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태어난 날, 나도 새로 태어났다.
일주일 전부터 하도 인터넷에 떠들어댔지만 어제가 막내딸의 진짜 생일이었다. 나는 감히 - 어제가 내 생일 같았다고 이야기하고 싶다. 나의 어제에 대해 써보겠다. 내가 내 생일 같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아주 좋은 하루였다는 것을 뜻한다. 이렇게 좋았던 날을 복기해 보면 진정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살고 싶은 삶이 무엇인지, 되고 싶은 삶이 무엇인지 알게 해 준다.
어제 금요일 아침은 솔이가 8시 반에 일어나는 경이로운 일이 일어났다. 나와 한 침대에서 자는 그녀는 내가 침대를 벗어나면 기가 막히게 알고 운다. 그런데 그런 아기가 생일이라고 8시 반까지 자준 것이다. 나는 남편과 아이들을 보내고 약 1시간을 혼자 보낼 수 있었다. 그 한 시간 동안 유튜브 영상 보이스오버를 위한 녹음을 했다. 이것이 신났던 이유는 이렇게 함으로써 나는 진행이 미진했던 영상 편집에 박차를 가했기 때문이다.
아기가 일어나고 접종을 위해 준비를 시작했다. 접종하는 곳은 우리 집에서 도보로 15분이다. 10:15 접종이었으므로 10시에 나가면 된다고 생각하고 9:30분부터 준비를 시작했다. 그전까지 나는 솔이를 보며 또 야금야금 책을 읽었다. 매거진에 필요한 quote를 찾기 위해서였다. 문장 찾기라고 해야 할까.
접종 장소는 내가 예전에 와서 주차한다고 허탕 쳤던 곳이기 때문에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솔이를 유모차에 태우고 길을 척척 걸어갔다. 8개월 살았다고 이제 대강 동네 길을 안다. 빠른 걸음으로 유모차를 몰아서 10시 15분에 정확히 도착했다. 접종장소에 가면 아기들이 참 많다. 어른들도 몇 있다. 어디든 가면 나와 솔이를 쳐다보는 느낌을 받는다. 우리 동네는 관광지와 살짝 벗어나 있어서 동양인이 많지는 않아서일까. 동양인 관광객은 봐도 동양인이 아기를 데리고 접종을 한다는 것은 저 사람이 여기 산다는 걸 뜻하니까 그게 의아해서였을까. 아님 전부 다 내 머리에서 나온 생각일 수도 있다.
여하튼 나는 솔이가 유모차에서 잘 있어줬고 시간 맞춰 온 것에 내심 뿌듯했다 (나는 늦는 게 싫다). 이름을 한 명씩 호명을 했고 10:30쯤 되니 솔이의 이름을 호명했다. '현느 솔르' 이탈리아인들은 모든 알파벳을 다 발음한다. 워너비 이태리인 첫째는 그래서 영어도 이탈리아인같이 하는 현상을 보이고 있다. 앞에 있던 한 엄마가 자기 아이의 이름을 호명하니 '에코 퀴(eccoci qui)'라고 말하는 것을 보고 재빨리 papago에 쳐보니 'here we are'라고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도 똑같이 따라 했다. 또 내심 뿌듯했다. 이탈리아어를 잘 하진 못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약간 들리는 것들이 있고 또 몰라도 대강 알아듣는 눈치가 생기는 느낌이다.
그렇게 진료실로 들어가니 다행히도 영어 하시는 여자 의사 선생님이 계셨다. 지난주에는 할아버지 의사분이었는데 영어를 1도 못하셔서 소통이 너무나도 힘들었다. 아마도 선생님이 휴가 다녀오셨나 보다. 영어를 하시지만 이탈리아어로 생일을 축하한다는 말씀을 하신 것 같아서 나는 고마워요 grazie에라고 했다. 그다음부터는 잘 못 알아듣는 표정을 하자 바로 영어로 하시기 시작했다. 솔이는 한 대만 왼쪽 팔에 MMRV (mumps 이하선염) 주사를 맞았다. 앙 울었다. 그렇지만 이내 그치고 다음 진료 접종 예약을 하고 밖으로 나왔다.
