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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나 Feb 01. 2020

큰돈 없이 즐기는 브리즈번

아뿔싸 신용카드를 숙소에 두고 왔다!

내 손에 쥐고 있는 것은 호주달러 70불.

이것이 내가 가진 돈의 전부라는 것을 알게 된 곳은 브리즈번에서 30분 정도 떨어진 외곽에 위치한 론파인 생츄어리 (lone pine sanctuary)로 코알라 보호구역이었다.


어제 작은 지갑으로 돈을 옮기면서 신용카드 두개를 넣는것을 깜빡했다. 현금은 비상용으로 소지한거였다.


나는 이곳에서 70불을 다 쓰고 우버를 불러 숙소로 다시 들어갈 수도 있었다. 신용카드가 연결되어있는 우버가 있다는 것이 나의 마음을 이렇게도 편하게 해 주다니. 그런데 말이다. 70불이 사실 큰돈이 아니다. 나와 아이들 총 세명이라는 것을 감안하고, 그리고 우리가 동물원 비슷한 곳(안에 물가가 비싼)에 와있다면 말이다. 신용카드가 없다는 것을 깨닫고, 오자마자 사두었던 인당 25불의 코알라 안고 사진 찍기를 환불했다. 다행히도 아이들은 앞에서 보기만 좋아했지 안아보고 싶어하지는 않았다.


사실 조금 패닉 했다. 아무도 없었고 아는 사람도 없었다. 우린 이방인이었다.  


근데 나의 모험적 성향 발동!  한번 이 돈만 가지고 하루를 보내 보기로 했다. 우리 셋의 '짠내 투어'를 만들어보는 거였다. 혹시나 힘들면 어디서든 응급상황엔 우버를 불러서 집으로 다시 갈 수 있다는 'pass'를 쓸 수 있으니까.  


우선, 다행히도 론파인 내부에 음식점이 마땅치 않다는 이야기를 들어 집에서 싸온 음식으로 점심을 해결했다. Kelpie라는 종의 양몰이 개 쇼를 보고 앞에 피크닉 의자에 앉아서 머핀과 애플파이를 먹었다. 바나나도 가져왔고 에어비앤비 호스트가 준비해준 과일도 가져왔다. 그렇게 먹는데 Wild Turkey가 우리를 향해 다가왔다. 너무 돌진해와서 무서웠지만 나까지 호들갑을 떨면 아이들이 소리를 지르고 난리가 날듯하여 침착한 모습을 보이려 애썼다. 아마도 이 아이들은 사람들이 여기에 앉으면 대부분 먹는다는 것에 학습된 듯했다. 동물을 좋아하지만 너무 가까이하는 걸 싫어하는 첫째는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고 테이블 위로 이내 올라갔다. 결국 내가 안고 그곳을 탈출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안고 가는데 도마뱀이 어떤 아이의 간식을 뺏어가는 것을 보고 아이들은 또 한 번 경악. 결국 아이들은 론파인에서 더 이상의 식사를 하지 않았다. 돈도 없는데 뭔가 사달라고 하지 않아서 고마워해야 하나 했다.


2시 반쯤 되었을까, 버스를 타고 시내 쪽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다행히 구글맵은 아주 친절하게 버스 오는 시간을 delay시간까지 알려주었다. 브리즈번 교통카드인 GO카드도 아직 사지를 않아 현금으로 나와 아이 둘 12불을 내고 버스에 탔다. 호주에서 버스는 처음이라 불안하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했다. 하차 벨을 누르지 않으면 정류장에 탈 사람이 없으면 그냥 지나가고 역 안내도 안 해줘서 나는 두 눈을 부릅뜨고 구글맵과 이따금씩 서는 정류장을 확인해야 했다. 사람들은 내릴 때 드라이버에게 'thank you'라고 외치고 나갔다. 그게 참 신기했다. 물론 다 그렇게 하지는 않았지만 70%의 승객들은 그렇게 했다. 그렇게 25분 정도 됐을까, 둘째가 잠이 들었고 나는 그 아이의 머리를 받치고 긴장 태세를 놓지 않고 내릴 타이밍을 살폈다. 사실 걱정할 필요도 없었다. 내가 내리는 정류장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내리는 곳이었다.


시내의 웬만한 음식점은 들어가면 셋이 50불 이상이 나왔기에 음식점을 들어갈 순 없었다. 그때 내 눈에 보인 맥도널드! 역시나 15불로 아이들 둘의 슬러쉬, 감자튀김, 햄버거를 살 수 있었다. 이곳 맥도널드는 놀이공간도 있었는데 아이들이 좋아해서 30분은 그곳에서 놀리고 나는 휴식을 취할 수도 있었다. 테라스 좌석이 있던 여유 있던 공간.


시내에 처음 와서 그런지 자꾸 뭔가가 사고 싶었다. 없어서 더 사고 싶은 것인지. 옷도 사고 싶고, 생맥주도 한잔 마시고 싶고, 한국 마트에도 들러보고 싶고... 돈이 없으니 여행이 단순해졌다. 그렇게 브리즈번 시내를 걸었고, 우리의 마지막 목표는 집까지 걸어가는 것이었다. 구글맵에 따르면 사우스 브리즈 번인 우리 숙소는 시내에서 걸어서 35분밖에 되지 않았다. 그렇게 천천히 브리즈번강을 따라 걸었다. 돈이 없었다면 걸을 생각도 안 했을 텐데. 아이들에게 돈이 없어 걸어야 한다고 하니 묵묵히 잘 걸어주었고, 심지어 뜀박질을 하기도 했다.


그렇게 걸어오는 그 시간이 내가 온 이틀째 경험 중 가장 좋은 시간이었다.

워낙 걷는 걸 좋아하기도 하고, 주변 환경이 너무나 아름다웠다. 어쩜 걷는 공간도 이렇게 좋은 것인가. 강바람은 시원했고 저 멀리 maritime museum에서는 파티를 하는지 밴드가 옛날 노래를 연주했다. 다리에 앉아 그 음악을 들었다.


그렇게 천천히 걸어서 집 근처까지 오니 생각보다 돈이 많이 남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콜스 마트에 들러 정확히 25불어치 장을 봤다. 아이들 아이스크림 1개씩, 내 저녁 샐러드, 채소, 치즈, 크래커 등등 딱 2-3불만 남기고 집으로 안전히 도착했다.


해냈다는 뿌듯함과 집에 왔다는 안도감. 하루를 꽉 채워 보내고 들어왔다는 행복감에 모처럼 기분이 좋았다. 사실 어제는 아이 둘하고만 있다는 것이 왠지 외롭기도 했는데 말이다. 벌써 적응해 나가는 것 같다.


민소매 원피스를 입고 아침에 브리즈번강을 바라보며 글 쓰는 조용한 아침. 참 좋다.

오늘은 또 어떤 일이 일어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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