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안다. 내가 살아있다는 것을.

PART 1. 살아있음. 10장 몸이 스승이다

by 라이프퀘스트 한

10장 몸은 스승이다


세상에 태어나지 않았다면,

몸이 없다면 의문도 없을 것입니다.


몸을 가지고 태어났기에 기쁨과 고통을 겪고,

변화와 한계를 느끼며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품게 됩니다.


따라서 몸은 단순한 물질이 아니라,

근원, 즉 살아 있는 진리를 향한 첫 관문입니다.


자각을 말하는 스승들은 대체로 추상적인 언어를 사용합니다.

“세상은 허상이다.”

“생각에 집착하지 마라.”

“자각으로 바라보라.”


이 말들은 모두 진실을 가리키지만,

어떻게 자각하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길은 거의 말해주지 않습니다.

제자에게 직접 체험을 남겨두려는 의도도 있고,

언어가 근원적인 진리를 설명하기에는

늘 한계가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

이 말들이 때로는 너무 멀고 막연하게 다가옵니다.

머리로 이해는 되지만, 몸으로는 와닿지 않습니다.


자각은 추상적인 사유 속에 있지 않습니다.

몸이라는 통로를 통해 분명히 드러납니다.


눈을 감으면, 숨이 오고 가는 것을 압니다.

발바닥이 바닥을 딛고 있음을 압니다.

가슴이 오르내리고, 맥박이 뛰는 것을 느낍니다.

이 단순한 감각이 바로 살아있음의 증거이며, 자각의 첫 문입니다.

이렇게 자연스럽고 당연하고 익숙한 것을

의식해서 아는 것이 자각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종종 믿지 못합니다.

‘설마, 이렇게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을 아는 게 자각일까?’


네, 그렇습니다. 자각은 특별한 것이 아닙니다.

그저 자신이 살아있다는 사실을 의식해서 아는 것이 전부입니다.

너무 단순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더 어렵고 특별해야 한다'는

생각의 습관에 사로잡혀 오히려 자각을 놓치곤 합니다.


자각은 생각의 바탕이 아니라,

감각의 바탕에서 피어납니다.
자각이 그 바탕을 느낄 때,

몸을 통해 비로소 자신을 드러냅니다.


이 세상에서 우리가 자각을 실제로 경험하고 확인하는 일은,

몸을 통하지 않고도 말할 수는 있겠지만,

이 삶 안에서 분명하게 확인되는 자리는

언제나 몸입니다.


깨달음을 전한다고 하는 이들 가운데는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몸의 감각은 믿을 수 없다. 변하기 때문이다.

몸은 늘 바뀌는 허상이니, 진리와는 무관하다.”


그 말은 절반은 맞습니다.

몸의 감각이 변하는 것은 사실입니다.


몸이 피곤할 때는 무겁고,

기운이 좋을 때는 가볍습니다.


때로는 통증이 있고,

때로는 따뜻함이 있습니다.

이렇게 몸의 감각은 끊임없이 변합니다.

그러나 그 말에는

한 가지 중요한 것이 빠져 있습니다.


몸에 나타나는 감각이 변한다고 해서

그 감각을 가능하게 하는 ‘느끼는 바탕’까지

함께 변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감각의 내용은 변하지만,

감각을 느끼게 하는 바탕 —

그 살아 있는 생명력은 변하지 않습니다.

자각이 깊어진다는 것은

평온한 느낌을 오래 붙잡는다는 뜻이 아니라,

좋지 않은 느낌이 올라올 때에도

그 느낌을 비추는 바탕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몸은 살아있음이 스스로를 체험하는 길이며,

살아있음이 세상을 비추는 빛의 창입니다.


진리가 온 세상 어디에나 있다면,

당연히 우리 몸속에도 있어야 합니다.


몸은 진리로부터 분리된 물질이 아니라,

진리가 스스로를 감각으로 드러내는 통로입니다.


몸이 진리와 분리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순간,

우리는 자신 안에 깃든

신성한 차원을 놓치게 됩니다.


몸은 수행의 '도구'나 '방편'이 아니라,

진리가 스스로를 알아차리는

'신성한 성소(聖所)'로 대해야 합니다.


몸의 신호를 거부하는 것은

곧 ‘지금 여기’의 실재를 거부하는 행위이며,

이는 긴장과 저항을 낳아 고통의 패턴을 반복시킵니다.

몸은 진리의 리듬에 ‘내맡기는 법’을 가르치는 최초의 스승입니다.


몸은 ‘과거’의 기억이나 ‘미래’의 계획이 아닌,

‘지금 이 순간’의 살아있음이

지연 없이 실시간(Real-time)으로 느껴지는 유일한 공간입니다.


몸을 단순한 도구가 아닌, 생명과 진리가 현현하는

신성한 장소로 존중하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몸은 진리의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진리가 자신을 드러내는 가장 가까운 자리입니다.

당신의 몸 안에는, 세포마다, 숨결마다,

살아있음의 리듬이 흐르고 있습니다.


몸의 감각은 파도처럼 변하지만,

그 모든 파도를 일으키는 바다는

여전히 고요합니다.

그 바다가 바로

당신 내면의 살아 있게 하는 생명력입니다.


몸을 느낀다는 것은

단지 감각을 확인하는 일이 아닙니다.


그 감각을 가능하게 하는 불변의 생명력,

즉 살아있음 그 자체를 느끼는 일입니다.

바로 그 살아있음, 그 불변의 생명력이

우리 몸의 진정한 스승입니다.


자각을 통한 살아있음으로 몸을 느끼는 길과

의식해서 몸을 느끼는 길은

겉으로는 두 길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모두 하나의 몸을 통하는 길입니다.


생각에 빠져 허우적거리거나,

감정이 요동치거나,

집착이 일어나거나,

불안하고 두려울 때는,


의식해서 몸을 느껴보세요.

발바닥이 바닥을 딛고 있는 느낌,

가슴이 미세하게 오르내리는 느낌,


그리고 그 느낌을

“내가 지금 느끼고 있구나” 하고 알아차리는 자각을

함께 바라보세요.


몸과 주위의 공간을 동시 인식으로 함께 느껴 보세요.

그러면 생각의 파도는 조금씩 잦아들고 '내가 살아 있다'는

생명력이 더 분명하게 감지되기 시작합니다.


놓친다면, 다시 돌아오면 됩니다.

돌아올 때마다 몸은 늘 변함없이

'지금 여기'를 가리키는 스승이 되어 줄 것입니다.


그렇게 조금씩 돌아오는 연습이 쌓이면,

어느새 평온과 충만함이

더 자주 스쳐 지나갈 것입니다.

그러나 그 평온함마저 붙잡으려 하지 마세요.

그 모든 상태를 비추고 있는 살아있음이

이미 당신과 하나입니다.


그렇습니다. 몸은 스승입니다.

스승이 제자를 이끌 듯,

몸은 생각으로 길을 잃을 때마다,

늘 제자리에서 진리를 가리키고 있습니다.


몸의 변화 속에서

변하지 않는 이 바탕을 볼 때,

우리는 비로소 알게 됩니다.


“몸속에 깃들어 있는 것이

단순한 감각이 아니라

진리의 리듬이었다”는 것을.


이제 다음 장에서는,

이 살아 있는 진리의 리듬이

우리 의식 속에서 어떻게 드러나는지를


‘깨어 있음’이라는 언어로 함께 살펴보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