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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똑서 Oct 06. 2018

몸이 커지면 마음도 커지는 거죠?

평일보다 주말에 더 일찍 일어나는 5살 딸 덕분에 나도 일찍 일어났다. 더 자고 싶은 마음을 떨쳐내고 아이를 위해 아침밥을 준비했다. 그런 엄마가 착해 보였는지 딸이 물었다.

“엄마, 몸이 커지면 마음도 커지는 거죠?”

몸이 크는 만큼 마음도 저절로 자랄 거라는 아이의 생각이 사랑스러웠고 발상이 신기했다. 그렇지만 딸의 생각에 감탄만 하고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키는 태어났을 때 50cm 전후, 성인이 되면 태어났을 때보다 3~4배는 키가 큰다. 그렇다면 마음의 크기는 어떨까? 마음도 태어났을 때보다 3~4배 커질까? 눈에 보이지 않아 측정은 할 수 없지만, 커져야 맞는 게 아닐까? 그런데 답하지 못했다. 아니할 수 없었다. 내가 어린 시절에 가졌던 마음보다 지금 마음이 더 커진 것 같지 않으니까. 오히려 나이 들면서 점점 옹졸해지고 색안경을 끼고 세상을 보면서 마음이 더 작아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순진하고 마냥 착하기만 한 사람을 등쳐먹는 사람이 있었다. 그래서 ‘순진하면 바보 취급당한다’, ‘약아야 한다’, ‘착하고 순진하면 호구가 된다’라고 생각했다. 조금이라도 손해 보지 않으려고 살았다. 이해득실을 따지게 되고 남이 선뜻 베푼 호의도 ‘무슨 꿍꿍이가 있는 건 아닌가’라는 의심부터 했다. 그러니까 나이 들수록 마음이 넓어지는 게 아니라 더 옹졸해지고 점점 좁아졌다. 


5살 된 딸이 하는 말이 가슴에 콕 박혀서 계속 되새김되었다. 아이의 입에서 나온 말은 계속 ‘이건 뭐지?’라는 질문을 던졌다. 어떻게 요렇게 작은 녀석이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을까? 아이가 하는 말에서 세상의 진리를 발견하기도 했다. 그런 말들이 반복되면서 ‘우리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뭔가를 알고 있다’라는 나만의 확신이 들었다. 


아이들은 이미 진리를 알고 있는 건 아닐까? 그렇다면 마음은 온전하고 완벽한 상태로 태어나는 것은 아닐까? 이런 생각으로 결론 맺으려다 혹시나 싶어 이제는 7살이 된 딸에게 물어봤다.

“딸, 네가 5살 때 엄마한테 ‘몸이 커지는 만큼 마음도 커져요?’라고 물어본 적 있는데, 5살 때 보다 7살 때 네 마음이 더 커진 것 같니?”

“어. 커졌어”

딸은 뜸도 들이지 않고 확신에 차서 단박에 말했다. 당연하다는 듯이 말하는 딸에게 또 물었다. 

“마음은 눈으로 볼 수 없는데 어떻게 커졌는지 알아?”

“다 느껴져”

“엄마가 생각해보니까 몸은 작게 태어났지만 마음은 처음부터 완벽하게 태어나지 않았을까?”


딸은 고개를 심하게 가로저으며 손사래를 치며 아니란다. 딸은 작년 6살 때보다 지금 7살 때 마음이 커졌다고 말한다. 느낌으로 분명 마음이 커졌다는 것을 확실히 알 수 있단다. 내 마음은 성장 속도가 느려서 느낌으로 알 수 없었고, 딸 마음은 성장 속도가 빨라서 느낌으로 확실히 알 수 있었던 걸까?  

그러고 보니 나이 들면서 마음이 커지는 게 분명 있다. 

첫째, 이해심이 넓어졌다. 20대에는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을 보면 “이상하다”라고 말했다. “진짜 이상한 사람이네”라고 치부해버렸다. 그 사람을 이해하려고 노력할 가치도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말이다. 살아보니 이해할 수 없는 별의별 일이 생겼다. 나와는 거리가 먼 일이라고 생각했던, 참 이상한 일들이 말이다. 그렇게 다양한 사람과 상황을 경험하면서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폭도 넓어졌다. 

둘째, 지혜로워졌다. 어렸을 때보다 앞에 나서고 싶고, 눈에 띄고 싶고,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나이 들면서 많이 수그러들었다. 남의 눈에 잘 띄지 않는 조용한 곳을 좋아하고, 웅크릴 줄도 안다. 이제는 대박보다는 소박을 꿈꾼다. 남에게 인정받기보다 내가 즐길 수 있는 지금을 사는 지혜가 생겼다. 그래서 베스트셀러가 되지 않아도 무명작가여도 지금도 계속 글을 쓴다.

셋째, 인간관계로부터 조금씩 자유로워지고 있다. 까놓고 이유 없이 사람이 미운 경우가 있다. 반대로 이유 없이 미움을 받기도 한다. 이유 없이 사람이 미운 이유야 나의 내면을 치유하면 된다. 물론 그렇게 되기까지 부단한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다. 그렇지만 남이 나를 이유 없이 미워하는 데에는 어찌할 수 없다. 그런데 말이다. 이유 없이 남을 미워했다가 또 이유 없이 미움을 당하기도 하면서 사는 게 아닐까. 내 주위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사랑할 필요도 없고 모두에게 사랑받을 필요도 없다. 그렇게 혼자서도 잘 놀 수 있는 자유로운 영혼이 되었다. 그러면서 사람 관계에 조금씩 자유로워지고 있다. 인간관계만큼은 노력도 필요하지만 힘을 뺄 필요가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엄마가 되고서야 마음이 커지고 있다고 확신했다. 딸이 미운 7살이라서 그런지 말도 행동도 밉게 하는 횟수가 많아졌다. 그럴 때 엄마인 나도 인간인지라 똑같이 미운 행동이 나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딸에게 밥을 먹이고, 잠들기 전에 어김없이 동화책을 읽어준다. 

기본적으로 사람의 관계는 “주는 만큼 받는다”라는 Give and Take에 근거한다고 믿는다. 엄마가 되고서야 부모와 자녀관계는 다르다는 것을 알았다. 엄마는 화가 나도 자녀를 모른 척, 본체만체할 수 없다. 부모는 자식에게는 많이 인내하고 밑지는 관계일 수밖에 없다. 나는 지극히 이기적인 존재라고 믿었는데, 내가 밑지는 존재가 될 수 있다는 걸 엄마가 되고 나서야 알았다. 

불을 끄고 잠을 자려고 하는데, 딸이 어두운 침대 방에서 “엄마, 난 엄마가 화내도 나를 사랑하는지 안다”라고 말을 건넨다. 

딸도 느끼듯이 내가 엄마로서 마음이 커가는 거겠지? 그러고 보면, 삶에 더 많은 경험을 허용할수록 내 마음도 커지는 것 같다. 엄마가 되길 참 잘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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