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pirational : 세번째 이야기
엄마에겐 내일이라는 하루가 얼마나 간절했는지
내가 열한 살이 됐을 때
엄마의 내일엔 더 이상 해가 뜨지 않았다
사춘기가 시작되던 열한 살. 엄마는 세상을 떠났다. 매일 밤, 엄마가 너무 보고 싶어 그리움과 답답함을 그저 종이에 끄적일 수밖에 없던 소녀는 어느 날부터 자신이 쓴 이야기에 음을 붙여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아무리 슬픈 감정도 노래가 된 후에는 더 이상 슬프지 않았고, 주체할 수 없는 감정을 쏟아내는 동안 2,000여 곡의 노래가 탄생했다.
어려운 가정 형편 탓에 누구에게도 음악에 대한 열정을 내비치지 않았고 차선책으로 사범대에 진학했지만 그 마음을 누군가 알기라도 하듯 우연한 기회가 찾아왔다. JTBC 예능 프로그램 <효리네 민박>을 찾은 그녀의 이야기는 시청자들의 마음을 울렸고, 결국 그녀는 가족들의 응원 아래 그토록 원하던 음악을 시작했다. 단 한 번도 정식으로 음악을 배운 적이 없지만 꼭 누군가의 마음을 위로하는 음악을 하고 싶다 말하는 그녀. 스스로를 ‘청춘 라이터’라 소개하는 그녀의 이야기가 궁금했다.
Interviewee
LIFEPLUS 앰배서더 3기
정예원(인천대학교 국어교육과)
우리의 내일은 덜 아팠으면 좋겠다.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안녕하세요. 내일을 위해 노래하는 싱어송라이터 정예원입니다.
처음 음악을 시작하게 된 본인만의 계기가 있나요?
열한 살에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홀아버지 아래서 힘든 어린 시절을 보냈어요. 당시엔 어린 마음에 하루 종일 엄마가 보고 싶었어요. 답답하고 슬픈 감정을 안고 잠드는 게 싫어서 밤마다 일기처럼 가사를 썼어요. 음정을 넣어 흥얼거리기도 했고요. 가사를 쓸 때면 엄마가 더 보고 싶어서 기운이 우울해지기도 했는데 이런 감정을 잘 활용하면 좋은 노래를 만들 수도 있다는 걸 알게 됐던 것 같아요. 가끔 친구들은 엄마가 없는 아이라고 놀렸지만 그로 인한 슬픔 역시 노래로 만든 후에는 더 이상 슬프지 않았어요. 속이 좀 후련했고 뿌듯한 기분도 들었죠. 아픈 기억들이 좋은 노래가 될 때 더 이상 슬퍼하지 않고 깊이 잠들 수 있었어요. 그렇게 시작된 것 같아요, 제 음악은.
사실 듣거나 부르기만 할 수도 있는데 어려운 음악을 굳이 만들어 부르는 이유가 있나요?
사실은 한 번도 음악을 제대로 배워본 적이 없어요.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악기 연주를 하기 위해선 이를 뒷받침해줄 만한 좋은 환경과 비싼 도구가 필요하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작사나 작곡은 아무런 준비물이 없어도 할 수 있는, 일종의 놀이 같은 거였어요. 녹음 기능이 있는 2G 휴대폰, 메모지, 펜 한 자루만 있으면 하루 종일 신나게 놀 수 있었죠.
수업 시간에도, 잠들기 전에도 생각나는 주제나 하고 싶은 말이 생기면 무조건 종이에 적었어요. 그런 다음 휴대폰 음성 녹음을 키고 말에 음을 붙여 흥얼거리면 노래가 됐죠. 사실 그게 작사인지 작곡인지도 모르고 재미있으니까 그냥 한 것 같아요. 저만의 놀이였던 거죠. (웃음) 글을 잘 쓰기 위해서는 내용 상의 큰 구조를 볼 수 있어야 하고 최소한의 맞춤법 공부라도 필요하잖아요. 그런데 음악은 정답에 구애받지 않고 저만의 세계를 그릴 수 있어 특별히 어렵고 힘들지 않았어요. 그렇게 놀이를 하듯 꾸준히 작사 작곡을 하게 된 거고요.
주로 어떤 장르를 해요?
저는 인디 음악을 하고 있어요. 어릴 때는 인디라는 장르를 잘 몰랐어요. 다만 제가 만드는 노래의 정답이 저한테 있어서 참 좋았죠. 당시에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사람들이 말하는 노래 잘하는 사람은 파워풀한 노래를 잘하거나 고음을 잘 내는 사람이구나’ 하고요. 그래서인지 저는 어릴 때부터 한 번도 노래 잘한다는 얘길 들어본 적이 없어요.
