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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똑서 Dec 01. 2018

엄마 냄새가 그 어떤 향수보다 향기로워

올해 딸은 8살이 됐다. 작년보다 한 살 많아졌지만 엄마를 찾는 횟수는 더 늘었다. 오늘도 어김없이 딸은 울면서 전화를 한다. 이른 아침에 출근하는 지하철에서 딸의 전화를 받는다.

“왜 울어?”

“아침에 일어났는데 엄마가 없어서 슬퍼서…”

솔직히 이런 전화받고 싶지 않다. 딸이 “엄마가 옆에 있으면 좋겠다”며 울면서 전화해도 내가 해 줄 수 없기 때문이다. 최대한 우는 딸을 다독이면서 전화를 끊는 게 전부다.

퇴근하고 집에 왔더니 딸이 나를 잡아끌고 침대 방으로 들어갔다.

“엄마가 보고 싶어서 짜잔~ 내가 이렇게 해 놨어”

내가 베는 베개 위에 내가 입었던 옷이 올려져 있었다.

“이게 뭐야?”

“이렇게 하면 엄마 냄새가 나”

베개 피를 새로 샀다. 딸은 새로 산 베개 피로 바꾸려고 하지 않았다. 새로운 베개피에서는 엄마 냄새가 나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옆에 있던 남편이 한마디 한다.

“나는 당신한테서 무슨 냄새가 나는지 잘 모르겠던데”

그건 나도 마찬가지이다. 나한테 그렇게 강한 향기가 나는지 몰랐다. 딸은 이 세상에 그 어떤 향기보다 엄마 향기가 제일 좋다고 말한다. 그래서 우선 베개피 하나만 갈았다. 내가 며칠 베고 난 후에 엄마 냄새가 충분히 베어들 때쯤 딸에게 주기로 했다.

궁금해졌다. 모든 아이들은 엄마 냄새를 맡을 수 있을까? 아이들은 엄마 냄새를 좋아할까? 내 딸만 유별나게 엄마 냄새에 민감한 건가?라는 생각이 들 때 이해인 수녀님의 시를 발견했다.


동생과 둘이서

시장 가신 엄마를 기다리다가

나는 깜빡 잠이 들었습니다.


문득 눈을 떠보니

"언니, 이것 봐!

우리 엄마 냄새난다"


벽에 걸려 있는

엄마의 치마폭에 코를 대고

웃고 있는 내 동생

(...)


이해인 <엄마를 기다리며> 중에서


동생은 엄마가 없을 때 엄마가 입던 치마에서 엄마 냄새를 맡으며 위안을 얻었다. 엄마 냄새는 엄마의 부재를 대신할 수 있는 대단한 위력을 가진 존재인가 보다. 도대체 향이 얼마나 대단한 힘이 있기에 그럴까?

<향수>는 냄새의 위력을 잘 보여주는 소설이다. 주인공 그르누이는 냄새에 천부적인 능력을 타고났다. 향수 제조법을 익힌 그는 매혹적인 여자들을 죽여 그녀들에게서 향기를 채취해낸다. 그리고 그 향수로 세상을 호령하는 아주 독특한 이야기이다. 이 책에 다음 같은 구절이 나온다.

“사람들이란 멍청하기 이를 데 없어서 코는 숨 쉬는 데에만 이용할 뿐 모든 것은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고 믿고 있으니 말이다. 자신들이 그녀에게 굴복하는 것은 단지 그녀의 아름다움과 우아함, 그리고 품위 때문이라고 말하겠지. 그리곤 자신들의 한계 속에서 그녀의 균형 잡힌 아름다움을 칭찬하겠지. 그러면서도 그녀에게 반한 진짜 이유는 바로 그 어느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놀라운 향기 때문이라는 것을 아무도 깨닫지 못하겠지!”

놀랍다. 그누루이는 모든 사람에게는 한 사람 한 사람을 구분해주는 독특한 냄새가 있다고 한다. 우리가 지각하지 못할 뿐이지 사람마다 자기만의 고유한 냄새가 있다고 한다. 냄새를 받아들이는 후각은 다른 어떤 감각보다 빨리 뇌에 전달된다. 감각기관을 통해서 수집된 정보는 시상이라는 중간 집하장소를 지나는데, 후각은 시상을 거치지 않고 뇌로 직접 전달되기 때문이라고 한다. 즉, 냄새는 필터링 없이 바로 뇌로 전달되는 거다. 감각적인 동물인 인간에게 그만큼 향기는 강력한 무기인 셈이다.

아기는 엄마 뱃속에 있으면서 엄마의 냄새를 맡았다. 아기는 세상에 나와서도 엄마 냄새를 기억하고 있다. 아기들은 모두 엄마 냄새를 알고 있다. 아기들은 시각과 청각이 덜 발달된 상태에서 엄마 냄새를 통해 위안을 받고 안정을 취한다. 엄마 냄새를 맡을 수 있는 나이는 아직은 엄마가 필요하다는 걸까? 오늘도 현관문을 여는 나를 보자마자 딸은 고목나무의 매미처럼 달라붙어 내 냄새를 맡는다. “엄마 냄새 진짜 좋다”라고 말하면서 쓰읍~하고 깊게 향을 들이마신다.


그렇다면 나도 엄마 냄새를 좋아했을까? 엄마한테 물어봤다.

“엄마, 나도 어렸을 때 엄마 냄새 좋다고 냄새 맡고 다녔어?”

“잘 모르겠어. 기억이 안 나”

시간이 지나면 잊히는 게 당연하겠지. 그 잊힘이 있기에 비움이 있고, 그 비운 공간에 또다시 채움이 생기겠지. 그렇게 우리 엄마는 기억을 비웠다. 나는 다행히 기록한다. 기록이 기억보다 강하니까. 나중에 내 딸이 나와 똑같은 걸 물어보면 자신 있게 검색해서 찾아줄 것이다.

“너 엄마 냄새 엄청 좋아했어. 어떤 향수보다 향기롭다고, 엄마가 밴 베개, 엄마가 입던 옷, 그리고 엄마를 꼭 끌어안고 냄새 맡고 다녔지!”

딸도 언젠가는 엄마 냄새를 맡지 못하는 나이가 올 거다. 신체적으로 성숙하고 엄마가 필요 없어지는 그때, 나는 어떤 엄마로 존재할까? 보살펴야 하는 보호자로서의 자리를 잃더라도 정서적으로 인생선배로서 딸이 상담을 요청할 수 있는 그런 엄마가 되고 싶다. 딸은 어렸을 때 엄마 냄새를 통해 위안을 받았듯 인생 선배로서 내 삶이 내 딸에게 위로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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