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그저께 시댁에 갔는데, 엄마는 나와 동생 이야기하시다가 결국 눈물을 보이셨다. 다른 사람 앞에서 우시는 걸 본 적이 없는데 자식이 자신의 뜻대로 안 된다 생각하시니 당황스럽고 섭섭하시고 서러우신 것 같았다. 나는 다소 미안한 마음은 들었지만, 울지도 않았고, 예전처럼 죄송하다고 하지 않았다. 실제로 딱히 잘못한 것이 없다. 하고 싶은 말이 많지만 엄마를 너무 잘 알기에 여러 말없이 결혼할 마음이 없는 동생 결혼 압박하지 말고 자식을 손님처럼 대하면 엄마의 삶이 더 편해질 수 있다고 말씀드린 것뿐인데.
가난하고 부부 싸움이 일상인 집의 맏딸로 태어나 어릴 적부터 고생하고, 아빠 만나 계속 고생하고, 모든 게 다 나와 동생을 위한다는 명분 아래 지금까지도 고생하고 계신다. 엄마는 자신의 몸이 힘들어도 누군가를 위해 무언가를 해줄 수 있을 때 그게 행복이라고 늘 말씀하시지만 받는 사람 입장은 또 다를 수 있다.
많은 엄마 세대 부모님들처럼 엄마의 희생은 보답을 요구해 왔고 현재진행형이다. 엄마께서 고생하신 걸 보면서 자라왔기에 지금까지 엄마 말 잘 듣는 착한 딸 코스플레이를 하며 살아왔다. 결혼하고도 내 머리 자르면서 먼저 엄마에게 물어봤고, 나 스스로 양말 한 켤레 사본 적 없다. 책 읽고 공부하는 것 이외에 내 모든 것을 다 통제하려고 하셨기에 그냥 책상 앞에 앉아 책을 본 것일지도 모른다. 적어도 책 보고 있으면 조용히 있을 수 있으니.
엄마와의 일들을 생각날 때마다 조금씩 여기에 적어가면서 풀어버리려고 한다. 수없이 정신과 상담을 생각했을 정도로 내 마음에 응어리가 많다.
오늘 아침 동생이 내게 쓴 일기를 보니 엄마께 약간 죄송한 마음이 든다고 했다. 하지만 최근에 읽은 공지영 <그럼에도 불구하고>에서 말했듯 약간 미안한 관계가 가장 좋은 관계라고 썼다. 이 문장을 읽는 순간,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다. 동생은 내가 이 책을 읽고 나면 엄마와 관계를 끊게 될지 모른다고 했다. 책을 읽는 내내 나랑 비슷한 점이 너무 많아 계속 내가 읽어야 한다며 여러 번 말했다.
가족이 연을 끊고 사는 건 지금 내 상식에는 아닌 것 같다. 하지만 이 세상 많은 일들을 단정 지을 수 없다는 것을 나는 이제 안다.
여러 가지 면에서 극단적인 엄마 모습을 보면서 나는 극단적이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다. 이 책을 읽고 설령 가족과 연을 끊고 싶은 마음이 생기더라도 끊지 않고 약간 미안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살아가길 바란다.
아, 이게 얼마 만에 느껴보는 고요함인가. 아주 오랜만에 모든 게 잘 될 거라는 평온한 마음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