지도 않고, 보험회사를 선택했음에도 처음에는 보험영업을 할 생각도 없었고, 너무나 혼자 있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어서, 보험영업을 잘하기 어려운 성격이고, 친구도 없고, 환경적인 제약이 많았기에, 다시 돌아간다 해도 이보다 더 잘했을 것 같지가 않다. 내가 어떻게 이렇게 그래도 10년을 보냈는지 나도 참 신기하고, 한편으로는 너무나 대견하다.


단 한 번도 영업 실적 챔피언을 꿈꾸거나 목표를 삼지 않았기에, 챔피언을 못한 것이 아쉽지도 않다.


나는 주인공이 되거나 주목받는 것도 싫고, 조용히 혼자서 구석에 짱 박혀 만화책 보는 게 세상에서 젤 좋은 사람이지만, 한편으로는, 누구에게 도움을 주고, 이로 인해 그 사람의 성장을 보는 게 행복하고, 오지랖 떨면서, 내가 다 해버려야 속이 편한 성격도 있다. 누구 지시받는 것도 싫고, 구속되는 것도 싫고, 뭐든 내 맘대로 하는 게 제일 좋은 자유분방한 성격도 있다. 한 번도 외롭다는 걸 느껴본 적이 없는 성격과, 누구를 도와주지 않으면 병이 생기는 성격이 공존하는 게 나다. 엄청 예민해서 다른 사람들의 감정을 정말 잘 느끼는 사람이지만, 한편으로는 내가 관심 없는 일에는 1도 기억을 못 하는 무신경하기도 하고, 하루 종일 이야기해도 하나도 지치지 않는 수다맨이면서도, 말 한마디 안 해도 답답하지 않은 조용한 사람이기도 하다. 새로운 사람들 만나면 정말 잘 어울리는 것 같아 보이지만, 집에 오면 탈진할 만큼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는 성격이고, 그래서 친구를 사귀는 게 너무나 힘들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남을 속이거나, 계산기 두드리거나, 내 거 챙기지는 못하고, 내가 좀 더 손해 보는 게 편한 정말 고지식한 사람이다.


그런 내가, 대학교와 직장생활을 하긴 했지만, 친한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는 낯선 대구에서, 멀쩡히 그것도 입사 2년 만에 비약적인 업무성과로 공로상도 받고에, 최단기 승진 등 승승장구하며 모든 부서로부터 스카우트 제의를 받으며 다니던 외국계 기업을 그만두고, 영업을 한 번도 안 해봤던 내가 정말 안 어울리는 보험일을 한다고 했을 때 다들 걱정이 많았다.


그리고 정말 많이 들었던 질문...


'창남 씨(개명 전 이름)는 왜 보험일을 합니까?'


 이 일을 할만한 사람이 아닌데, 왜 굳이 이런 험한 일을 선택을 했는지 궁금해했다. 사실 최소한 대구에서는 그래도 제일 좋은 학력과, 직장을 가지고 성공적인 사회적 커리어를 쌓고 있었고, 안정적인 미래까지 보장된 상황이었고, 당장 큰돈을 벌어야 할 만큼 경제적으로 어렵거나, 내가 또 돈 욕심이 있는 사람도 아니고, 그들이 알던 일반적으로 보험일을 하는 보험 아주머니나 아저씨와는 너무나 다른, 나름 엘리트 샐러리맨이 보험일을 하니 신기해했다. 나도 살면서 영업이라곤 안 해봤고, 심지어 29살까지 사법고시 준비하느라 신림동 고시촌에서 공부만 했던 내가 그렇게 힘들게 들어간 외국계 기업을 그만두고 이일을 선택할 줄은 전혀 꿈에도 생각 못했다.


그래도 운명처럼 나는 이일을 선택했고, 10년이 넘는 시간이 지났다.


아무리 크게 돈 욕심이 없고, 영업 챔피언을 꿈꾸지 않았던 사람이라 해도, 엄청난 반대와 걱정을 뿌리치고 선택한 일에 대한 책임은 엄청 부담스러웠다. 아직 어린 두 아이의 아빠로서, 아이들을 전적으로 돌볼 수 있는 100% 엄마의 삶을 원했던 전업주부인 아내의 몫까지, 집안의 경제를 책임진 가장이, 한 달에 한건의 계약조차 못해서 월급 0원이 나올 때는 정말 죽고 싶을 만큼 힘들었다. 그렇다고 다음 달에 더 나아진다는 희망도 없고, 그렇다고 이 일을 그만두고 선택할 수 있는 대안도 없었기에, 아무런 스케줄 없이 보내는 하루하루는 지옥과 같았다. 정말 절박하다면, 자존심 다 버리고 누구에게라도 무릎을 꿇는 한이 있어도 계약을 부탁이라도 하던지, 길거리 사람들 붙잡고 계약을 팔아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는 무능력한 나에 대한 실망도 컸다. 그래도 내 진심을 알고, 응원해주고 도와준 한 분 한 분의 고객님들에 생겼고, 조금씩 조금씩 성장하여, 어느덧 입사 10년을 지날 수 있었고, 최고의 영업 실적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감히 고객에게는 최고의 설계사였다고 자부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서 대단한 사람도 아니고 회사에서 조차 인지도도 없는 보통의 사람이지만, 나에게는 정말 대단한 자부심인 보험인 10년을 자축하고, 지금의 나를 있게 해 준 분들에 대한 감사한 마음을 담아, 그간 내가 어떻게 살았는지, 어떤 생각을 했었는지, 그리고 어떻게 성장해 갔는지, 지난 과거에 대한 기록을 정리해보고, 이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앞으로 내가 어떤 꿈을 꾸고 어떤 미래를 살고 싶은지 대한 생각을 함께 나누고자 이 글을 쓰게 되었다. 지난 시절을 함께해준 분들에 대한 감사 편지이기도 하고, 앞으로 함께 할 분들에게 보내는 자기소개서 이기도 하고, 그리고 보험 일이나 어떤 일을 시작하고자 하는 분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글이 되기를 바라본다.                                                         




  2020년 2월 라이프 파트너스 홍창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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