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라이프러리 2시간전

파벨 두로프의 순간 : 자유

파벨 두로프 텔레그램 창업자는 그때 비행기를 날라기로 선택했다. 

파벨 두로프는 마크롱의 덫에 걸렸다. 공항에서 체포되던 2024년 8월 24일 저녁 텔레그램 CEO 파벨 두로프는 엠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저녁 식사를 하기로 돼 있었다. 파벨 두로프가 전용기를 타고 아제르바이잔에서 프랑스 르 부르제 공항으로 날아온 이유였다. 프랑스 탐사 보도 매체 까나르 양셰네의 보도 내용이다. 까나르 앙셰네는 1972년 퐁피두 정권의 2인자였던 자크 샤망 델마스 총리의 비리를 밝혀냈고 결국 해임시켰던 매체다. 


마크롱 대통령은 파벨 두루포 대표가 자신과 약속이 있어서 프랑스에 입국했다는 사실을 부인했다. 마크롱 입장에선 그럴 수 밖에 없다. 범죄의 온상으로 지목된 텔레그램 대표와 연관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도 없다. 정반대로 자신이 글로벌 비즈니스맨에게 덫을 놨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도 없다. 아니라면 자신을 믿고 프랑스에 입국한 친구가 프랑스 경찰한테 전격 체포됐다는 사실도 인정할 수 없다. 어느 쪽이든 신뢰의 위기에 빠지기 때문이다. 


분명 두로프 대표는 마크롱 대통령과 잘 아는 사이다. 2018년에도 두로프 대표와 마크롱 대통령은 함께 식사를 한 적이 있었다. 당시 마크롱 대통령은 두로프 대표에게 텔레그램 본사를 파리로 옮기라고 권했다. 두로프 대표는 이미 한해 전에 텔레그램 본사를 아랍에미레이트의 두바이로 옮긴 상태였다. 


당시 마크롱 대통령은 집권 2년차였다. 친기업 정책을 힘줘서 밀어붙이고 있었다. 유럽 소셜 네트워크 시장은 미국 빅테크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에 완전히 장악된 상태였다. 텔레그램 본사를 프랑스로 옮기면 파리가 유럽 IT 비즈니스의 중심지가 될 수도 있었다. 파벨 두로프는 유럽의 마크 저커버그로 불리고 있었다. 그렇지만 두로프 대표는 마크롱 대통령의 제안을 거절했다.  


사실 프랑스 정보부는 2017년 아랍에미레이트와 공조해서 파벨 두로프의 아이폰을 해킹하려고 시도한 적이 있었다. 프랑스 정보부는 테러 단체 IS가 텔레그램을 통해 이슬람 전사를 모집하고 테러 계획을 모의했다고 봤다. 파벨 두로프 해킹 작전의 암호명은 퍼플 뮤직이었다. 엠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2017년 5월 집권했다. 처음부터 마크롱 대통령은 두로프 대표를 두고 이중 플레이를 했던 것이다. 뒤에선 스마트폰 해킹 작전을 벌이고 앞에선 본사 유치 협상을 벌였다.


지난 8월 24일 파벨 두로프 체포 작전도 같은 맥락이다. 두로프 대표는 마크롱 대통령의 초대를 받고 프랑스에 입국했다. 두로프는 공항에 내려서 경호원들과 함께 프랑스 땅을 밟자마자 덫을 치고 기다리던 프랑스 경찰들한테 체포당했다. 파벨 두로프는 처음엔 마크롱에게 연락을 취하려고 했다. 프랑스 통신 재벌 일리아드의 창업자 자비에 니엘에게 연락해서 마크롱에게 자신의 체포 사실을 알리려고 시도했다. 자비에 니엘은 엠마뉘엘 마크롱과 가까운 사이다. 부질 없는 일이었다. 


파벨 두로프가 체포된 이후 마크롱 대통령은 엑스를 통해 이렇게 밝혔다. "프랑스 영토에서 텔레그램 CEO가 체포된 것은 사법 조사를 위한 것이지 정치적 결정이 아니며 수사 판사들이 결정한 사안이다.“ 자신과 저녁 먹으러 온 두로프와의 관계를 사실상 부인한 것이다. 오히려 두로프 체포는 프랑스 경찰의 정당한 법 집행이라고 강조한 것이다. 파벨 두로프 입장에선 마크롱 대통령에게 뒤통수를 제대로 맞은 셈이다.


