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성락 웹툰 작가

1985년 3월 5일 ~ 2022년 7월 23일

by 라이프러리

장석락이 성진우였다. 지난 7월 23일 갑작스럽게 별세한 웹툰작가 장성락은 《나 혼자만 레벨업》으로 유명하다. 《나 혼자만 레벨업》은 K웹툰의 상징이다. 2018년 3월 카카오페이지를 통해 연재를 시작한 《나 혼자만 레벨업》은 한국 뿐만 아니라 일본과 태국과 미국까지 초토화시키면서 글로벌 웹툰 시장에서 142억 뷰를 기록했다. 전대미문의 대기록이었다. 사실상 《나 혼자만 레벨업》 신드롬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덕분에 네이버웹툰에 비해 후발주자였던 카카오페이지도 레벨업에 성공할 수 있었다.


《나 혼자만 레벨업》의 주인공은 성진우다. 원래는 E급 헌터였다. 《나 혼자만 레벨업》의 세계관에선 가장 하위 레벨이 E급이다. 헌터의 등급은 밑바닥인 E급부터 꼭대기인 S급까지 피라미드 형태로 나눠져 있다. 여기에 등급이라기보단 권위에 가까운 국가권력급까지 더하면 E급의 존재감은 더 초라해진다. 《나 혼자만 레벨업》의 세계에서 헌터는 마수를 사냥한다. 《나 혼자만 레벨업》의 세계관은 MMORPG 게임을 현실로 옮겨놓은 것과 유사하다. 어느날 갑자기 현실 세계에 게임 세계에서만 보던 던전이 생겨났다. 던전에선 마수도 나온다. 마수가 현실 세계를 파괴하는 걸 막으려면 헌터들이 던전에 들어가서 마수를 먼저 사냥해야만 한다. 아무도 왜 던전이 생겼는지 왜 일부 사람들한테 헌터의 힘이 주어졌는지 알지 못한다. 어쨌든 필요에 따라 세상엔 헌터 이코노미라는 게 생겨난다. 헌터는 마수를 잡고 돈을 번다. 정부는 헌터한테 의존해서 질서를 유지한다.


《나 혼자만 레벨업》의 세계에서 레벨은 처음부터 정해진 것이다. S급은 S급으로 태어났고 E급은 E급으로 태어났다는 말이다. 누구는 금수저로 태어나고 누구는 흙수저로 태어나는 현실의 복사판이다. 그래서 원래 E급으로 태어난 흙수저 성진우한텐 미래가 없다. 아무리 발버둥쳐도 어차피 E급이기 때문이다. E급은 너무 약해서 던전에 잘못 들어갔다간 죽을 수도 있다. 마수를 사냥해서 부자가 된다는 건 꿈도 못 꿀 일이다. 그런데도 성진우는 계속 던전에 들어간다. 다른 길이 없기 때문이다. 자꾸 다쳐서 나오는 성진우한테 별명이 붙는다. 인류최약병기 성진우다.


그러다 아주 예외적인 일이 성진우한테 일어난다. 모두가 레벨업이 불가능한 세상에서 성진우 혼자만 레벨업이 가능해진 것이다. 제목 그대로 나 혼자만 레벨업이다. 이윽고 햇병아리 E급 헌터였던 성진우는 극한의 레벨 테스트를 넘고 넘어 극한의 레벨업을 시작한다. 레벨업이 된다고 해서 레벨업이 쉬운 거라 기대해선 안 된다. 성진우한테 주어지는 시련은 상상 이상이다. 자신의 한계를 처절하게 돌파해나가야만 한다. 스스로를 깨지 않으면 레벨업은 없다. 결국 성진우는 인류 어느 누구도 도달하지 못한 레벨에 이른다.


《나 혼자만 레벨업》을 3년 동안 연재하면서 장성락 작가도 성진우와 같았다. 《나 혼자만 레벨업》은 전대미문의 대박을 쳤지만 동시에 전대미문의 완성도를 자랑하는 웹툰이다. 일단 컷수가 여느 웹툰을 압도한다. 웹툰의 난이도 레벨은 일단 컷수로 평가된다. 장성락 작가는 매주 평균 70컷에서 80컷을 오가는 작업량을 소화했다. 매주 60컷만 그려도 웹툰 업계에선 살인적인 노동 강도라고 불린다. 장성락 작가는 《나 혼자만 레벨업》 127화에선 무려 99컷을 그렸다. 전설적인 에피소드다.


장성락 작가도 《나 혼자만 레벨업》의 주인공 성진우처럼 작업 기간 내내 끊임없이 스스로의 한계를 넘어섰던 셈이다. 《나 혼자만 레벨업》의 미친 완성도는 장성락의 미친 레벨업이 있어서 가능했다. 장성락 작가는 작업할 때 만큼은 적당히 타협할 줄 몰랐다. 2020년 2월 〈웹툰가이드〉와의 인터뷰에서 장성락 작가는 스스로 “잘 그렸다고 생각하는 컷이 있는지” 묻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아직은 없습니다.” 이런 말도 했다. “저는 아직 제 작품이 퀄리티가 높다는 생각을 하지 않아서 대답하기 쉽지 않습니다. 저는 사실 제가 예전에 그린 그림이 부끄러워서 잘 보지 못하는 스타일이예요.” 장성락 작가는 끊임없이 자신의 한계에 도전하는 아티스트였다. 《나 혼자만 레벨업》은 스토리가 전개될수록 성진우가 레벨업하는 것만큼이나 장성락 작가의 작화와 연출도 레벨업된다. 카카오 웹툰은 유료다. 《나 혼자만 레벨업》은 양과 질에서 유료결제가 아깝지 않은 웹툰으로 유명했다. 장성락 작가가 무엇을 예상하든 그 이상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장성락 작가는 본인을 불태워서 작품을 창작했다. 《나 혼자만 레벨업》 작업을 하면서 건강을 많이 해쳤다. 〈웹툰가이드〉와의 인터뷰에서 장성락 작가 스스로도 이렇게 고백할 정도였다. “사실 날이 갈수록 건강이 안 좋아지는 게 느껴지네요.” 운동을 열심히 해보겠다고 작정할 정도였지만 끝내 지병으로 인한 뇌출혈로 갑작스럽게 타계하고 말았다. 1985년생으로 향년 37세였다.