이 정도면 딜레이도 거의 없었던 편이어서 매우 가뿐한 느낌이 들었다. 엄마들에게 아기 접종일은 항상 부담되는 날인데 이렇게 끝내니 후련했다. 집으로 걸어가는데 날씨가 너무 좋았다. 우리 딸이 이렇게 좋은 날에 태어났구나. 나는 1년 전 이 날에 혼자 병원에서 유도로 아기를 낳았구나, 고생했다. 하는 생각이 언뜻 들었다.
셋째를 낳으니 더욱더 느끼게 되는 사실은 아이의 생일도 내 생일 같다는 느낌이다. 왜냐면 나는 그날 다시 또 태어났으니까. 셋째를 낳은 1년 전 2023년 9월 20일은 내가 네 번째로 새로 태어난 날이다.
집에 와서 솔이 점심을 먹이고 낮잠을 자는 동안 또 일을 했다. 매거진 글도 쓰고 편집도 간간히 했다. 일어나선 아기 봤다가 일했다가 곡예 같은 것을 했다.
그러다가 부모님께 카카오톡 영상통화가 왔다. 나의 부모님은 손녀의 생일을 잘 챙겨주지 못하는 것이 안쓰러우신 것 같았다. '한국에 있었으면 솔이 생일 정말 축하할 사람 많은데!' 엄마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는 '엄마, 솔이는 4년 후에 가서 생일 제대로 해 줄게'라고 말했다. 이따 가족끼리 케이크를 할 테니 그거 하고 사진 보내겠다고 말씀드렸다. 그러다가 옆에 아빠도 같이 이야기를 하기 시작하셨다. 아빠는 최근 나와 시어머니의 북클럽 영상을 끝까지 다 보셨다고 하셨다. 아빠가 내 영상을 다 보시는지 몰랐는데 부모님은 뒤에서 다 보고 계셨다. 유튜브, 즉 영상의 힘은 대단하다. 내가 몇 년을 내가 하는 일에 대해 이야기해도 잘 이해하지 못하고 공감하지 못 하는 사람들도 영상 몇 개만 보면 이 사람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어떤 일을 하는지 알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렇게 꾸준히 뚜벅뚜벅 걸어서 하면 언젠간 너도 몇만 팔로워가 될지도 모른다고 하셨다. 그냥 천천히 지금같이 아이 키우면서 하라고. 아래는 아빠가 나에게 하신 말씀을 적어둔다.
넌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있어. 뭐든 돈으로 가치를 매기는 이 세상에서 정말로 돈 대신 가치를 추구하는 일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건지 넌 모를 거야. 사람들이 가치보다도 돈을 더 좇기 때문에 이 사회가 병들어가고 있어. 마음이 텅 비는 거지. 그러니 넌 정말 자부심을 가져도 돼.
5년이 걸리던 10년이 걸리던. 사람들이 네 영상을 많이 보든 말든 그냥 너는 계속 쌓아가 봐. 너는 못 느낄지 모르겠지만 많은 것을 배우고 실력도 늘게 될 거야. 그렇게 꾸준히 하는 그 길목에서 어떤 일이 생길지는 아무도 몰라.
나는 다 알고는 있지만... 가끔은 나도 잘되고 싶은 마음에 내 적은 조회수 등을 보면 창피하다고 말씀드렸더니
세상에 단기간에 잘되는 사람은 정말 극소수야. 그리고 그렇게 단 기간에 잘되면 다 좋을 거 같지? 몇 달 만에 갑자기 10만 구독자가 되었는데 이제부터 할 말이 없으면 어떡하겠어? 단기간의 성공은 좋은 것만은 아니야. 천천히 쌓아가면 그 자체가 길이 될 거야.
너는 지금 네 아이를 키우며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 가치를 주고 있어. 그렇다면 부끄러워하지도 말고 자부심을 갖고 해. 언제 잘되지? 같은 생각도 하지 않아도 돼.
야 네가 하는 게 사업보다 낫다. 사업은 망하기도 하는데 넌 망할 일이 없잖냐! 얼마나 좋냐. 너 한국에 돌아올 때쯤이면 잘되어 있을 것 같은데?