파벨 두로프에 대한 프랑스 경찰의 수사는 2024년 2월 경 본격화됐다. 수사를 주도한 건 오브민이었다. 오브민은 프랑스의 미성년자 대상 범죄 단속 경찰 기관의 이름이다. 2023년에 발족됐다. 오브민은 2024년 2월 텔레그램측에 미성년자 음란물 성착취 동영상 관련 수사에 대한 수사 협조를 요청했다. 텔레그램측은 무반응으로 일관했다. 결국 오브민은 텔레그램의 창업자이자 CEO인 파벨 두로프를 체포하기로 결정한다. 


이건 관련법이 통과돼서 가능했던 일이었다. 프랑스 의회는 2024년 초 텔레그램과 같은 소셜 플랫폼에게 프랑스 수사 기관과의 협조를 강제할 수 있는 규제 법안을 통과시켰다. 가짜뉴스, 인종차별, 반유대주의, 마약유통, 아동성범죄 같은 중대범죄에 대해선 소셜 플랫폼은 프랑스 경찰에 수사 협조를 해야만 한다. 모두가 텔레그램 플랫폼 안에서 자행되고 있는 범죄들이다. 게다가 파벨 두로프의 국적은 프랑스였다. 두로프는 원래는 러시아 국적이었지만 2015년 러시아 국적을 버렸다. 두로프는 2015년 세인트키츠 네비스의 국적을 취득했다. 세인트키츠는 중앙아메리카에 있는 작은 섬나라다. 


그런데 파벨 두로프는 2021년 프랑스 국적과 아랍 에이메리트 국적을 취득한다. 3중 국적자가 된 것이다. 프랑스와 아랍 에미레이트가 파벨 두로프에게 국적을 제공한 것에 가까웠다. 파벨 두로프 입장에서도 두 나라 국적은 유용했다. 두바이에는 텔레그램의 본사가 있다. 게다가 아랍 에미레이트는 2021년 텔레그램에 7500만 달러를 투자했다. 프랑스는 텔레그램한테는 유럽 시장의 교두보가 될 수 있다. 


어차피 러시아 태생인데다 이탈리아에서 자란 파벨 두로프도 결국 유럽인이다. 미국과 러시아 어느 쪽 편도 아닌 파벨 두로프한텐 프랑스가 일종의 피난처가 될 수도 있었다. 마크롱 대통령과의 신뢰 관계도 있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프랑스 국적 취득은 파벨 두로프의 발목을 잡았다. 어쩌면 파벨 두로프에게 프랑스 국적을 제공했을 때부터 마크롱과 프랑스 당국은 여기까지 계산했을지도 모른다. 모든 게 함정이었다면 말이다. 


결국 지난 8월 29일 오브민은 파벨 두로프를 12개 혐의로 예비 기소했다. 12개나 되는 기소 항목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방조 혐의다. 두로프 대표가 텔레그램 플랫폼 안에서 이뤄지는 아동 성착취물 배포를 방조했고, 마약 유통을 방조했고, 해킹 프로그램 유통을 방조했고, 범죄 수익금 세탁을 방조했다는 죄목들이다. 예비 기소 단계에서 오브민은 파벨 두로프에 대한 보강 수사를 하게 된다. 


대신 프랑스 법원은 파벨 두로프에게 보석을 허가했다. 보석금은 500만 유로다. 한화로 74억 원 정도다. 대신 여권은 압수됐다. 프랑스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된 것이다. 앞으론 2주에 한번씩 프랑스 경찰에 거주지를 신고해야만 한다. 신체 구금은 풀어줬지만 거주 이동의 자유는 빼앗은 것이다. 강력 범죄자들한텐 신체 구금이 중요하다. 도망칠 우려가 있다면 보석도 안 된다. 기소는 했지만 구금은 안 했고 보석은 받아줬다는 건 파벨 두로프한테 거부할 수 없는 거래를 제안하는 것이다. 원하는 건 당연히 텔레그램의 수사 협조다. 


파벨 두로프는 무정부주의자다. 2013년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텔레그램을 창업할 무렵 무정부주의자 성명에 서명했다. 3중 국적자라는 건 역설적으로 파벨 두로프가 어느 나라 국민도 아니라는 뜻이다. 파벨 두로프는 극단적인 자유주의자다. 창업 당시 텔레그램의 창업 슬로건은 ”사생활에 대한 우리의 권리를 되찾자“였다. 파벨 두로프는 텔레그램 서버를 러시아가 아니라 독일에 위치시켰다. 러시아 푸틴 정부의 검열과 통제를 피하기 위해서였다. 