기성곡에는 어느 정도 정답이 있잖아요. 최대한 기성 가수와 똑같이 불러야 노래방 점수도 100점이 나오는 것처럼요. 그에 반해 저는 기술적으로 뛰어나진 않지만 제 생각이 담긴 이야기를 저만의 보이스로 부르는 쪽이에요. 노랫말을 하나의 장르 또는 작품으로 봐주시는 분들이 생겼는데 생각해보면 그게 인디였던 거죠. 예전에는 다이내믹하고 기승전결이 명확한 형태를 노래라고 인정했다면, 요즘에는 편안하게 감동을 느끼고 힐링할 수 있는 모든 부분을 노래로 인정해줘서 기뻐요. 그게 제가 음악을 표현하는 방식이니까요.
어떻게 곡의 영감을 받고 노래를 만들어 내나요?
일단 가장 하고 싶은 이야기 한 줄, 즉 후렴 가사를 중심으로 곡을 써 내려가는 편이에요. 후렴 가사가 떠오르면 곧바로 노트나 이면지에 적어둬요. 그 문구를 아주 오래도록 관찰하고요. 거기에 살을 붙여 후렴을 먼저 만든 뒤 내용을 풀어 1절 가사를 쓰고 멜로디를 붙여요.
최근 인스타그램에 “언제부터 머물렀는지 딱히 알 수 없게”라는 문구와 함께 흑백 사진 한 장을 올렸어요. 그저 사진에 어울리는 글귀를 끄적인 것뿐이었는데 문장을 가만히 들여다보니 최근 저를 시샘하거나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이 하던 말들이 생각났어요. “사범대생이면 임용고시나 준비 잘하지, ‘효리네 민박’ 한 번 출연하고 겉 멋들어서 네가 잘 나가는 것 같냐?” 하는 이야기들이요.
음악이라는 길에 갑자기 들어섰다는 이유만으로 이 길이 제 길이 아니라며 비아냥거린 건데, 사실 사람들은 제가 언제부터 음악을 시작했는지 모르잖아요. 제가 열한 살 때부터 홀로 약 2,000여 곡을 쓰며 꿈을 키웠다는 사실 역시 알 길이 없죠.
이렇게 하나의 문장을 적어 두고 관찰하면서 일상과 견주어 볼 때 노래가 만들어지는 것 같아요. 가사의 소재는 주로 제가 살아온 삶에 관한 이야기나 일상적 소재에서 많이 얻는 편이에요. 거리의 간판, 언젠가 내가 쓴 문장 하나 등을 오래도록 관찰하면서 말이죠. 보통 가수들은 사랑 이야기를 소재로 많이 사용하는데, 저한테 아직 사랑은 어려운 것 같아요. 그래서 삶이나 청춘에 관한 소재를 더 많이 다루는데 제가 살아온 삶 속에선 사랑보다 가족이, 청춘이 더 중요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2,000여 곡이나 되는 노래를 만들었다니 정말 대단해요! 그런 무한한 영감은 대체 어디서 나오는 거예요?
막상 대답하려니 현재 제 상황이 좀 아이러니하네요. 지금 굉장히 슬럼프거든요. 그래서 곡도 잘 안 나와요. 곡을 쓰겠다고 자리에 앉아도 예전처럼 잘 써지지 않는 것 같아요. 음악을 만들어야 한다, 앞으로 음악으로 돈을 벌어야 한다고 생각하니 오히려 곡이 안 나오는 것 같아요. (웃음)
어렸을 때 제게 음악은 놀이였어요. 돈 안 드는 저만의 놀이! 막 글을 읽기 시작한 아이는 눈에 보이는 글자를 다 읽고 다니잖아요. 저 역시 그저 떠오르는 생각과 흘러나오는 모든 감정을 다 노래로 만들던 것 같아요.
얼마 전 ‘네이버 뮤즈온’ 본선 준비를 위해 PD님께서 음악에 관한 소품 두 가지를 챙겨 오라셨어요. 열한 살 때부터 썼던 가사 노트 두 어 권을 가져갔죠. 노트 사이사이에 작은 메모지나 일수 메모지 몇 백 장이 엄청 많이 끼어 있었는데 그걸 보고 스태프분들이 다 웃으시더라고요. 생각나면 아무 종이나 막 찢어서 썼던 것 같아요. 학교 수업 때도 영감을 받으면 메모장에 쓰고 교과서 뒤에 숨기기 일쑤였죠. 저의 영감 노트는 제가 공부했던 모든 책 사이사이에 끼어 있어요.
