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안다. 내가 살아있다는 것을.

PART 1. 살아있음. 2장. 생각 이전의 살아있음

by 라이프퀘스트 한

2장 생각 이전의 살아있음


“나는 생각이 아니다.”라는 말은

지금 돌아보면 그날 한순간 마주한 진실을

가장 단순하게 담아낸 고백이었습니다.


통찰이 일어나기 전까지

“나는 왜 이렇게 살아 있는가?”라는 물음은

오랫동안 맴돌고 있었습니다.


사실 질문은 어린 시절부터 삶의 고통과 번뇌 속에서

마그마처럼 뜨겁게 끓어오르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단순한 철학적 질문이 아니었습니다.

숨 막히는 나날을 버티며 살아내야 했던

존재의 절박한 외침이었습니다.

끊임없이 몰아치는 생각의 소음 때문에
단 한순간도 고요 속에서 쉬지 못했던
힘든 날들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책장 구석에서

오래전 사두고 잊고 있었던

에크하르트 톨레의

‘고요함의 지혜’라는 책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 제목은 마치 나에게만 들리는

간절한 초대장처럼 느껴졌습니다.


소란스러운 머릿속을 단번에 고요하게 만들어줄 비책이

그 안에 숨겨져 있을 것만 같아,

홀린 듯 책장을 넘기기 시작했습니다.


책의 문장들은 잠들어 있던 진실을

단번에 흔들어 깨우는 듯했고,

마침내 한 구절이 번개처럼

‘나’라는 존재를 환히 밝혔습니다.


순간, 수십 년 동안 당연하게 여겨왔던

‘나 = 생각’이라는 믿음이

그동안

모두 ‘나’라고 여기며 살아왔다는 사실이 선명히 보였습니다.


‘나=생각’이라는 동일시가 공중분해되는 순간,

몸은 하나의 묵직한 덩어리처럼 느껴졌고,

평생 ‘나’라고 믿어온 머릿속 목소리는

정체가 탄로 난 채 힘없이 잦아들었습니다.


그것은 부서짐이 아니라 완전한 붕괴였습니다.
나를 가두고 있던 생각의 요새가 단 한 번의 섬광에

형체도 남지 않게 무너진 것입니다.
경계를 나누던 벽이 순식간에 증발한 그 자리에,

이름 붙일 수 없는 덩어리감이 공간 전체를 가득 채웠습니다.

그 압도적인 존재감 앞에서

생각의 분별은 어둠이 빛 앞에서 사라지듯 일순간에 사라졌고,

소란이 멎은 자리에는

움직임 없는 고요한 텅 빔만이 드러났습니다.


아무것도 없는 것 같은 자리에서,

신기하게도 묵직한 존재감이 선명하게 드러나며

‘살아있다’는 감각만이 있었습니다.


지금까지 몸과 생각을 ‘나’라고 믿었지만,

생각이 사라진 순간,

남은 것은 오직 형체 없는 생명뿐이었습니다.

말로는 설명하기 어렵지만,

아무것도 없는 듯하면서도 한 덩어리처럼 느껴졌습니다.


형체 없는 덩어리감 속에서

“살아있다”는 사실만은 그 무엇보다도 분명했습니다.

과거도 미래도 흔적 없이 사라지고,

생각 이전의 순수한 생명만이 고요히 흐르고 있었습니다.


살면서 처음 겪는 낯선 경험이었지만 두려움은 없었고,

오히려 본래의 자리로 돌아온 듯한 깊은 안도감이 밀려왔습니다.

모든 것이 처음부터 다시 시작되는 듯한 ‘리셋’의 감각이 일었습니다.


생각이 일어나 세상을 분별하기 전,

이미 그 바탕에는 근원적 생명이 묵직한 덩어리감으로

맥동하고 있었음을 그 경험은 분명히 일깨워 주었습니다.

그것은 그 어떤 의심도 비집고 들어올 수 없는,

존재 자체가 스스로를 드러낸 생생한 고백이었습니다.


본래부터 그곳에 있었으나

한 번도 마주하지 못했던 생명.

나는 생각의 파편들이 모여 만든 허상이 아니라,

근원적 생명이 빚어낸 한 줄기 빛이었습니다.


그곳에서 마주한 근원적 생명은 관념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나를 숨 쉬게 하고 삶을 지탱하는,

거부할 수 없는 ‘실재’였습니다.


살아가는 이유를 묻는 것은 더 이상 무의미했습니다.

삶은 증명해야 할 답이 아니라,

이미 벌어지고 있는 경이로운 사실이었기 때문입니다.

그곳엔 어떤 지식도 닿지 못했습니다.

오직 말로 다 할 수 없는 있음과,

그 있음을 스스로 아는 앎이

빈틈없는 한 덩어리로 맥동하고 있었습니다.


세상이 입혀준 이름과 역할이라는 가면이 부서져 나간 뒤에야,
비로소 늘 그 자리에 있던 진실한 ‘나는’을 보았습니다.


그것은 잊어버렸던 ‘정체성의 회복’이자,

비로소 ‘진정한 나’를 기억해 낸 경이로움이었습니다.

그렇게 살아있음의 자각을 이정표 삼아
‘나는’이라는 문을 통과했습니다.

그리고 그 문 너머에서 다음과 같은 존재의 선언을 새겼습니다.


“나는 생각이 일어나기 전부터 이미 살아있는 존재이며,

또한 일어난 생각을 비추어 알아차리는 근원적 생명이다.”


