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출근길, 오늘도 어제와 마찬가지로 백팩을 앞으로 돌려 메고 지퍼를 열고 책을 꺼낸 다음, 지퍼를 열어 놓은 상태에서 그 위에 책을 펼쳐 놓는다. 지금 읽는 책은 허태균 교수의 <어쩌다 한국인>이다. 재미있지만 쉽게 팍팍 넘어가지는 않는다. 가끔 ‘과연 한국 사람들이, 또 내가 그런가?’라는 자문자답이 필요한 부분이 있다. 그런데 내 옆 어떤 사람이 시끄럽게 아침 독서를 방해한다. 한 잔소리꾼 스승이 옆에 있는 사람에게 무언가를 알려주려고 있다.
조용한 아침 출근길에서 오랫동안 전화 통화하거나 옆 사람과 얘기하는 행위는 민폐이다. 퇴근시간에는 시끄럽게 하는 사람은 많아도 아침 출근길에는 그런 사람이 드물다. 출근길 지하철은 대부분 부족한 아침잠을 보충하거나 스마트폰으로 무엇을 보거나 듣고 있어 조용하다. 이런 조용한 분위기에서 단 한 사람만이 계속, 쉼 없이, 오랫동안 이야기한다고 상상을 해보라.
1) ‘처음에는 그럴 수도 있지’라고 생각하고 2) 중간쯤에는 ‘누구지?’ 하면서 얼굴을 보려고 하고 3) 마지막에는 ‘쟤 뭐야?’라며 얼굴표정이 찌그러진다.
잠깐 들어보니, 그 말 많은 스승은 같은 회사에 다니는 직장상사이고 듣는 사람은 부하 직원이었다. 직장상사는 신이 나서 부하 직원에게 많은 것을 알려주려고 했다. 주요 전달사항은 “책을 읽어라”이다. 이 직장상사는 어디서 읽은 좋은 말을 인용하면서 설명했다. 그런데 그것이 완전 일방통행이다. 듣는 부하직원은 맞장구치는 소리 한 마디도 없는데 직장상사 혼자 신나서 떠든다. 그래서 더 안타까워진다. 책만 읽으면 뭐하나? 대화의 기본을 모르는데 말이다. 대화라는 것은 상대방과 오가는 말이 있고 서로의 반응이 있는 상호작용이다. 어찌 혼자서 일방적으로 떠드는데 그것이 진정한 배움이 될 수 있겠는가? 아무리 좋은 교훈이라도 상대방이 들을 자세가 안 되어있으면 배움이 될 수 없다. 요즘말로 영양가 1도 없는 행동이다. 나는 직장 상사 분을 보면서 "책을 읽어라"고 하기 전에 자신이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소통이 가능한 사람인가 돌아보기를 바랐다. 부하직원의 얼굴을 돌아보니 만원인 지하철에서 주변 사람들이 자꾸 쳐다보니까 민망해서 어쩔 줄 몰라 하는 표정이었다.
나는 책 권수만 많이 읽었다고 생색내듯이 말하는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들이 진정 책을 읽었는지 모를 일이다. 책은 머리로만 읽으면 안 된다. 한 권을 읽더라도 가슴으로 제대로 읽어야 한다. 그럴 때 인간과 세상을 더 깊게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책을 읽으면 다른 사람의 심리를 엿보고 그 사람이 되어서 생각할 수 있다. 책에는 사람 사는 이야기가 담겨있고, 그를 통해 우리는 다른 사람들을 알게 되고, 세상을 이해하게 된다. 책을 많이 읽으면 배려심이 높아진다. 즉, 책을 통해 진정한 소통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책이 필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진정한 대화란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다양성을 존중할 때 비로소 가능하다. 대화란 상호신뢰, 상호존중을 밑바탕으로 상대방과 오가는 말이 있고 서로의 반응이 있는 상호작용이다. 사람의 직위가 낮다고 해서 그 사람의 생각이 낮은 아니다. 내가 옳은 만큼 다른 사람의 생각도 옳다. 다른 사람의 의견을 존중하고 들을 줄 알아야 한다. 다른 사람의 좋지 않은 점도 타산지석으로 삼으면 또 다른 배움이 된다. 바로 이것이 대화의 기본정신이다. 다른 사람 말을 들으려는 태도와 타인에 대한 존중이 밑바탕이 되어 있어야 진정한 대화가 가능하다.
진정한 대화는 머리도 책 읽기보다 가슴으로 읽어야 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다시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