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순덩어리의 응원
공학박사지만 정의보다는 비유를 좋아한다.
숫자를 다루지만 정확한 것보다는 모호함의 가능성을 사랑한다.
혼자가 좋지만, 사람들과 함께 사는 이야기에 눈물이 흐른다.
도전하는 것을 싫어하는데, 돌아보니 극단적인 도전이 참 많았다.
동심과 이상을 꿈꾸지만, 누구보다 현실적이다.
나를 아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단순한데 복잡한 사람이라고 말한다.
말은 따뜻한데 내용이 차갑다.
MBTI가 다 중간쯤 위치하고 있어서 하루하루 MBTI가 다르다.
심지어 혈액형마저도 B형과 O형을 왔다 갔다 한다.
소크라테스는 사람은 누구도 스스로를 잘 모른다며 ‘너 자신을 알라’했다는데 나한테는 그 권유는 난이도가 너무 높다. 이런 나라서, 스스로도 사는 게 참 힘들었다. 내 안의 수많은 자아들이 쉬는 놈 하나 없이 다 활개치고 있어서 하루에도 수십 번씩 내 안에는 전쟁이 발생한다.
한 때는 이런 내가 참 싫었다.
그런데, 이런 나라서 할 수 있는 일들이 있었다.
나는 모순덩어리인데 고집쟁이다.
정반대의 것들을 다 붙잡고 사는 모순덩어리 고집쟁이 인생.
모순 속 어느 중간쯤에서 결론을 낼 수도 있었지만 다행인지 불행인지, 여기에 고집이 더해졌다. 그렇게 정반대의 것들을 모두 받아들일 수 있는 해결책을 찾아 끊임없이 고민하고 공부하고 덤벼들었다.
그렇게 내 안에 여러 인생의 이야기들이 쌓이기 시작했다.
처음엔 내게 이런 이야기가 있는 줄도, 내게 쌓인 이야기들이 누군가를 응원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모두가 살 듯 그냥 대화하다 보니 어느덧, 내 이야기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 많아졌다.
그리고 내 이야기를 들어준 사람들을 통해서 알았다.
내가 싫어했던, 고집쟁이 모순덩어리로 살아왔던 이야기가 누군가를 응원할 수 있다는 사실을.
내가 싫어한 내 시간들이
때론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새로운 길을 보여주는 힌트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때론 주저앉은 사람들이 다시 일어날 응원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때론 사랑을 연결해 주는 오작교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때론, 따라갈 길이 되기도 하고, 포기하기 싫은 상황에서 포기하고 싶지 않을 이유가 되기도, 포기해야 하는 상황에서 포기할 수 있는 용기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그제야 알았다.
그리고 그들이 내 이야기를 들어주고 사랑해 줘서, 나도 이런 나를 좋아하게 됐다.
피곤하기만 하고 날 괴롭히기만 하던 나다움이, 다른 사람들에게 응원이 된 후 감사가 됐고, 그 감사는 내가 날 사랑하도록 응원하는 소리가 됐다.
그래서 이젠 이런 내가 참 좋다.
그렇게 내가 응원하고 나를 응원하는 이들에게 글을 쓰는 게 어떻겠냐는 권유를 많이 받게 됐다. 그들은 이런 이야기가 필요한 사람이 많다고 했다.
사실 난 아직 이 이야기가 필요한 사람이 많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많지 않아도 이름 모를 한 명에게라도 닿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써야 할 이유는 충분하지 않을까.
그래서 글을 써보기로 했다. 많은 사람에게 닿지 않을지 모르지만, 필요한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니 그 사람을 위해 글을 써보기도 했다. 그들이 생각해 주는 만큼 난 대단한 사람이 아니고, 모순덩어리, 고집덩어리일 뿐이지만 그래도 괜찮다면 응원하고 응원받고 싶어서 글을 써보기로 했다.
비록, 내 글은 나와 같이 복잡하고 모순덩어리 같을지도 모르고, 주제도 방향도 주장도 경험도 이랬다 저랬다 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나와 닮은 이야기가 지금 큰 고민과 갈림길 속에 있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와 설렘으로 글을 써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