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대로 되지 않는 삶은 앞으로도 계속되겠지만...
밀레니얼 세대, Z세대로 퉁쳐 말하기에는 복잡하지만, 요즘 젊은 세대로 통칭되는 그들로 인해 지금의 '워라밸', '내 마음 챙기기', '자아 찾기' 등의 일련의 흐름은 대세를 넘어 잔잔한 문화가 되었다. 나도 어엿한 90년대 생으로 내가 지금 서 있는 위치와 내가 걸어온 길을 가만히 돌아보는 시간이 부쩍 많아졌다. 어딜 가나 어린 취급만 받았던 92년생은 얼굴에 팩 바르고, 이커머스에서 부지런히 주문하다 보니 어느새 서른이 되었다.
삼십 또는 서른. 20살 땐 대단해 보인다기보다 아예 생각도 하지 않았던 시간에 와 보니 생각했던 것보다 더 별 거 없다. 오히려 너무 바뀐 게 없어 답답하다.
사실 내가 고등학교 때부터 주변에 주야장천 말했던 내 인생의 터닝 포인트, 성공의 시작은 '스물여덟'이었다. 이유는 없었고 20대 후반 중간. 웬만한 20대 애들은 어리게 보이고 '30살 보다는 젊음이라는 가능성이 있다' 확신하는 그 나이에 대해 전혀 구체적이지 않은 환상이 있었다. 하지만 내가 바라던 스물여덟은 스무고개도 더 넘어 내 곁을 떠나 있었다. 다소 늦은 나이에 취업을 준비하고 아등바등 살다 보니, 짐 정리하다 나온 일기장에 적힌 '찬란한 28'이 이제 다 끝났다는 것만 뒤늦게 알았다.
사회 초년생으로 이곳저곳 부딪히며 '이 고난은 날 성장시켜' 병에 걸려 살다가 서른이 되어 보니 생각이 많아졌다. 그러니 지금도 밤늦은 시간에 이렇게 두서없는 글이나 써재끼고 있는 것이다. 서른 살의 중반부를 속절없이 건너가고 있는 이 즈음에 갑자기 앞으로 끌어당기는 30대의 손을 잡고 뒤를 쳐다보고자 하는 이유는 조금 더 잘 살아보고자 하는, 경제적 승리던 정신승리던 단 하나라도 이겨보고자 하는 몸부림일 수도 있겠다.
나의 20대를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준비만 하다 끝났다'라고 할 수 있다. 속 뜻이 있거나 무언가 대단한 통찰을 주고 싶어 꾸며낸 말이 아니라 말 그대로 정말 준비만 하다 끝났다. 결과가 있었다면 '작지만 소중한 것을 얻은 귀한 시간' 따위의 이쁜 말들을 이것저것 주워 붙였겠지만 정말 나는 준비만 하다 끝났다.
1) 20대 초반: 원하는 공부를 하기 위한 준비
한창 공부해야 할 나이, 어른들이 그렇게 죽어라 외치던 유일하게 공부만 할 수 있는 시기에 늦바람이 들어 이리저리 날아다녔다. 즐거웠다. 누군가는 공부할 그 시간에 나는 다른 기억들을 취했으니 아쉬울 것도 없지만 그 늦바람이라는 것이 고등학교 2학년 2학기 때부터 졸업할 때까지 나를 정신 못 차리게 했으니 타격이 크긴 했다. 정말 아무런 이유 없이 추가 합격되었다는 이유만으로 간호과에 진학했고 3개월 만에 자퇴했다. 그냥 이거 배워서 뭐하나 싶어서, 그대로 쭉 달려가 병원에 골인해 주구장창 간호사로 살아야 될 것만 같은 두려움에 계획도 없이 도망치듯 뛰쳐나왔다. 부모님과 대판 싸우고 혼자 가서 한 자퇴. (일하다 교무처에서 자퇴학생 부모에게 전하는 안부전화를 받은 부모님은 노발대발을 넘어 새로운 대학에 들어가기 전 1년 동안 내 귀가 허용할 수 있는 임계치의 말들을 내게 선물로 주셨다)
그렇게 학교를 그만두고, 이것저것 생각하다 내가 하고 싶은 공부를 위해 한 번만 더 수능을 보기로 했다. 부모님을 조르고 졸라 재수 종합학원에 갔으나 넉넉지 못한 형편에 반찬이 달라지는 것을 보니, 안 쓰던 가계부를 너무나 열심히 쓰는 엄마 모습을 보니 계속 다닐 자신이 없었다. 어찌 보면 그렇게 다닌 후 좋은 결과를 내지 못할 수도 있는 나의 미래의 너무 부담스러워 그만둔 것일 수도 있겠다. 여하튼 그렇게 재수학원을 그만두고 부모님이 주시는 용돈에 더해 주말마다 웨딩홀에 나가 12시간씩 일하며 일당을 벌었다. 그 돈으로 밥도 먹고 교재도 사고 독서실도 끊고, 인강도 듣고 했다. 가끔 노량진에서 집까지 차비가 없어 걸어왔지만 젊음이다 생각하며 나름 즐겁게 보냈다.