장성락 작가가 한국 웹툰에 미친 영향은 어마어마하다. 일단 블록버스터 웹툰이라는 장르를 만들어냈다. 플랫폼의 성패를 좌우하는 건 알고 보면 히어로급 콘텐츠다. 영상 스트리밍이든 웹툰이든 방정식은 동일하다. 넷플릭스를 반석 위에 올려놓은 건 〈하우스 오브 카드〉였고 위기에서 구한 건 〈오징어 게임〉이었다. 디즈니 플러스의 성장동력은 마블 시리즈다. 웹툰 산업의 선발주자였던 네이버 웹툰을 견인한 건 조석 작가의 〈마음의 소리〉였다. 《나 혼자만 레벨업》도 그런 히어로 콘텐츠 가운데 하나다. 그런데 《나 혼자만 레벨업》은 같은 히어로 콘텐츠 중에서 레벨이 좀 다르다. 웹툰 장르가 블록버스터 영화급의 박진감과 볼거리로 독자들을 현혹시킬 수 있다는 걸 보여준 작품이기 때문이다.


《나 혼자만 레벨업》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액션 영화를 방불케하는 액션과 스토리를 보여준다. 결과적으로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 못지 않은 글로벌 흥행을 기록했다. 문화와 언어는 달라도 《나 혼자만 레벨업》의 액션과 스토리는 통하기 때문이다. 네이버와 카카오 모두 글로벌 웹툰 시장 공략에 사활을 걸고 있다. 카카오는 북미 웹툰 플랫폼 타파스를 인수했다. 네이버도 웹소설 플랫폼 왓패드를 인수했다. 여기서 양측의 승부를 가를 결정타는 《나 혼자만 레벨업》처럼 블록버스터급 웹툰의 보유 유무다. 소비자는 플랫폼에 충성하지 않는다. 콘텐츠에 충성한다. 〈오징어 게임〉을 보려고 넷플릭스에 가입하고 〈탑건:매버릭〉을 보려고 롯데시네마에 간다. 극장 구경하려고 극장에 가는 관객은 없다는 말이다. 장성락 작가는 《나 혼자만 레벨업》의 레벨을 국가권력급까지 끌어올렸다. 흥행성과 작품성을 둘 다 잡았다. 덕분에 웹툰 작가들은 앞으로도 《나 혼자만 레벨업》 같은 블록버스터 웹툰에 도전할 수 있게 됐다.


장성락 작가의 유산은 또 있다. 지금 시대에 가장 중요한 스토리텔링은 게임이다. 게임의 스토리텔링 구조는 이미 남녀노소 모두한테 익숙하다. 게임 스토리텔링의 핵심 중 하나가 레벨업이다. 스테이지를 클리어하고 레벨을 올려서 강해지고 부유해지는 것이다. 지금의 레벨을 인식하고 더 나은 레벨로 올라가려는 것이야말로 지금 시대를 상징하는 스토리텔링이다. 여기서 중요한 건 규칙이다. 모두에게 공정한 규칙이 있어야 레벨업의 의미가 생긴다. 누군가 치트키를 쓴다거나 캐릭터간 밸런스가 붕괴돼 있으면 게임의 인기는 금방 시든다. 우리는 모두 레벨업을 꿈꾼다. 우리가 사는 세상의 규칙은 결코 공정하지 않다. 《나 혼자만 레벨업》의 주인공 성진우도 끝내 공정하지 않은 규칙에 도전하기에 이른다. 《나 혼자만 레벨업》 이후 이런 게임 스토리텔링을 기반으로 한 웹툰 작품들이 우후죽순처럼 등장하는 건 이런 이유가 있다. 장성락 작가는 《나 혼자만 레벨업》이라는 웹툰에 시대 정신을 담아냈다.


장성락 작가는 끝내 자신이 창조한 성진우와 헌터들이 살아 움직이는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지는 걸 보지 못했다. 《나 혼자만 레벨업》은 2023년에 선보일 예정이다. 제작은 A-1 픽쳐스가 맡았다. A-1 픽쳐스는 〈일곱개의 대죄〉를 만든 일본 애니메이션 명가다. 카카오엔터테인먼트는 지난 1월엔 《나 혼자만 레벨업》의 NFT를 판매했다. 장성락 작가는 세상을 떠났지만 그가 남긴 《나 혼자만 레벨업》의 레벨은 계속 업그레이드되고 있다는 의미다.


장성락 작가는 2005년 무렵 군대에서 전역한 직후 만화 일을 시작했다. 당시엔 웹툰이라는 건 존재하기도 전이었다. 장성락 작가의 그림 솜씨를 눈여겨 본 친한 형의 제안으로 만화 업계에 발을 내딛게 됐다. 두 사람은 15년 동안 동고동락했다. 《스페이스 댄디》와 《거충열도》같은 작품을 함께 작업했다. 《나 혼자만 레벨업》 작업을 장성락 작가한테 제안한 것도 형이었다. 아티스트는 필생의 한 작품을 남기기 위해 평생을 살아간다는 말이 있다. 《나 혼자만 레벨업》으로 장성락 작가의 이름은 한국 웹툰 역사에 영원히 남겨졌다. 나 혼자만이 아닌 우리 모두의 레벨업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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