파벨 두로프는 22세 때인 2006년 9월 친형 니콜라이 두로프와 함께 러시아의 페이스북이라고 불리는 SNS 프콘탁테를 개발했다. 니콜라이 두로프는 천재 개발자였다. 파벨 두로프는 천재 기획자이자 사업가였다. 심지어 호감을 주는 미남이었다. 프콘탁테는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다. 창업 2년 만에 1000만 이용자를 돌파했다. 파벨 두로프는 러시아의 마크 저커버그라도 불리게 됐다. 당시 영국의 일간지 가디언은 파벨 두로프를 ”톰 크루즈처럼 미남인데 더 부자“라고 소개했다. 이 모든 성공은 푸틴 집권 2기부터 메드베테프 집권기에 일어난 일이었다. 러시아의 자유주의 자본주의 시기였다.


독재화된 푸틴 정부는 파벨 두로프에게 프콘탁테의 검열 강화를 요구했다. 일단 푸틴의 정적 알렉세이 나발리의 개인 페이지를 삭제할 것을 요구했다. 당시 알렉세이 나발리는 푸틴의 4기 집권을 저지할 유력한 대안 주자로 떠오른 상태였다. 그 발판은 프콘탁테였다. 푸틴 정부는 파벨 두로프에게 프콘탁테 서버에 저장된 유로마이단 혁명 참가자들의 개인 정보 제공을 요구했다. 2013년 11월 발발한 우크라이나의 유로마이단 혁명은 따지고 보면 지금 러우 전쟁의 도화선이었다. 우크라이나 국민들이 러시아의 영향력에서 벗어나서 EU의 일부가 되겠다먀 봉기했고 결국 친러 성향의 야누코비치 정부를 퇴진시킨 사건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파벨 두로프의 선택은 탈러시아였다. 2014년 4월 16일 파벨 두로프는 포콘탁테를 압박하는 푸틴 정부의 공문을 공개해버렸다. 5일 뒤에 파벨 두로프는 프콘탁테 CEO에서 축축당한다. 그러자 파벨 두로프는 프콘탁테 대신 페이스북에 ”러시아을 떠나서 다시는 돌아오지 않겠다“는 글을 남기고 독일로 망명했다. 프콘탁테를 공동창업한 친형 니콜라이 두로프와 함께였다. 당시만 해도 서방 국가들은 파벨 두로프를 지지해줬다. 푸틴 독재 정부에 저항했기 때문이었다. 그땐 푸틴을 피해서 러시아를 떠난 기업인들은 한 둘이 아니었다. 파벨 두로프가 그런 기업인들 중 하나로 보였다. 


파벨 두로프는 2014년부터 막명 직후부터 텔레그램 서비스를 본격화시켰다. 자유를 위해 보호 받을 권리를 텔레그램의 핵심 창업 이념으로 삼았다. 푸틴의 억압을 피해 망명하 기업가가 내세울 만한 가치였다. 어쩌면 문제는 텔레그램의 초법적인 보안성이었다. 파벨 두로프는 2014년 20만 달러의 상금을 걸고 텔레그램 해킹 대회를 열었다. 아무도 텔레그램의 보안 메시지를 해킹하지 못했다. 텔레그램은 강력한 보안성을 세일즈 포인트로 사용자를 늘려가기 시작했다. 


파벨 두로프는 텔레그램의 무국적 기업이 운영하는 무정부 플랫폼으로서의 성격을 강화해나가기 시작했다. 텔레그램은 전세계적으로 활성사용자수 9억 명의 사용자를 확보하는데 성공했다. 메타의 위쳇과 페이스북 메신저 등에 이어 세계 4위다. 문제는 텔레그램의 9억 사용자들 중에는 범죄자들도 있었다는 사실이다. 텔레그램의 강력한 보안성은 범죄에 악용될 여지가 충분했다. 권위주의 정부의 통제로부터 저항하면서 얻어낸 텔레그램의 자유가 민주주의 정부 아래에선 자유의 오남용으로 변질된 것이다. 