이것저것 가슴 아픈 일이 있었지만 시간과 함께 잘 견뎌내고 나름 대폭 상승한 점수로 원하는 학과에 합격했다. 학교보다는 내가 하고 싶은 학과를 선택하고자 했고 촉박한 입시 일정 속에서 도저히 방향을 잡을 수 없어 자율전공학과로 입학했다. 결정을 하기 위한 결정을 했다.
2) 20대 중반: 원하는 학과를 결정하기 위한 준비
학교에 들어가 내가 원하는 전공을 찾기 위해 다양한 학과의 전공기초 과목을 수강했다. 교수님들은 자신의 학과가 가진 장점을 어필하기 위해 부단히도 노력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교수님들의 저마다의 색깔을 가지고 나를 반겨주었는데,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길이라 노골적으로 알려주는 교수님부터 인생의 한 번뿐인 시기에 사색과 본인만의 철학을 가지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어필하는 교수님, 너희들이 선택하든 말든 관심없고 내가 최고야 교수님까지 수많은 정보들은 나의 혼란을 더욱 가중시켰다. 할 것이 없어 고민하기보다는 모두 다 하고 싶어 치열하게 고민했다.
점점 더 미궁 속으로 빠져드는 나의 대학생활과 진로를 보면서 마음은 그보다 곱절로 불안정해져 갔다. 남들 다 한 번쯤 한다는 인생에 대한 질문은 정말 하루가 멀다 하고 내 머리에 들어와서 시체처럼 쌓여갔다. 무슨 학과를 결정할까 라는 것에서 시작한 행복한 고민은 이렇게 살면 뭐가 달라지나 라는 무색무취한 비관주의로 끝나기 일쑤였다.
애초에 전공기초 과목만 보고 4년 커리큘럼의 학문을 논리적으로 판단하기엔 당시 내 머리와 정신상태로는 불가능했고 심리학개론과 사회복지학개론 수업을 듣고 '이런 내 마음 나 자신이라도 이쁘게 봐주자'라는 생각에 뜬금없이 사회복지학과 상담심리학 이중전공을 호기롭게 지원하고 입대했다. 정작 그 수업은 학점이 가장 낮았고 먼 훗날 이야기지만 난 경제학, 사회복지학, 법학 총 3개의 학위를 취득하고 졸업했다.
해답을 찾기 위한 준비는 1년으로는 턱 없이 부족했던 것이다. 술에 취해 고민할 정신머리가 남아나질 않았던 것일 수도 있다. 그냥 취하느라 정신없었다
3) 20대 전반: 원하는 만큼의 돈을 벌기 위한 준비
내가 가난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는 없다. 나보다 어려운 사람도 너무나 많이 봤으니까. 우리집은 그냥 하루하루 열심히 살고 돌아와 도란도란 앉아 밥 먹는, 중고 에어컨을 설치한 후 (써본 적이 없어 전기세가 얼마나 나오는지 알지 못한 두려움에) 정말 숨이 막혀 잠에서 깨기 전까지 선풍기로 사는, 그러다 용기 내서 에어컨을 켜면 오래 사용하지 않아 냉매가 다 빠진 뒤숭숭한 바람만 나오는 그런 집이었다. 나는 철 있는 척하며 뒤돌아 보면서 '그때 그래도 행복했었다'라고 말할 수 있는 그런 위인은 못 된다. 지금은 그 기억이 희미한 어릴 때의 추억으로 포장되어 있지만 내가 다시 돌아간다 해도 욕심 많은 내 성격에 불평이 없을 수 없다. 단순히 불평만 하는 것이 아니라 힘들었었다.
