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 셋에 식물까지 키우다니…
최근 2주, 솔이를 차로 어린이집에 내려주면 그 차를 타고 나는 어딘가로 향했다. 그동안 못 봤던 볼일도 많았고 병원도 들락날락하고 아이 데리고 가느니 번거로워 안 갔던 많은 곳들이 있었다. 최근 나는 마트나 화원을 자주 갔다. 특히 맘에 드는 화원을 찾았는데, 식물들이 아주 싱싱하다. 대형 업체다 보니 가격도 하나하나 다 붙어있어서 이탈리아어가 부담이 되는 나에겐 모든 것이 바코드로 띡띡 계산 끝-이다 보니 마음 편히 구경하고 살 수 있는 곳이다.
요즘은 어쩌면 책 읽는 것보다 식물 가꾸기가 나에게 더 몰입감을 주는 행위인듯하다. 새 책은 쌓여있지만 식물은 새걸 들이면 '다음에 읽어야지' 하고 내버려 둘 수가 없어서 그 자리에서 팔 걷어붙이고 분갈이를 하든 물을 주던 자리를 잡아주든지 한다.
최근 약 10개 남짓한 식물을 들였는데 집에 새로운 가구 들인 것 없이 훨씬 더 집 같은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내가 보기에 더 집 같다. 특히 나는 선반 위에 자꾸 옷가지를 올려놓는 좋지 않은 버릇이 있는데 그 자리에 예쁜 식물을 올려놓으니 자연스레 쌓아둘 수가 없고 서랍에 넣게 돼서 아주 흡족스럽기도 하다.
식물 중에서는 허브도 있는데 허브는 처음에 들이는데 망설였었다. 지난번에 바질을 잘 키우다가 결국 죽여버렸기 때문이다. 매일 하루 한 끼 한식을 먹어야 하는 남자 셋과 이제 어린이집 가서 이태리 음식을 먹고 오는 솔이도 있어서 저녁으로는 한식 요리를 많이 하기 때문에 서양식 음식에 많이 쓰이는 허브가 사실 관상용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점심은 혼자 해결하는 나라도 먹자 싶어 로즈메리, 바질, 파슬리를 사와 길쭉한 베란다 난간용 화분에 다 같이 심었다. 내가 본 가드닝 유튜브 영상에 따르면 이렇게 같이 심는 것이 하나만 키우는 것보다 이파리 병이나 해충 방지에 좋다 해서 그렇게 해봤다. 쳐다보면 같이 있어서 화단 느낌도 나서 좋기도 하다. 단지 바질이 추위에 약하기 때문에 요즘 나는 밤마다 이 아이들을 부엌으로 옮겨놓는 일을 하고 있다… 아무래도 날씨가 점점 추워질 거라 곧 실내에서 키워야 하지 싶다. 어제 수확해서 잘게 잘라 연어 샐러드에 넣어먹었는데 초록 풀떼기에 flavor를 입혀주었다. 생 레몬도 좀 짜서 함께 버물어주니 확실히 풍미가 살아나고 보기에도 좋았다.
와서 한 번도 못 먹은 깻잎 씨앗도 발아시켜 키우고 있다. 로메인도 모종을 사와 키우고 있다. 아직 다 건재하게 살아있다. 이쯤이면 난 정말 뭘 키우는 걸 좋아하는 사람 같다.
이탈리아인들은 테라스 꾸미는데 진심이라는 글을 이전에 썼었는데 나는 아직 테라스에는 큰 노력을 들이고 있지는 않다. 야생 팬지(wild pansy)를 두 개를 사서 짙은 갈색 토분에 넣어줘서 작은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고 부엌에 있던 페페로미아를 놓아둔 게 전부이다. 이 정도여도 충분히 예쁘다. 특히 아이들과 남편을 학교, 어린이집, 일터에 보내고 모닝 커피를 마시며 팬지를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흰색과 보라색이 섞여있는데 바람이 불 때 흔들리면 그렇게 세상 예쁠 수가 없다. 내가 조금이라도 내 삶에 대한 욕심이 들 때 이 팬지를 보면 그 아름다움에 겸손해진다고 할까... 한 자리에서 단단히 자리잡고 자신만의 존재감을 뿜어내는 팬지.
당분간은 화원 방문을 자제하기로 했다. 저번도 토분 하나 사러 갔다가 양손 가득 가지고 나왔기에, 우선은 지금 있는 애들에게 사랑을 주기로 했다. 요즘 이탈리아 북부는 비가 많이 와서 테라스에서 초록이들을 빗물 샤워를 시켜주면 기분이 참 좋다.
근데 그래도 흙은 좀 사러 가야 할 것 같은데...
작은 토분도 하나 더 필요한 것 같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