정작 극단적일 정보로 자유주의자이자 무정부주의자인 파벨 두로프는 텔레그램 안에서 벌어지는 자유의 오남용을 관리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것이 또 다른 자유에 대한 통제라고 보는 것이다. 자신이 프콘탁테에서 쫓겨나면서 푸틴한테 당한 일이었다. 텔레그램의 푸틴이 될 수는 없는 것이었다. 그런데 러시아 정부 뿐만 아니라 각국 정부 모두가 점점 텔레그램이 국가 질서를 위협하는 존재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2017년 프랑스 정부가 시도한 파벨 두로프에 대한 퍼플 뮤직 해킹 작전이 대표적이다. 사실 파벨 두로프는 프랑스 정부 뿐만 아니라 여러 정부의 회유와 협박을 받아왔다. 해킹 작전도 퍼플 뮤직 한 건이 아닐 수 있단 얘기다. 


파벨 두로프의 재산은 140억 파운드로 알려져 있다. 한화로 24조 원에 달한다. 그런데도 빌딩이나 요트나 비행기 같은 유형 자산은 거의 소유하지 않고 있다. 그런 자산의 공통점은 국가 정부의 몰수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대신 대부분의 재산은 암호화폐다. 암호화폐는 법정화폐와 달리 중앙정부와는 무관한 지불 수단이다. 파벨 두로프는 정말로 극단적인 아나키스트이자 자유주의자인 것이다. 파벨 두로프는 풀소유의 세계 시민인 것이다. 


그렇지만 파벨 두로프한테도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 2018년 설립한 암호화폐 톤 파운데이션이다. 파벨 투로프는 텔레그램과 톤을 결합해서 텔레그램을 정보 교류 뿐만 아니라 금융 거래까지 가능한 슈퍼앱으로 진화시키려고 한다. 파벨 두로프는 톤 코인의 ICO 과정에서 미국 증권거래위원회와 마찰을 빚었다. SEC가 요구한 건 텔레그램과 톤을 분리하라는 것이었다. 텔레그램과 통합된 톤 ICO는 ICO의 탈을 쓴 텔레그램의 IPO라고 본 것이다. 결국 파벨 두로프는 SEC에 1850억 달러의 벌금을 납부하고 텔레그램과 톤을 분리시켰다.


겉으론 분리됐지만 톤과 텔레그램이 한 몸이라는 건 업계 상식에 가깝다. 실제로 별도 상장된 톤의 가격은 2024년 8월 24일 파벨 두로프가 체포되자마자 폭락해버렸다. 코인 투자자들은 톤과 텔레그램을 한 몸으로 보고 톤에 투자해온 것이다. 당장 텔레그램은 2025년까지 10억 활성사용자를 목표로 하고 있다. 디 중에서 3분의 1인 3억 명을 2028년까지 톤 코인의 고객으로 만드는 것이 또 다른 목표다. 텔레그램 네트워크 안에서 전세계적으로 톤 코인으로 모든 상거래와 금융 거래가 가능한 생태계를 만드는 것이다. 파벨 두로프가 꿈꿔온 무정부 디지털 사회가 창설되는 것이다. 


이건 프랑스 정부나 러시아 정부를 포함한 세계 모든 정부들의 악몽이다. 텔레그램 안에서 이뤄지는 범죄와 범죄 수익금 거래를 전혀 통제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한국에서 이미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는 딥페이크 지인 능욕 영상이 암호화폐로 거래되는 것이다. 


파벨 두로프를 전격 체포한 오브민은 프랑스어로 최소한이라는 뜻이다. 현재 텔레그램에는 자유에 대한 최소한도의 통제도 이뤄지고 있지 않다. 프랑스 경찰 오브민이 문제 삼은 아동성착취물도 한국에서 사회 문제가 되고 있는 딥페이크 지인 능욕 영상도 결국 자유의 선을 넘은 범죄들이다. 개인의 자유는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게 하는 선까지만 보장되는 것이다. 


파벨 두로프 체포 직후 텔레그램은 성명을 내고 ”텔레그램 오너에게 플랫폼의 오남용 대한 책임을 묻는 것은 불합리하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프랑스 오브민이 파벨 두로프에게 물은 죄는 방관의 죄였다. 


푸틴의 독재에서 자유를 찾아서 탈출한 파벨 두로프는 10년 만인 2024년 선택을 강요 받게 됐다. 텔레그램을 슈퍼앱으로 성장시키려는 비즈니스맨으로서의 실리와 아나키스트로서의 명분 사이의 선택이다. 동시에 텔레그램 플랫폼을 통해 양산된 각종 범죄에 대한 최소한의 규제와 피해자에 대한 책임의 선택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제프리 힌튼과 사이먼 존슨의 순간 : AI와 한국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