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릴 샌드버그 페이스북 COO는 그때 September를 들었다.
사실 마크 저커버그와 페이스북은 10년 넘게 실리콘밸리의 체리피커였다. 2010년대 모바일 시대에 소셜 미디어라는 콘텐츠를 제공해서 빅테크가 됐다. 정작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의 콘텐츠는 사용자가 올린 개인 정보들이었다. 하드웨어 모바일 생태계 역시 애플과 삼성이 만든 것이었다. 인스타그램 광고를 보고 주문하는 상품이 배송되는 물류망도 아마존이 만든 것이었다. 메타는 이 모든 걸 연결하는 소셜 네트워크를 만들었지만 그건 기술 혁신은 아니었다. 셰릴 샌드버그 역시 기술 경영자가 아니라 광고 경영자였다.
팀 쿡 뿐만이 아니라 실리콘밸리 안에서 메타에 대한 여론이 오랜 동안 냉소적인 건 그래서다. 사내 정치로 혼란스러웠고 내부 고발로 시끄러웠고 사회적 책임을 회피했고 도널드 트럼프에 부화뇌동했기 때문만이 아니다. 메타가 어떻게 세상을 더 이롭게 혁신했는지에 대해 선명하게 답할 수 없기 때문이다.
메타는 파괴적 혁신을 하기보단 어떤 면에선 세계를 파괴했다. 이제 연결은 더 이상 세상이 기대하는 답이 아니다. 그 이상이 필요하다. 마크 저커버그는 자신이 파운딩한 기업을 스스로 리파운딩해야 했다. 마크 저커버그는 메타버스가 연결의 다음 단계라고 믿었고 그래서 사명을 메타로 바꿨다. 그렇지만 2023년 메타의 연구개별 지출에서 메타버스는 큰 비중이 아니다. 당연히 마크 저커버그는 오픈 소스 LLM인 람다 개발에 집중하고 있다.
얀 르쿤 메타 수석 과학자를 필두로 조 스피삭 메타 오픈 소스 AI 부문 책임자와 예 퀴 메타 프러덕션 엔지니어, 델리아 데이비드 메타 소프트웨어 엔지니어가 람다의 개발 키맨들이다. 마크 저커버그가 갖춘 진용으로만 보면 팀 쿡은 더 이상 마크 저커버그를 체리 피커라고 비판할 수 없는 수준이다.
게다가 마크 저커버그는 아이폰 이후의 인공지능 디바이스에 미친 듯이 몰입하고 있다. 그 결과가 2024년 9월 25일 메타 커낵트 2024에서 선보인 오라이온과 메타 퀘스트3 같은 혼합현실 하드웨어 기기들이다. 오라이언은 2년 전 메타 커낵트에서 선보였던 메타와 레이벤 콜라보의 초기 모델을 업그레이드한 결과물에 가깝다. 메타x레이벤 글래스는 카메라 기능 정도가 내장돼 있었다. 반면 오라이언은 안경 렌즈에 실제로 증강 현실 정보들이 프로젝션된다. 손목 밴드를 착용하면 렌즈 속 스크린 정보를 조작할 수 있게 된다.
아직은 부족하다. 일단 오라이언 안경 안에 모든 기능을 전부 압축하지 못했다. 충천 배터리처럼 생긴 별도의 하드웨어 디바이스를 휴대해야만 제대로 작동한다. 게다가 100그램 미만의 무게에도 불구하고 아직은 오래 착용하긴 무겁다. 젠슨 황 엔비디아 CEO는 오라이언을 착용해보고 정말 가볍다고 말했다. 젠슨 황은 마크 저커버그와 가죽 자켓을 돌려 입는 사이다. 엔비디아에게 메타는 GPU의 주요 고객이다. 그래도 오라이언은 마크 저커버그의 비전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제품이다. 메타는 애플에 도전하고 있는 것이다. 포스트 애플이 마크 저커버그의 비전이다.
