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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똑서 Nov 17. 2018

왜 화를 내는지 먼저 물어봐

직장에서 시기 질투의 대상이 되었다. 같이 근무했던 사람보다 빨리 승진시험에서 합격했기 때문이다. 오래 근무한 선배는 후배가 먼저 승진하면 자신이 근무한 세월이 억울하다. 하지만 그는 시험에서 떨어졌다. 난 그보다 근무한 기간은 짧지만, 시험에 합격했다. 어느 직장에서나 볼 수 있는 광경이다. 하지만 내가 겪은 거는 처음이다. 어리둥절하고 황당했다. 축하받을 줄 알았다. 이렇게 노골적으로 미움을 받을 줄 몰랐다. 나는 정정당당하게 시험이라는 제도에서 합격했고, 그는 떨어졌을 뿐이다. 그런데 왜 이렇게 미움을 받아야 할까? 마음이 불편했다. 7살 꼬마 철학자 딸에게 고민 상담을 했다. 그리고 마지막에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딸, 엄마가 어떻게 할 수 없는 부분이니까 신경 쓸 필요가 없는 거지?”


나는 이미 스스로 답을 내리고 있었다. 그런데 딸은 의외의 답을 내려줬다.

"먼저 그 사람이 왜 화를 내는지 물어봐. 그런 다음에 대화를 해" 


사람들은 심심풀이 땅콩 같은 가십거리를 제외하고 왜 다른 사람이 가슴이 아픈지, 왜 그렇게 힘들어하는지 알고 싶지 않다. 그 문제는 그의 문제일 뿐 내 문제는 아니고, 내가 어찌해줄 수도 없고, 또 괜히 관여했다가 코 꿸 수도 있다. 불평불만을 들어주다가 내 에너지가 빨려서 피곤해지고, 어차피 내가 해결해 줄 수도 없다. 괜히 도와준다고 하다가 내 일이 될 수 있고 괜히 얘기 들어주다가 내 시간과 내 감정만 소비될 수 있다. 이런 일을 몇 번 겪어본 사람들은 ‘신경 끄자. 신경 끄자’ 그렇게 속으로 되뇐다.


가족, 친척, 친구, 직장동료, 아이 친구의 엄마들, 동네 이웃들…. 많은 사람들과 어울리지만, 이렇게 ‘신경 끄자’라고 생각하면 신경 써야 할 사람들의 범위가 점점 줄어든다. 내가 신경을 끄면, 남들도 나에게 신경을 끈다. 그러면 정작 내가 힘들 때, 하소연이라도 하고 싶을 때 말할 대상이 없어진다. 외로워진다.


왜 다른 사람들에게 신경 끄기 기술을 발휘하며 살아갈까? 나를 돌아보니, 다른 사람에게 상처 받지 않으려고 애쓰는 거였다. 그렇다면 왜 다른 사람한테 관심을 가지는 것이 상처가 될까?


다른 사람을 도와주다가 사기도 당하고, 의도와 다르게 오해받기도 하고, 또 그걸 이용하는 못된 사람들을 겪으며 살아왔다. 직접 당하기도 했고, 주변에서 많이 보고 전해 들었다. 직간접적으로 나의 마음에 상처가 생겼다. ‘이렇게 하면 사람들이 함부로 대하는구나’, ‘막 대해도 된다고 생각하는구나’, ‘다음부터는 얌체처럼 행동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런 상처를 받았던 기억 때문에 신경 끄기 기술을 발휘한다. 다시는 상처 받지 않으려고. 상처 받은 내가 다시는 상처 받지 않으려고 방패막이를 둘러친다. 상처 받지 않으려고 단단히 방패막이를 둘러치니까 덩달아 내 상처를 드러내기도 어려워졌다. 단단히 둘러친 방패막이를 허무는데도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니까. 또 상처를 드러내려면 용기도 필요하다. 내 상처를 보고 다른 사람이 놀라서 도망가거나 오히려 아무것도 아닌데 아파한다고 비웃으면 더 큰 상처가 될 수 있으니까.

“왜 화가 났는지 먼저 물어보라”는 딸의 말이 왜 가슴에 와 닿았을까? 무언가 마음에 찔렸던 거다. 못된 사람들을 겪으면서 상처도 받았지만, 못된 사람들을 구분할 수 있는 눈도 얻었다. 또 가끔은 좋은 사람도 만났다. 괜찮은 사람에게까지 신경 끄고, 방패막이를 사용할 필요는 없는데, 너무 나를 꽁꽁 싸맨 것 같았다. 한 번쯤 내 시간과 감정을 소비해도 좋지 않을까? 한 번쯤 피해를 입어도 좋지 않을까? 그것이 꼭 나쁜 건 아닌 것 같았다. 다른 사람의 생각과 감정을 알 수 있는 기회이니까. 진짜 좋은 친구도 만날 수 있고. 이런 생각을 한다는 자체가 아직은 다른 사람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있다는 거니까 감사한 일이었다. 아직 감정이 살아있다는 거니까.


또 내가 이런 마음으로 사람들을 대하면 상처가 되지 않을 수도 있다. ‘하나도 손해 입지 않겠다’라는 마음으로 사람을 대하면 조금만 손해를 입어도 상처가 된다. 그렇지만 ‘내가 저 사람 말을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저 사람에게 위로가 될 수 있으면 좋겠다’라는 마음으로 들어준다면 상처가 되지 않는다.

 내 상처만 들여다봤다. 오히려 상처를 더 많이 받았을 사람은 시험에 떨어진 그 사람인데 …. 나는 '시험에 떨어진 사람의 심정은 이해하지만…'이라고 에둘러서 말하긴 했지만 그 사람이 되어서 생각하지 못했다. 잠시 그 선배가 되어봤다. 시험에 떨어지니까 나도 모르게 비교를 당했다. 갑자기 능력 없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바보가 된 기분이다. 자괴감이 든다. 나보다 후배가 내 직장상사가 된다고 하니까 창피하고 열도 받는다. 잠깐이지만 그 선배 입장에서 생각하니까 조금 더 이해할 수 있었다.


직장생활에서는 누군가에게 왜 화를 내는지 잘 묻지 않는다. ‘저 사람은 원래 그래’, ‘물어도 솔직하게 말해 줄 리도 없고 물어봤자 나만 불편한 심정이 될 뿐이야. 그러니까 모르는 척, 혼자 화가 풀릴 때까지 기다려주는 게 상책이야’라는 심정으로 넘어간다. 대부분 이렇게 ‘그냥 그러려니’하고 지나간다. 다들 이렇게 생각하니까 혼자서 속앓이 할 수 밖에는 없는 거다. 말하고 싶지 않을 때도 있지만 말하고 싶을 때도 있다. 누군가 ‘왜 화가 났느냐’고 물어보면 다 말할 것 같은데 아무도 물어보지 않는 경우도 있다.

때로는 누군가에게 말하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되기도 한다. 그 사람이 내 문제를 해결해주기를 바라는 게 아니다. 그냥 내 이야기를 진심으로 들어주기를 바랄 뿐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조금이라도 진심으로 들어주려는 마음이다.

놀랍게도 우리 집 꼬마 철학자는 사람들과 사귀고 화합하는 방법을 이미 알고 있었다. 7살 딸이 어떻게 이런 현명한 답을 알고 있었을까? 나는 신경 끄고 피할 생각만 하고 있었는데 말이다.

아마 나도 어렸을 때는 알고 있지 않았을까? 다만, 성장과정에서 상처 받으면서 마음의 문이 닫혔을 게다. 이제 닫혔던 마음의 문을 조금씩 열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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