좋아하는 뮤지션이나 음악 활동에 모토가 되는 롤모델이 있나요?
너무 많아요. 제 방 한 쪽 벽에 A4용지를 붙이고 닮고 싶은 롤모델들을 붙여 놨어요. 예를 들어 ‘무대 장악력과 신나는 삶에 대한 음악’이라는 키워드로는 밴드 잔나비 사진이 붙어 있어요. 뮤지션마다 배울 점이 다르고 많은 것 같아 그렇게 세분화했어요. 요즘에는 선우정아님, 아이유님, 옥상달빛님 이렇게 세 가수를 가장 좋아해요. 선우정아님은 재치 있고 확실한 가사 색깔, 아이유님은 사랑스러운 감수성과 중심 있는 음악, 옥상달빛님은 청춘을 응원하는 노래를 부른다는 게 매력적인 것 같아요.
어렵지만 딱 한 분만 꼽아보자면 옥상달빛님이 제가 지향하는 가장 이상적인 뮤지션인 것 같아요. 거창하지 않고 소소하게, 그저 말을 건네듯 툭툭 청춘을 응원하는 노래를 부른다는 점이 참 좋아요. 다른 한편으로 선우정아님처럼 특유의 그루브는 못 낼 것 같고, 제가 아이유님처럼 대중 가수가 될 것 같다고 생각하지는 않거든요. (웃음) 하지만 두 분께 음악적 영감과 자극을 많이 받아요. 최근에도 선우정아님이 작곡하신 ‘쌤쌤’을 들으며 슬럼프였음에도 음악을 만들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어요.
그걸 왜 갖고 싶은데 갖고 뭘 할 건데
지금 내 간절함 과연 영원할까
- 선우정아, 쌤쌤 中
미래에 대한 불안감은 없나요?
제가 베이비시터나 카페 바리스타 등 알바를 여러 개 하고 있다는 얘기를 하면 듣고서 놀라는 사람이 많아요. 1인 기획사 식으로 곡을 만들다 보니 사실상 돈이 많이 들어가요. 그냥 모든 게 다 돈이에요. (웃음) 믹싱이나 마스터링 곡을 만들면 사실상 돈을 얼마나 들이느냐에 따라 곡의 퀄리티가 달라지는 걸 느껴요. 돈 없는 대학생이라 가장 싼 녹음실에서 녹음하는 게 속상할 때도 있어요. 버는 것보다 쓰는 게 많은 게 지금 제 현실이고요. 그래도 좋으니까, 적어도 지금은 후회 없는 내일을 살아보려고 해요. 우리의 더 나은 내일을 위해서 말이에요.
음악 활동에 해오는 데 있어 어떤 터닝포인트가 된 순간이 있었나요?
대학교 2학년 때 <효리네 민박>이라는 프로그램에 출연했어요. 그곳에서 제 노래와 삼남매의 사연을 듣고 많은 분들이 제 꿈을 응원해 주셨죠. 그중에서도 제가 음악을 다시 해봐야겠다고 결심하게 해준 메시지가 하나 있어요. 제 노래를 듣고 큰 위로를 받았고 자살하려던 마음이 누그러졌다는 메시지였죠. 이렇게 어려운 친구들도 다시 내일을 꿈꾸는데 저 역시 다시 내일을 살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전혀 특별하거나 대단하지 않은 내 음악도 누군가에게는 큰 응원과 위로가 된다는 걸 깨달은 순간이었죠. 그렇게 <효리네 민박>이라는 프로그램에 출연한 이후 가족들에게 처음 21년 동안 이불 뒤집어쓰고 몰래 만들어온 음악을 공개했어요. 프로그램을 통해 제 열정을 본 가족들이 음악 활동하는 걸 허락해 줬고요.
내가 만든 음악만이 가지는 특별함이 있다면?
저는 인디 장르, 그중에서도 어쿠스틱 토크 음악을 하고 있어요. 삶과 청춘에 대해 어설프더라도 있는 그대로 이야기하는 사람 냄새나는 노래를 만드는 중이에요. 저는 사람에게 사람을 전하고 싶어요. 사람이란 글자를 뭉치면 ‘삶’이 되잖아요. 처음에 음악을 안 하려고 했던 이유가 제가 특별하지 않아서였는데 지금 음악을 계속하려는 이유 역시 제가 특별하지 않아서예요. 평범한 사람 중에서도 가장 평범한 사람이 되어 음악 활동을 하고 싶어요. 제가 저와 비슷한 감정을 느끼고 노래하는 사람에게서 좀 더 진솔한 위로를 받듯 보다 많은 사람들이 제 노래에 공감하고 이를 통해 진솔한 위로를 받았으면 해서예요.