나도 학원 다니고 싶다, 나도 친구들이랑 영화 보러 가고 싶다, 나도 부모님한테 용돈 받고 싶다, 나도 여행 가고 싶다, 나도, 나도... 끝없는 나도의 파도 속에서 적잖이 힘들었기에, 고등학교 졸업식을 하기도 전부터 돈을 벌었다. 물론 그 전에도 간간히 아르바이트하며 돈을 벌었지만 돈에 눈이 멀어 벌었다고 해야 할까,
돈을 벌어야 하는 일상은 20대 시절 동안 거의 쉰 적이 없었는데, 제 1원인은 타지에서 대학 생활하며 풍족하게 살고 싶었기 때문이다. 내가 말하는 풍족이란 먹고 싶을 때 먹고 사고 싶을 때 사는 그런 삶이다. 월세와 전공 교재 값을 벌고, 지금은 몇 명 남지도 않은 대학 동기, 선후배와 놀기 위해 정말 밤낮으로 일했다. 아끼며 사는게 지긋지긋 했고, 그래서 더 악착같이 일했다. 아침에는 학부 조교로, 점심 공강에는 교내 행정 근로 장학생, 짬 시간에는 과외를 하러 다니고 밤에는 실내포차 주방에 전 튀기러 갔다. 그렇게 주말이 오면 중국집에 서빙하러 다녔다. 내 혈기왕성한 젊음을 팔아 번 돈이었기에 어린 나이에 노쇠해질수록 돈은 그래도 만족할 수준만큼은 벌었다. 이렇게 일했다 말하면 사람들은 그렇게 쓰고 싶었던 돈, 쓸 시간도 없겠다고들 말하지만 쓸 시간은 쌔고 쌨다. 핸드폰으로 주문하고 일 끝나고 뒤늦게 노는 자리에 합류하고, 홀로 또는 같이 여행 다니고... 마음만 먹으면 버는 족족 하루에도 다 쓸 수 있는 게 돈 아니던가.
20대 초반의 돈 버는 목적이 놀기 위함이었다면 중반에서 후반으로 넘어갈 때 학업과 병행하는 나의 아르바이트 여정기는 '더 큰 돈을 벌기 위한 준비'를 위함이었다. 이게 무슨 말이냐면 미래의 내가 정말 돈을 잘 벌벌 수 있도록 만들기 위한 준비에 돈을 부단히도 썼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사업가로써 잘나가고 싶어 사업을 하기 위한 밑천을 벌기 위해 일했다. 쌓을 때는 공을 들이지만 무너질 때는 한 순간인 젠가처럼 나의 원대한 목표는 대차게 일그러졌다.
그 후에는 안정적인 전문직이 되어 영업왕이 되겠다는 꿈을 이루기 위해 1년 학원비와 교재비, 생활비를 모으기 위해 일했다. 딱 1년 할 돈을 들고 서울로 올라왔기에 2차 과목에서 1과목 때문에 떨어지던 2과목으로 떨어지던 알 바 없이 다시 학교로 돌아올 수 밖에 없었다. 그 다음엔, 취업을 위한 스펙을 준비하기 위해 일을 했다. 내가 꿈꾸던 미래의 내 모습을 만들기 위해, 아쉬울 것 없는 수입을 가진 사람이 되기 위해 준비만 했다.
원하는 만큼의 돈을 벌기 위한 준비는 취업 후에도 이어졌는데, 왜냐하면 대학이라는 고등교육을 통해 내 손에 들어온 돈은 작고 귀여운 것이 아닌 그냥 작고 바람에 날아갔기 때문이다(과거형으로 썼지만 지금도 내 월급은 들어오는 족족 확인하기도 전에 증발 또는 융해되고 있다). 나와 가족을 내 머릿속 '안정 궤도'에 올려놓기 위해 20대 후반 마지막 날까지 부동산, 코인, 주식 등 조금이라도 내 돈을 불릴 가능성이 있는 컨텐츠는 닥치는 대로 공부하며 20대를 마무리했다.
많은 감정이 뒤섞여 있는 20대지만, 그 중 아쉬움이라는 감정이 가장 크다.
10년 뒤 똑같은 이유로 아쉬움을 남기지 않기 위해 나 자신에게 다짐하려 한다.
