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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똑서 Jul 19. 2018

뭘 닥쳐? 알려면 똑바로 알아

지하철 퇴근길, 할아버지가 문재인 대통령이 “공산당, 좌파네”하며 욕을 하면서 이승만, 박정희 전 대통령을 옹호했다. 술 취한 할아버지이다. 할아버지 옆에 앉아 있는 할머니가 가만히 듣고 있다가 더이상 못들어주겠다며 박근혜, 최순실 욕하며 맞대응했다.

무심결에 할머니의 말을 들었다. 무식한 할머니가 아니다. 오히려 아는 척 할아버지 수세가 밀린다.

할머니가 할아버지에게 반론을 제기한다.

“공산주의 정의가 뭔 줄 아느냐? 대한민국 국민 중에 당신이 말하는 공산주의를 원하는 사람은 없다.”

할아버지는 밑도 끝도 없이 “문재인 말이야. 제대로 대통령직을 수행해야지. 빨갱이 편만 들어.”라고 소리친다.

할아버지 말에 할머니가 다시 받아친다.

“그럼 박근혜는 세월호 사고났을 때 제대로 대통령직 수행했습니까? “제대로”라는 말은 그 역할을 합당하게 못 했을 때 사용하는 말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좌파, 공산당이라고 몰아세우지 말고 대통령 역할을 합당하게 못 한 걸 똑바로 말해보세요.”    

논리적으로 따지는 할머니의 말에 술 취한 할아버지는 이제 안 되겠는지 손가락질을 하며 큰소리를 친다.    


“닥쳐. 할망구 가만히 있어”    


나는 할아버지가 저렇게 나올 거라는 것을 짐작하고 있었다. 보통 찌질 이들의 특성이다. 조근 조근 말이 안 되면 소리치고, 몸싸움까지 가는 찌질 이들. 이제 끝났을거라고 생각했다. 술 취한 사람 건드려봐야 좋을 게 없으니까.


그런데 아니었다. 할머니는 주눅 들지 않았다. 할머니는 겁먹지 않았다. 피하지 않았다. 고성에 더 큰소리로 맞서 싸웠다.


“뭘 닥쳐? 알려면 똑바로 알아”


계속 두 노인네의 투덕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읽던 책을 접고 할머니의 말에 집중했다.


보통 사람들은 술 취한 사람을 피한다. 똥이 무서워서 피하는 게 아니라 더러워서 피하는 것처럼 술 취한 사람들 행동이 더럽기 때문에 피하는 것이다. 술 취한 사람들이 뭐라고 지껄이던 신경 끈다. 말 같지 않는 말을 내뱉든 말든 상관할 바 아니다.

그런데 할머니는 아니었다. 똥을 싸는 할아버지에게 똥을 아무데나 싸서는 안 된다고 알려 주었다. 부당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주장할 줄 알았다. 젊은 사람들도 아닌데 말이다.     

지금에야 남녀가 평등하다. 여자 아이도 남자아이와 동등하게 교육을 받는다. 하지만 70대 할머니가 살던 시대는 남존여비사상이 뚜렷했다. 여성은 남성에 비해 교육을 받지 못했다. 가정에서는 아내는 남편을 받들고 살아야한다는 사회적 분위기였다. 그래서 나는 할머니의 태도가 그 신기했다. 할아버지가 폭력적인 모습을 보여도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 전혀 주눅 들지 않았다.


정치적 쟁점을 벗어나 여성으로서 할머니를 응원했다. 남성이 고압적인 자세로 여성에게 위협을 가해도 자신의 권위와 정의를 내려놓지를 않기를 바랐다. 그래서 할머니를 응원했다.    

“굴하지 마라. 물러서지 마라. 당당 하라.”     

할머니를 보고, 말하는 것을 들으면서 뭔가가 느껴졌다. 세월의 힘이었다. 할머니는 강했다. 그녀도 한때는 여린 소녀였을 것이다. 그러다가 엄마가 되었고, 지금은 할머니가 되었다. 그 세월!! 모진 풍파에 많이 갈고 닦였구나. 할머니! 이 말에 답이 있었다. 축적된 시간의 힘! 할머니는 그 세월, 시간을 견디며 살아냈다. 삶을 온전히 겪었다. 피하지도 도망가지도 않았다. 그럴수록 두렵지 않았다. 무섭지 않았다. 말 한마디 한마디에서 할머니의 힘이 느껴졌다.     

수세에 밀린 할아버지는 “에이씨”라는 말과 함께 다른 칸으로 이동했다. 할머니의 압도적인 승리였다. 더 놀란 것은 그다음 할머니의 태도였다.


할아버지가 사라지자 할머니는 노약자석에서 일어나서 한두발짝 걸어나와 다른 승객들을 향해 몸을 돌렸다. 그리고는 승객에게 큰소리로 사과하며 머리를 숙였다.


“시끄럽게 해서 죄송합니다.”


나는 속으로 박수를 쳤다. 마지막까지 교양 있는 태도에 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전철에서 나의 롤모델 할머니를 만났다. 영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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