2024년 마크 저커버그한텐 2인자 대신 4인방이 있다.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을 둘러싼 여론전을 이끌 인물은 닉 클레그 글로벌 사장이다. 닉 클레그는 캐머런 정부에서 영국의 부총리를 지냈다. 셰릴 샌드버그가 방 안의 어른이었다면 닉 클레그는 문 앞의 어른이다. 메타의 대외적 얼굴 마담이다. CTO 앤드류 보즈워스와 CPO 크리스 콕스는 저커버그의 심복과 친구다. 새로운 COO인 하이베르 올리반은 셰릴 샌드버그가 맡아왔고 마크 저커버그는 싫어했던 메타의 살림을 맡는다. 저커버그가 이끄는 새 시대의 얼굴들이다.
2024년 셰릴 샌드버그는 더 이상 세상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은 아니다. 2015년부터 2022년까지 7년 동안 이어진 메타 내부의 혼란과 셰린 샌드버그 자신의 잘못된 선택들 탓이다. 셰릴 샌드버그한텐 도널드 트럼프에 맞설 명분이 없다. 어쩌면 셰릴 샌드버그의 자리였을지도 모르는 도널드 트럼프의 대척점엔 카머라 해리스가 서게 됐다. 어쩌면 2024년 11월엔 셰릴 샌드버그가 꿈꿨던 자리에 카머라 해리스가 서 있을지도 모른다.
여전히 셰릴 샌드버그가 포춘500대 기업의 CEO로 컴백할 것이라는 기대도 크다. 셰릴 샌드버그는 구글과 메타에서의 오랜 경력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최고경영자였던 적은 없다. 셰릴 샌드버그는 2024년 1월 메타의 이사회에서도 물러났다.
2015년 5월 1일의 비극이 아니었다면 세릴 샌드버그는 페이스북의 방안에서 계속 어른 역할을 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마크 저커버그가 조엘 카플란에 휘둘리면서 도널드 트럼프가 악마의 작업장을 방조하는 걸 방치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페이스북의 2016년 러시아 스캔들과 2017년 데이터 스캔들을 방지했다면 셰릴 샌드버그는 카머라 해리스와 경쟁할 자격을 얻었을지도 모른다. 워싱턴 정가에 복귀해서 유리 천정을 향해 선두에서 린인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조 바이든의 공식 지명 후계자로서 2024년 9월 10일 도널드 트럼프에게 2021년 1월 6일 의사당 폭동의 책임을 따져 물었을지도 모른다.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2015년 5월 1일 첫 번째 남편 데이브 샌드버그가 죽은 채로 발견된 이후 셰릴 샌드버그는 2주 동안 폐인으로 살았다. 셰릴 샌드버그는 페이스북에 자신이 영원히 행복할 수 없을 것이라고 쓰고 또 썼다. 셰릴 샌드버그를 세상 밖으로 끌어내 준 건 스스로 더걸스라고 부르며 뭉쳐다니는 6명의 고등학교 친구들이었다.
셰릴 샌드버그는 2015년 가을 더걸스 중 한 명인 베스의 딸 성인식에 참석했다. 성인식 DJ가 어스 윈드 앤 파이어의 September를 틀었을 때 셰릴 샌드버그는 자신도 모르게 춤을 췄다. 셰릴 샌드버그는 갑자기 울음을 터뜨렸다. 셰릴 샌드버그는 September를 들으며 느낀 행복감에서 죄책감을 느꼈다. 그건 분명 잘못된 일이었다.
September를 들으며 셰릴 샌드버그는 이제 다시 행복해지기로 결심했다. 2022년 8월 두 번째 남편 톰 설번과 결혼한 이후 2년 넘게 셰릴 샌드버그는 새로운 가족과의 시간이 집중하고 있다. 톰 설번 역시 아내를 죽음으로 잃었다. 두 사람 사이에는 5명의 아이들이 있다. 셰릴 샌드버그의 유일한 대외 활동은 여성의 대외 활동을 돕는 린인 재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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