[1] 하고 싶은 것이 명확하다면, 확신을 가지고 바로 실행하자
20대 때의 나는 결과와 이득을 먼저 생각하며 행동했다. 결과를 생각하다 보니, 정말 하고 싶은 것을 하기 보다는 안전선 또는 보험이 있는 영역에만 선별적으로 진입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니 그 시절이기에 할 수 있었던 일이 분명히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돈과 시간의 문제가 아니라 똑같은 것을 하더라도 그 나이에, 그 시기에 느낄 수 있는 감정과 교훈은 분명히 다른 시절에 느끼는 것들과 다르기 때문이다. 30대의 나는 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구체적으로 찾아보고 계획을 세워 바로 실행할 것이다. 미래의 나에게 도움이 될지 안될지는 생각하지 않고 우선 내 몸으로 체험할 것이다. 유튜뷰를 보며 시시덕 거려도, 자리에 누워만 있는 것도, 결국엔 내가 그 다음시간을 맞이하게 만드는 행동이다. 하고싶은 것을 하지 않았을 때 발생하는 기회비용을 내가 산출할 듯 없듯이, 하고 싶은 것을 했을 때 내가 받을 손해가 얼마나 되는 지 알 방법은 없다. 그렇다면 하고 싶은 것 하며 하루하루를 내 선택에 따라 웃으며 보내련다.
[2] 그 누구보다 나 자신의 선택을 믿자
가족일수록, 친한 친구일수록 무언가 시도하려 할 때 응원보다는 우려를 표하기 일쑤다. 걱정되기 때문이다. 이런 말을 해주는 사람은 자신들밖에 없다며 하는 그들의 의견은 진작에 나도 알던 것들이 대부분이다. 그럼에도 괜히 그런 말에 휘둘려 하지 못한 것들이 제법 많다. 짧은 인생이지만 그렇게 시도하지 않은 것들은 나중에 후회까지는 아니더라도 아쉬움으로 돌아왔다. 결국엔 '내가' 먹고, 자고, 행동하는 나의 삶을 살기 원한다. 30대의 나는 스스로의 주관과 선택에 따라 살아갈 것이다. 나 자신을 누구보다 믿고 응원해 줄 것이다. 나의 노력을 아무도 몰라줘도, 결과물이 없어 누구나 그럴 줄 알았다고 말할지라도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한 나 자신이 스스로를 응원하고 믿어줄 것이다.
[3] 인생을 원시안으로 보고 마음의 여유를 갖자
별 다른 이유없이 숨차게만 살아온 20대를 볼 때, 그렇게 사는 것이 꼭 옳거나 최선이 아니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길게 사는 인생, 남들을 쫓아가기 위해 이리저리 바쁘게 뛰어다닐 필요는 없다. 지금 뛰어가는 방향이 맞는 방향인지도 모르는데 무작정 뛰다 보면 나중에 되돌아 오기 더 힘들다. 나는 30대가 처음이기에, 더 여유롭게, 자신의 선택을 믿고 걸어갈 것이다. 경주마처럼 앞만 보지 않고 지금 이 시간에, 이 계절에 느낄 수 있는 감정을 충분히 만끽하고 주변을 돌아보며 살아갈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끊임없이 앞으로 나아가는 시간에 조급해 하지 않고, 나만의 방향과 속도를 찾을 것이다. 꼭대기만 보고 산을 올라 정상을 봤더니, 지금까지 올라온 산이 아무것도 없는 민둥산이고 저기 멀리 모이는 내가 살던 마을이 불타 없어지고 있는 것을 보면 얼마나 참담한가. 그 때는 이미 늦은 것이다. 나는 나의 제 때, 기회를 잡기 위해 오히려 더 천천히, 여유를 갖고 살아가고자 한다.
[4] 남을 위해 사는 것을 우선순위에 두지 말자, 나 자신에게 투자하자
돈을 벌어야 하는 직장인으로서, 집에서 가족과 보내는 시간보다 회사에서 일하는 시간이 압도적으로 많다. 더군다나 집에서는 잠자는 시간을 빼면 그 격차는 더 벌어진다. 회사 대표가 아닌 이상 결국 나는 남을 위해 일을 하는 것이다. 연봉 인상률과 현재의 연봉을 생각해 보면, 지금 나의 노동가치가 얼마나 평가절하되어 있는지 뼈저리게 알 수 있다. 누구는 그게 내 시장가치라 하지만 나는 '평가절하'라고 단호히 말하겠다. 나는 남이 보는 것 이상의, 그들은 미처 알아채지도 못한 가능성이 있고 그것을 실현시킬 힘이 있다. 아무리 일해도 남의 회사요, 개국충신으로 헌신해봤자 기대되는 역할을 하지 못하면 내팽겨 지는게 우리내 입장이다. 법인이라는 또 다른 생명체는 우리가 세포를 쉴새없이 갈아끼우듯이, 본인이 살기 위해 직원이라는 세포를 쉴새없이 갈아끼울 뿐이다. 남을 위해 사는 것을 우선순위에 두지 말자. 나를 위해 살자. 나 자신에게 투자하자. 회사를 배척하라는 말이 아니다. 기준이 모호하지만, 돈을 받는 만큼 일하자는 것이다. 한 번 뿐인 인생이다. 전생이 있던 말던 기억도 못하는 상황에서 지금 내 삶은 단 한 번 밖에 겪을 수 없는 너무나 소중한 순간이다. 소중한 나의 시간을 남을 위해 낭비하지 말자. 나를 중심에 두고 사고하자.