내가 ‘나’라고 믿어왔던 것은 생각 속의 ‘나’였을 뿐,

살아있는 실재의 나는 아니었습니다.

몸은 존재의 표현으로서 생명이 드러나는 통로였고

,

생각은 생명이 비추어 알 수 있게 된

하나의 그림자에 불과했습니다.


그것은 마치 오랜 세월 함께 했던 부모가

친부모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 같은

엄청난 충격이었습니다.


존재의 뿌리가 뒤흔들리는 듯했지만,

충격 속에서 모든 무게가 사라지는 해방감이 밀려왔습니다.


그렇게 넓어진 공간 속에서,

비로소 ‘진정한 나’와 ‘생각’ 사이의 틈을 보았습니다.

쉴 새 없이 이어지던 생각의 중얼거림과

그것을 고요히 지켜보는 앎 사이에,

어떤 것도 침범할 수 없는 텅 빈 평화가 자리를 잡았습니다.


그 순간 알았습니다. 지금까지 의지해온 것은

상황에 따라 변하는 생각들이었고,

믿어온 ‘생각 속의 나’는

근원적 생명이 이끄는 아바타가 아니라,

생각이 지어낸 허구의 아바타였습니다.


생각이 없을 때도 여전히 살아 있었습니다.

생각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을 줄 알았지만,

철저한 오해였습니다.


또한 생각 이전의 생명은 이미 모든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굳이 생각하지 않아도 숨을 쉬고, 상처를 치유하고,

놓여 있는 상황의 미묘한 분위기까지

고스란히 알아차리고 있습니다.


근원적 생명은 생각이 정답을 찾아 헤매기 전,

이미 삶의 길을 환히 밝히며 나를 살리고 있습니다.


그렇게 생각은 정체가 탄로 났습니다.
생각은 현상을 분석하는 도구일 뿐,

결코 삶의 주체가 될 수는 없었습니다.

성찰의 빛이 꺼진 생각은 낡은 기억과 정보를 편집해

지어낸 가공의 서사를 '삶'인양 내세우며,

평생 그 그림자 속에 가두어 두었던 것입니다.


머릿속 독백이 잦아들자 가벼운 자유가 생겼습니다.

평생 느껴본 적 없는 낯설고 이질적 감각이었습니다.


그것은 너무나 익숙했던 '생각의 소란'과는

정반대에 있는 느낌이었기에,

처음에는 오히려 부자연스럽고 당혹스럽기까지 했습니다.


살아있다는 그 엄연한 실재가 이토록 묵직하게 진동하는데,

그것을 모른 채 살았다는 사실이

오히려 비현실적으로 느껴졌습니다.


낯선 고요함 속에 깃든 자유가 진짜 나의 얼굴임을 알아본 순간,

주저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비로소 결단을 내릴 수 있었습니다.

평생 주인의 자리를 꿰차고 앉아 삶을 휘두르던 생각에게,

그날로 당장 ‘해고 통보서’를 보냈습니다.


생각을 없애거나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집의 주인인 ‘살아있음’을 중심에 두고,

생각을 유용한 도구로 대하기로 한 것입니다.

주인처럼 행세하며 이야기를 꾸며대던 손님을,

본래 자리, 손님의 역할로 돌려놓는 것과 같았습니다.


변화는 서서히, 그러나 분명히 자리를 잡아갔습니다.

여전히 생각에 휩쓸릴 때가 있었지만,

'아, 지금 또 생각에 빠져 있구나.' 하고 자각하면,

무의식적으로 따라붙던 생각의 소음은

점차 잦아들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두려움, 후회, 자책, 욕망, 계획, 기대 —

모든 생각들이 더 이상 절대적인 진실이 아니라

일어났다 사라지는 현상으로 보이고, 받아들여집니다.


과거는, 생각들이 엮어 만든 이미 끝난 이야기였습니다.

그래서 과거의 나를 비난할 수 없었습니다.

모든 것이 생각 속의 이야기였다는 것을 이해하고, 받아들이자,

그 어리석음마저 진심으로 용서할 수 있었습니다.


상처 입힌 사람들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자신의 '생각이 지어낸 이야기' 속에서

허우적대고 있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용서란

생각에 묶여 있던 상처의 끈을 놓아주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나를 팽팽하게 잡아당겨 아프게 했던 것은

상대방의 행위 그 자체가 아니었습니다.


그 행위를 끊임없이 되새기며

‘나의 이야기’로 덧칠하고 확장했던,

내 안의 생각의 끈이었기 때문입니다.


그 끈을 놓는 순간,

비로소 상처는 힘을 잃고 과거라는 이름 뒤로 사라졌습니다.


혹시 지금 글을 읽으며,

“진짜야? 생각이 내가 아니라고? 도대체 무슨 말이야?”

평생 생각으로 살아왔는데 생각이 내가 아니라니…”


그 의문, 그 반응, 지금 중얼거리는 그 목소리

바로 그것이 ‘나’라고 여겨온 ‘생각’입니다.


목소리가 뭐라고 중얼거리는지 가만히 알아차려보세요.


“아, 지금 또 생각하고 빠져 있구나.”

“생각이 이야기를 끝없이 지어내고 있구나.”


이렇게 한 번 알아차리는 것만으로도

자각과 생각 사이에는 아주 얇지만, 분명한 공간이 생깁니다.


그 공간에서 비로소

생각 이전에 이미 존재하는 순수한 생명,

이 책이 ‘살아있음’이라 부르는

본질이 드러나기 시작할 것입니다.


이제 다음 장에서,

‘살아있음’이 무엇인지 더 또렷하게 알아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