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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똑서 Dec 08. 2018

기다릴 줄 알아야지

퇴근하고 엄마 집에 딸을 데리러 간다. 감사하게도 엄마가 저녁밥을 차려주신다. 저녁밥을 먹으면 마음이 바빠진다. 우리 집에 도착해서 딸이랑 씻고, 머리 말리고, 집안을 대충 정리하고 가족 감사 나눔 하고, 잠들기 전 딸에게 책을 읽어준다. 늘 시간에 쫓긴다. 어느 날, 부모님 집에서 저녁식사를 한 후에는 놀고 있는 딸에게 빨리 집에 가자고 보챘다.

"집에 가서 씻고 정리해야 되니까 빨리 가자"

"엄마, 나 학습지 선생님이 내준 숙제 다 하고 갈 거야."

"안 돼, 그러면 너무 늦어. 내일 유치원에 갔다 와서 해."

딸과 실랑이를 하다가 결국 몇 페이지까지만 하는 걸로 타협했다. 딸이 숙제하기 시작했고 나는 기다렸다. 그런데 내가 조바심이 났는지 숙제하고 있는 딸에게 또 말했다.

"딸, 이제 그만하고 집에 가자"

"여기까지 한다고 했잖아. 기다릴 줄 알아야지. 엄마는 왜 맨날 나보고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고 하면서 엄마는 왜 못 기다리는데?"

딸에게 했던 말이 고스란히 나한테 돌아오는 경험을 참 많이 한다. 딸에게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 ‘참을 줄 알아야 한다. 그래야 훌륭한 사람이 되는 거다’라고 말해왔다. 게다가 내 말에 힘이 실리도록 마시멜로 실험까지 덧붙여서 얘기했다.

“4살 된 어린아이들에게 실험을 했대. 모든 아이들에게 마시멜로우를 하나씩 주고는 이렇게 말했지. "15분 후 선생님이 돌아왔을 때 마시멜로우를 안 먹었으면 하나 또 줄게" 선생님이 나가자 마시멜로우를 먹는 아이도 있었고, 기다렸다가 중간에 먹는 아이도 있었고, 끝까지 참고 기다린 아이도 있었지. 15분 후에 돌아온 선생님은 참고 기다린 아이들에게는 마시멜로우를 한 개씩 더 주었고, 기다리지 못한 아이들에게는 마시멜로우를 주지 않았어. 그런데 실험은 거기서 끝난 게 아니야. 진짜 실험이 남았지. 실험에 참가했던 아이들을 10년, 20년 후를 추적 조사했어. 그랬더니 15분 동안 안 먹고 참았던 아이들은 힘들어도 참을 수 있었기에 공부도 잘했고, 먹는 것도 참을 줄 알았기에 몸매도 날씬했고, 학교 졸업한 후에는 성공한 사회적 지위까지 얻었대. 반면에 15분을 못 참고 마시멜로우를 먹은 아이들은 힘든 것을 참을 줄 몰랐기에 공부도 못 했고, 먹고 싶은 것을 참을 줄 몰랐기에 몸도 뚱뚱했고, 범죄를 저질러서 감옥에 간 사람도 있었고, 학교를 졸업했어도 결국에 사회적 위치가 낮은 직업을 갖고 있었대. 그러니까 딸, 너도 기다릴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이렇게 공들여 여러 번 반복하며 아이한테 했던 말들이 한순간에 무너져 내렸다. 이래서 엄마가 하는 말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으면 아이들에게 면이 서질 않나 보다. 나도 알고 있다. 아이에게 바른 소리를 하기 전에 부모가 먼저 본을 보여야 한다는 것을. 아이는 부모의 모습을 본 대로 들은 대로 배운다. 알면서도 생각처럼 행동이 쉽게 바뀌지 않는다. 그래도 부모 된 도리로서 노력은 해야겠지. ‘사람이니까, 인간이니까 그럴 수 있다’라는 핑계로 대신하기에는 부모는 한 생명을 온전히 키워내야 하는 책임이 있다.

그럼 내가 어떻게 해야 할까? ‘기다릴 줄 알아야지’라는 말은 앞으로 살아가면서 가슴 깊게 새겨두어야 할 말이다. 그래서 딸에게 사과했다.

“앗, 미안. 엄마가 실수했다. 약속대로 그 페이지까지 다 하고 가자. 엄마가 기다릴게”

마시멜로우 실험에는 전제가 있었다고 한다. 마시멜로우 실험을 하기 전에 대상 군 아이들에게 또 다른 실험을 했다. 다 부러진 헌 크레파스와 종이를 주고 그림을 그리며 잘 놀고 있으면 새 크레파스를 사주겠다고 했다. 아이들은 나름 열심히 그림을 그리고 놀았다. 어른이 돌아와서 A집단에게는 약속대로 새 크레파스를 주지만, B집단에게는 새 크레파스를 주지 않았다. 2~3번 반복되는 그림 그리기 실험에서도 B집단은 계속 새 크레파스를 받지 못했다. 이런 경험을 한 후 두 집단이 마시멜로우 실험에 투입된 것이다. 어른들의 약속이 지켜진 A집단은 100%는 아니지만 15분 동안 마시멜로를 안 먹고 기다리는 아이들이 많았다. 약속이 지켜지지 않는 B집단 아이들은 기다리지 않고 마시멜로우를 먹어버렸다고 한다.

이 실험에서 기억해야 할 것은 부모가 아이에게 신뢰를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아이가 부모를 얼마나 믿고 따를 수 있느냐’ 그게 관건이다. 엄마 아빠도 처음부터 엄마 아빠는 아니었다. 부모도 사람이니까 실수한다. 대신 그 실수를 어떻게 처리하느냐에 따라 아이가 갖는 엄마 아빠에 대한 신뢰도는 차이가 난다. 부모도 아이에게 잘못했으면 잘못했다고 인정하고 다음부터 그런 행동을 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어떻게 해야 할까? 블로그 이웃님의 이야기를 읽었다.

블로그 이웃님은 아이를 유치원에서 데려다주고 데려오면서 “나무하고 꽃들을 사랑하고 아껴줘야 한다”라고 아이에게 말했다. 그러던 중 지나가는 아저씨가 가로수 나무에 가래를 뱉더란다. 그걸 보고, 아이에게 “나무가 싫어하겠다. 우리는 절대로 나무한테 가래를 뱉거나 나뭇가지를 꺾지 말고 사랑해주자”라고 했다. 주말에 볼일이 있어서 혼자 일을 보러 간 사이에 아이에게 전화가 왔다. “엄마, 아빠가 나무한테 침 뱉었어” 아이는 미주알고주알 아빠의 행동을 설명하면서 아빠를 혼내주라고 했다고 한다. 전화로 남편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아이가 지켜보고 있다. 항상 조심해


이 글을 읽고 이게 답이라고 생각했다. 아이는 부모가 믿어도 되는 사람인지 계속 가늠해보고 있다. 부모의 말을 믿고 따를만하다고 생각하면 아이는 부모를 믿고 자신의 욕구를 조절하며 기다릴 줄 안다. 반면에 부모의 말을 신뢰할 수 없다면 자신의 욕구를 참으려고 하지 않는다. 아이는 항상 나를 믿어도 되는 사람인지 지켜보고 있다는 걸 명심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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