[5] 사랑하는 이들을 더 많이 보고, 연락하고, 표현하자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내가 지금 이 순간에 느낄 수 있는 감정과 느낌은 내가 놓인 이 시간 안에 밖에 없다. 30대의 나는 내가 사랑하는 이들을 더 자주 보고 연락하며 교류할 것이다. 나의 고마움, 서운함, 미안함 등의 감정을 예를 갖춰 솔직히 표현하고 나 또한 앞에 있는 이들의 솔직한 감정을 수용할 것이다. 이해되지 않으면 그냥 흘러가도록 두면 그만이다. 지금 이 순간 서로의 눈을 보며 나 자신으로 밖에 느낄 수 없는 관계의 행복을 체험할 것이다. 사랑한다, 미안하다, 보고 싶다, 응원한다... 낯간지럽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하지 않았던 표현들. 이러한 말들이 입 밖으로 나가지 못한 채 내 마음에 남아 있으면 시간이 흐르며 썩어 후회가 된다. 30대의 나는 감정에 솔직할 것이다. 나의 생각과 감정을 자유롭게 공유하고 나와 상대방 모두에게 선한 영향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될 것이다.
30대, 정확히는 서른 살. 생각하지도, 기대하지도 않았던 삼십이라는 숫자를 처음 맞이하는 올해 초 내 마음 상태는 말 그대로 난장판이었다. 새롭게 시작하고자 진행했던 대학원 진학은 물거품이 되었고, 믿었던 사람에게 대차게 속았다. 20대 때 해보고자 했던 모든 것들이 '좋은 경험'이라는 허울 좋은 망태기 안에서 빛도 못 받고 사그라졌다. '업적이 없다' 라는 생각이 12월 말부터 나의 마음을 짓눌렀다. 보통 매년 말 또는 초에 하는 다짐을 지금에서야 하는 이유도 이제야 조금 마음을 추스렸기 때문이다. 돈을 벌어야 되는 입장에서 내 마음을 토닥이고 진정시켜 줄 연속적인 시간을 찾기란 생각보다 더 어려웠고, 그래도 살아야 하기 때문에 시간이 될 대마다 조금씩 조금씩 나눠서 마음을 정리하다 보니 이렇게 시간이 지나가 있었다.
올해 상반기 내가 힘들었던 이유는, 지금 있는 그대로의 내 자신을 보고 있기 괴로웠기 때문이다. 내가 생각했던 30대의 '멋있는 삶'과 지금의 나는 너무나도 괴리감이 있었다. 내가 그토록 되기 싫었던 모습이 내가 되었다는 생각이 커지자 심리적 반발은 더욱 거세졌다. 모든 결과의 책임을 오로지 나에게만 지우려 했다. '현재의 나는 과거의 내가 만들어낸 산물이다'라는 흔한 동기부여 격언조차 과거의 나를 아쉬워하며 자책하게 만들었고, 미래의 나를 기대하던 20대 때는 한 번도 해보지 않은 '내가 그때 다른 선택을 했다면?' 따위의 질문을 수도 없이 던졌다. 그런 내 모습을 보는 것은 그 나름대로 또 다른 비참함이었다.
어영부영, 이도 저도 아니게 살다가, 문득 20대의 내가 안쓰러웠다. 도전이라고는 하지만 결국 잘 살아보려고 준비만 한 20대의 내가 불쌍했다. 미래의 내가 뒤를 돌아볼 때, 후회 없다고 할 수 있는 지금의 내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에서야 다짐을 하는 이유는 이제야 제 정신을 다시 찾았기 때문이고, 이제라도 미래의 삶을 위해 준비하는 일상이 아닌 나의 하루하루를 행복한 삶의 한 부분으로 채우고 싶기 때문이다. 온 힘을 다해 나의 새로운 10년을 응원하고 싶기 때문이다.
<마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