예상하지 못한 사람에게 예상치 못한 시기에 응원을 받으면 그 기쁨과 힘은 배가 된다. 옛날엔 내 일이 취미 같다고. 그런 건 나이 들어서 해도 된다고. 북클럽? 북카페? 뭐 한다고? 관심도 없어 보이셨는데.. 그럴 때면 나는 자존감도 떨어지고. 내 학위도 아깝고 부끄럽고 수치스럽다는 느낌이 많이 들었었다. 그런데 아빠도 나이가 들으시나 보다. 과거의 glory를 다 내려놓고 농부의 길을 걸으며 70살에 자신만의 와인 브랜드를 만들고 계신다. @happy_grape_day
아.. 글이 정말 길어지고 있는데..
퇴고할 시간도 없지만, 날 것 그대로 기록한다.
마지막 피날레는 딸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우리가 좋아하는 스테이크 집에 가는 것이었다. 사실 7시쯤 되니 하루의 고단함이 몰려오기 시작해서 남편과 나는 아이의 매트에 벌러덩 누워있었지만 꼭 나가야 할 것 같았다. 이렇게 딸의 생일/나의 생일을 보내는 건 아쉽지 않나. 후줄근했던 내가 변신을 했다.
오랜만에 진주 목걸이를 걸치고 허세 가득했던 대학원 시절 때 산 보라색 lambskin 샤넬백을 맸다. 후줄근 ㅊ어바지를 걷어치우고 하이웨이스트에 플레어 스타일이라 다리가 매우 길어 보이는 청바지를 입었다. 화장품 가방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보이지 않았지만 남아있는 화장품을 가지고 피부라도 좀 깨끗이 매만졌다.
자신감 풀장착이었다.
늦은 저녁을 먹는 이탈리아에서 우리는 이탈리아인같이 (가 아니라 솔이를 재우기 위해서) 7시 반이 넘어서 집에서 나왔다. 나의 야심 찬 목표는 솔이를 차에서 재우고 유모차에 옮겨서 아들 둘과 나와 남편이 오붓하게 넷이 정말 좋아하는 스테이크 집(Guapo Ristorante)에 가는 것이었다! 아주 야심 찼다!
애 셋 엄마는 애 재우는 것에 대해서는 나름 베테랑이 된다. 나는 아기의 패턴을 잘 알고 있다. 1시 반에 낮잠에서 깬 아기는 7시 반에 잘 수밖에 없다. 졸릴 수밖에 없다. 그렇게 차를 태우고 스테이크집에 도착했는데 아직도 잠에 들지 않았다. 결국 동네를 차로 빙빙 돌았다. 남자들은 지겨워 보였다. 아기를 재우는 데는 1번도 patience (참을성), 2번도 patience이다. 그래서 그들을 먼저 내려주고 내 것까지 주문해 놓으라 했다 레드와인 한잔도 함께!
그렇게 8시 10분쯤 솔이는 차에서 잠이 들었다!!!! 아주 완벽했다. 나는 아주 엘레강스하게 아기를 유모차에 태운채 8:20 음식점에 들어갔다. 남자 셋이 자리를 아주 잘 잡아놓았다. 오랜만에 넷이만 있는 느낌이었다. 너무 좋았다. 행복했다. 내 생일이 맞았다. 애피타이저는 언제나 맛있었다. 우리는 아이들의 학교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아이들은 수다쟁이 었다.
그러나 하이라이트는 이제 막 스테이크가 온 순간 솔이가 유모차에서 벌떡 깼다는 사실이었다. 역시- 그래서 결국 남편이 혼자서 스테이크를 다 썰어서 애들에게 나눠주고 내 것도 내 그릇에 올려놓아주었다. 그래도 괜찮았다. 아르헨티나 스테이크는 역시나 끝내주게 맛있었다. 이탈리아의 기름기 없는 소고기를 먹다가 기름기 좔좔 있는 고기를 먹으니 너무 맛있었다.
그렇게 집으로 왔고 나는 대충 씻고 솔이를 다시 재우면서 10시에 잠에 들었다...
내 생일 같았던 하루였다.
내 일을 하고, 내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남편이 잘라주는 고기를 먹고, 아버지에게는 내 일에 대한 칭찬과 응원도 듣고.
완벽했다.
*본 에세이는 ‘라이프살롱 매거진 70호. 자꾸 미안해하지 마세요‘ 에 게재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