사범대생 정예원 vs 뮤지션 정예원 중 어느 쪽이 더 익숙한가요?
과거에는 인천대학교 16학번 정예원에 가깝게 살았다면, 현재는 청춘 라이터 정예원으로 지내고 있는 것 같아요. 예전에는 음원 사이트에 정예원을 검색해도 아무것도 안 나왔는데 지금은 노래가 나와요. 예전에는 음악을 할 때 주변에서 네가 무슨 음악이냐며 “임용이나 준비하지 헛짓거리 하지 마라!”라는 말에 가장 상처를 받았어요. 솔직히 저조차도 정말 헛짓거리가 되는 건 아닐까 불안하기도 했고요. 가족이 저를 위해 희생해 준 덕분에 제가 꿈을 택할 수 있었는데 혹시라도 헛짓거리가 된다면 너무 미안할 테니까요. 근데 최근에는 이 일이 제 좌우명이 됐어요. “내 인생의 최고의 헛짓거리를 하자!”
오기가 생긴 건지도 모르겠어요. 뭐든 증명해 보이겠다는. 어차피 해봐야 알잖아요. 재미있는 건 최근에 저를 보는 시선이 조금 달라졌다는 거예요. 친구들은 사범대 최고의 아웃풋인 선생님 된 사람보다 제가 더 잘 됐다 말하기도 해요. 그때보단 조금 더 뮤지션에 가까워졌기 때문이 아닐까요? 내년에는 더 이상 휴학을 할 수 없는데 학교를 더 다닐지 음악에 집중할지 고민 중이에요.
정예원에게 Inspirational Wellness란?
“오늘 하루를 잘 살아줘서 너무 고맙고 내일도 한 번 잘 살아내 보자. 우리의 내일이 좀 더 행복하고 설렜으면 좋겠어.”라는 메시지를 내 음악에 담아 많은 사람들에게 위로를 주는 것. 그게 저만의 Inspirational Wellness예요.
자신의 노래 중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곡 또는 꼭 들려주고 싶은 곡이 있나요?
음.. 조금 어렵네요. (하하) 하나를 꼽으라면 올 3월에 데뷔 앨범으로 냈던 ‘나의 작은 별에게’라는 곡이 아닐까 싶어요. 사실 이 곡은 제가 자존감이 바닥을 찍던, 힘든 시기에 쓴 곡이에요. 이 곡에서 제가 제일 좋아하는 가사는 “차라리 별이 아닌 어둠으로 태어나 어딜 가든 묻히기를 바라, 차라리 별이 아닌 별똥별로 태어나 단 한순간이라도 빛을 보길”인데요. 누구나 자존감이 바닥인 순간이 오지만, 그 시기와 별개로 너는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있는 그대로 충분히 아름답고 충분히 빛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기 때문이에요. 슬럼프를 겪을 때 저게 이런 말이 정말 필요했고, 이제는 그 시기에 있을 누군가에게도 되게 해주고 싶은 말이었던 것 같아서 이 노래가 제일 소중한 것 같아요. 제 아픔이 또 하나의 소중한 노래가 돼버렸네요. (하하)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하네요.
‘월견초’라는 미니앨범을 완성하는 거예요. 월견초는 한글로 달맞이꽃이라는 뜻으로 밤에 피는 꽃을 뜻해요. 비록 현실이 깜깜한 밤이더라도 꿈 하나 보고 꽃을 피우려 애쓰는 청춘들에게 바치는 노래죠. ‘나의 작은 별에게’라는 노래와 ‘리틀 포레스트’라는 곡이 나왔고 세 번째는 조만간 나올 예정이에요.
장기적 목표는 부자는 되고 싶지 않은데 (웃음) 그래도 조금은 영향력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제 꿈은 사람들에게 응원과 위로를 줄 수 있는 가수인데, 생각해보니 아무리 곡 속에 좋은 메시지를 담아도, 2,000여 곡의 자작곡을 써도 결국 들어주는 사람이 없다면 의미가 없는 거더라고요. 조금 더 영향력 있는 사람이 되어 더 많은 분들의 마음을 위로해 드리고 싶어요.
Life Meets Life, LIFEPL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