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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똑서 Nov 10. 2018

엄마는 커피랑 김치 좋아하지?

늦은 퇴근 후, 부모님 집에 딸을 데리러 갔다. 마침 제사를 올리기 직전이었다. 아빠한테는 증조부모님, 나한테는 고조부모님의 제사였다. 엄마가 조기를 가리키면서 말했다.

“할머니가 생선을 참 좋아하셨지. 생선 대가리 하나 버리지 않고 다 드셨어. 그때는 못 살아서 많이 못 드셨어!! 에휴~ 불쌍하기도 하지. 이렇게라도 많이 드시고 가세요.”

엄마는 증조부모님과의 추억을 되살리며 안타까워하셨다. 

“어떻게 죽은 사람이 이걸 먹어?”

제사의 의미를 잘 모르는 딸은 할머니가 하는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어,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영혼이라는 게 있어. 제삿날에는 죽은 사람의 영혼이 와서 음식을 먹는다고 생각하는 거야”

“제사가 뭔데?”

“이다음에 엄마가 죽으면, 엄마가 죽은 날에 엄마가 좋아하는 음식을 올려놓고, 엄마를 기억하는 거야. 그게 제사야”

나름 제사의 의미를 아주 잘 설명했다고 생각하며 스스로 뿌듯해하던 찰나에 뭔가 골똘히 생각하던 딸이 갑자기 말했다.

“엄마는 커피랑 김치를 좋아하지.”

앗, 내 말에 내가 걸렸구나. “자승자박”이라는 한자가 머리 위에서 뱅글뱅글 떠돈다. 미래에 내가 죽은 날에 딸이 김치와 커피만 올려놓고 나를 기억하는 장면이 그려졌다.

직원들과 회식하는 날, 이다음에 내가 죽으면 김치와 테이크아웃 커피만 있는 제사상을 받게 생겼다며 우스갯소리로 시작했다. 그랬더니 작년에 어머니를 잃은 직원이 돌연 말한다. 

“어, 저도 돌아가신 어머니 제삿날에 술 대신 커피를 올려요.”

다들 의아해서 물었다.

“왜요?”

“엄마는 술을 못 드셨지만, 원두커피는 하루에 2~3잔씩 내려서 드셨어요. 그래서 왠지 술 보다 커피를 더 좋아하실 것 같아서요.”

가슴이 뭉클했다. 아들이 엄마가 평소 즐기던 음식을 기억하고 그것을 제사상에 올린다. 그리고 엄마를 기억한다. 

엄마도 고조할머니가 평소에 좋아하던 음식을 보면서 추억을 더듬었다. 회사 직원도 그랬다. 그러니 딸도 평소에 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보면서 엄마를 기억하면 그걸로 됐다 싶었다.

  <코코>라는 만화영화를 딸과 같이 봤다. 어린이 영화였지만 어른이 봐도 스토리와 감동이 전혀 유치하지 않았다. 이 영화는 멕시코 ‘죽은 자들의 날’을 소재로 만들어졌다. 멕시코 인들은 1년에 단 한번 ‘죽은 자들의 날’에만 죽은 자들이 산 자의 공간으로 건너올 수 있다고 믿는다. 이때 죽은 자가 산 자의 공간으로 건너오려면 제단에 사진이 올려져 있어야 한다. 

  미구엘이라는 소년이 있다. 미구엘은 구두 명장 집안의 막내이다. 고조할아버지가 뮤지션이 되겠다며 아내와 딸을 버리고 집을 나간 후 고조할머니 마마 이멜다는 먹고살기 위해 구두를 만들었다. 그렇게 가업이 시작된 것이다. 자신과 딸을 버리고 떠난 남편을 원망한 고조할머니는 딸에게 아빠의 기억을 지우기 위해 아빠의 물건과 사진을 모두 버린다. 그리고 집안 대대로 온 가족이 음악을 못하게 한다. 하지만 미구엘은 뮤지션이 되는 게 꿈이다. 자신의 꿈을 이해해주지 않는 가족을 피해 가출을 한다. 우연한 사건으로 죽은 자의 세계에 들어간 미구엘은 진짜 고조할아버지 헥터를 만난다. 죽은 자는 살아있는 사람이 아무도 자신을 기억해주지 않으면 죽은 자들의 세상에서도 소멸된다. 살아있는 사람의 기억에서 완전히 사라진 것이다. 유일하게 헥터를 기억하는 딸 코코는 이제 늙었다. 코코는 휠체어에 의지해 이동하고 기억도 가물가물한 치매 초기 증상을 앓는 할머니이다. 죽은 조상의 은총 덕분에 현실세계로 돌아온 미구엘은 죽은 자의 세계에서 점차 사라져 가고 있는 고조할아버지 헥터를 위해 증조할머니인 코코에게 돌아간다. 미구엘은 증조할머니 코코에게 “기억해줘”라는 노래를 불러준다. 기억이 거의 남아있지 않았던 코코는 그 노래를 듣고 과거를 기억해낸다. 기억을 찾은 코코 할머니는 예전에 아버지가 보내주었던 편지와 엄마 몰래 감춰두었던 찢어진 아빠 사진 조각도 찾아냈다. 코코가 아빠를 기억해내게 된 매개체는 바로 아빠가 어린 딸 코코에게 만들어준 노래 ‘기억해줘’였다. 노래 가사는 다음과 같다. “기억해줘. 내가 어디에 있든지. 기억해줘. 슬픈 기타 소리 따라 우린 함께 한다는 걸 언제까지나 널 다시 안을 때까지 기억해줘.”

살아가면서 가끔 사랑하는 사람들에 대한 기억을 잊어버린다. 특히 죽은 사람에 대한 기억은 말할 것도 없다. 나는 죽어서도 딸에게 영향을 끼치고 싶어 하는 욕심 많은 엄마인가 보다. 죽음 이후, 내가 죽은 그 이후를 생각한다. 죽음 이후에 딸이 어떻게 잘 살고 있는지 무슨 고민거리는 없는지 궁금할 거다. 

내가 죽은 날 삐까뻔쩍한 제사상을 차리고, 많은 사람들이 몰려서 와서 나를 기억하는 척하는 허울을 원하지 않는다. 내가 죽은 날이 딸에게는 그냥 평온한 일상 중에 하루이기를 바란다. 일상 중에 엄마와의 추억을 기억하는 날이기를 바란다. 그 기억이 딸에게 위로가 되기를 바란다. ‘우리 엄마는 이걸 좋아했었어. 우리 엄마는 김치를 좋아해서 김치 없이는 밥도 잘 먹지 못 했어. 우리 엄마는 하루에 한잔은 꼭 커피를 마셔야 했지. 우리 엄마는 말이야’하고 나를 기억하며 살포시 웃음을 지었으면 좋겠다. 그 기억이 지금을 살아가는데 힘이 되기를 바란다. 

나는 죽어서도 나를 기억하는 딸에게 찾아올 것이다. 내세가 있다 없다를 떠나, 종교를 유무를 떠나 그렇게 할 수 있다면 그렇게 하고 싶다. 그냥 형식적인 제사가 아닌 그냥 엄마를 기억하는 날이었으면 좋겠다. 내가 좋아하던 음식과 내 사진을 보면서 딸이 엄마와 함께 했던 기분 좋았던 날을 추억했으면 좋겠다. 

죽음 이후에 나를 기억할 추억을 위해 지금 딸과 좋은 추억을 쌓아둬야겠다. ‘지금’ 바로 ‘여기’에서 제대로 살아야지. 더 많이 사랑하고, 더 많이 안아주고, 더 많이 웃을 수 있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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