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4. 내맡김. 4장. 아무것도 모른다는 자각
4장. 아무것도 모른다는 자각
어느 순간, 기도조차 멈추게 될 때가 있습니다.
간절히 바라고 마음이 어느 날, 조용히 가라앉습니다.
그것은 절망이 아닙니다.
오히려 더 이상은 억지로 무엇을 하려 하지 않는
삶 앞에 고요히 무릎 꿇는 순간입니다.
“아… 이제는 정말 아무것도 할 수 없구나.”
이 진실은, 붙잡고, 밀어붙이고, 통제하려 했던
모든 시도가 어느 지점에서 더 이상 통하지 않을 때,
고통의 끝에서 비로소 드러납니다.
그제야 삶 앞에 조용히 물러나고,
살아있음의 흐름에 자신을 맡기게 됩니다.
우리는 처음부터 삶을 통제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습니다.
다만 그렇게 믿고 싶었을 뿐입니다.
살아있음은 언제나,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더 깊은 차원에서
자기 방향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 흐름에 실려보는 것—
그것이 진정한 내맡김입니다.
마치 강물의 흐름에 배를 띄우듯,
힘으로 밀어붙이기보다 조용히 따라 가는 일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자주 그 흐름을 거슬러 오릅니다.
지금, 그 흐름 위에 있나요?
아니면 여전히 생각이라는 작은 방 안에서
자신만의 길이 옳다고 믿으며 물살을 거슬러 오르고 있나요?
생각은 늘 자신이 옳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생각이 보여주는 가능성은
360도 중 고작 몇 도에 불과합니다.
그 몇 도만으로 마치 다 아는 듯,
나머지 방향을 애초에 무시하고 지워버립니다.
하지만 살아있음은 모든 방향을 알고 있는 더 큰 지혜입니다.
이제 선택의 순간이 다가옵니다. 작은 방에 남을 것인가?
아니면 문을 열고, 살아있음이라는 광대한 바다로 나아갈 것인가?
그리고 그때, 우리는 내맡김으로 고백해야 합니다.
“나는 정말 아무것도 모릅니다.”
이 말은 무지가 아닙니다.
오히려 깊이 보려는 눈, 진실 앞에 머무는 용기입니다.
우리는 많은 것을 알고 있다고 믿으며 살아갑니다.
하지만 모든 판단과 지식은
결국 과거 기억의 좁은 틀 안에서만 맴돕니다.
그 생각 위에 인생을 세우려 할수록,
우리는 점점 더 불안과 통제의 세계에 갇히게 됩니다.
반면, “나는 아무것도 모릅니다”고
말하는 순간, 생각의 문을 닫고,
살아있음의 문을 엽니다.
그때 우리는 비로소 두 발이 바닥에 닿습니다.
아무것도 결정하지 않고, 설명하려 들지 않고,
무엇이 옳은지도 틀린 지도 모르는 그 자리에 가만히 머무는 것.
그때부터 살아있음은 우리를 이끌기 시작합니다.
그것은 설명으로는 닿을 수 없습니다.
오직 살아있음을 자각하는 방식으로만 만날 수 있습니다.
살아있음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었지만,
그 위에 수없이 많은 생각의 먼지를 덮어왔습니다.
판단하지 않고, 서두르지 않으며,
어떤 해석도 없이 그저 지금 이 순간에 깨어 있을 때,
그 앞에서 우리는 고백할 수 있습니다.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니 저를 이끌어 주십시오.”
이 솔직한 고백이
살아있음의 목소리를 들을 준비가 되는 자리입니다.
보이지 않지만, 그 공간 안에는
모든 가능성과 연결된 우주적 지성이 있습니다.
그곳에서 판단하지 않고, 서두르지 않고,
그저 지금 이 순간을 살아 있는 채로 바라봅니다.
그러면 살아있음은 그 자체로 답을 줍니다.
말이 아닌, 깊은 침묵 속에서 흘러나오는
살아있는 직관과 느낌이 작은 길 하나를 가리킵니다.
그 길을 따라 조심스레 한 걸음 내딛습니다.
그러다 보면 알게 됩니다.
스스로 걷는 것이 아니라
살아있음이 나를 데리고 간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러니 서두르지 마세요.
답을 찾아 헤매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당신이 정말 아무것도 모른다는 걸 받아들일 때,
그 자리에서 살아있음의 깊은 지혜와 연결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