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용치료와 사탕
다행히 강의실은 한여름인데도 서늘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무더위에 지쳐 있었는데, 창밖으로 부드럽게 빗줄기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일찍 오셨네요. 여기 앉아 계세요."
참가자 중 가장 일찍 도착한 나는 동그랗게 놓인 의자 하나에 가서 앉았다. 문득 손이 어색하게 느껴져 무릎 위에 가지런히 올려두고 잠시 눈을 감고 있었다.
육아휴직을 마치고 복직한 지 6개월. 회사는 내가 떠났던 그때와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친했던 팀원이 다른 부서로 이동했고, 후배들도 나를 대하는 태도가 달랐다. "선배님, 이거는요, 요즘엔 이렇게 해요."
후배가 문장을 끝맺는 순간마다 나는 내가 점점 뒤처지는 사람이라는 기분이 들었다.
집에서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아이들은 엄마의 육아 휴직 기간에 익숙해져 있었고, 나와 함께하는 시간이 줄어들자 불안해하는 모습을 보였다. 야근이 연속으로 계속되던 어느 날, 아직 잠을 자고 있지 않던 둘째는 나를 쳐다보고 인사도 하지 않고 시선을 거두었다. 그 눈빛을 보는 순간 나는 내가 어디에도 완벽히 속하지 못하는 사람 같았다.
그러던 와중에 우연히 동사무소에서 무용 치료 프로그램을 연다는 홍보문을 보게 되었다. '움직임을 통해 마음을 치유한다'는 문구가 이상하게 끌렸다. 지금 이 상태를 돌파할 방법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용치료는 총 3회기 진행될 예정이고 오늘이 그 첫번 째 시간이었다.
참가자들이 모두 모이자 선생님은 자신의 이야기를 먼저 들려주며 긴장을 풀어주었다.
"저는 무용 전공을 했지만, 출산과 육아로 인해 경력이 단절되었다가 대학원에서 무용 치료를 다시 공부하면서 이런 프로그램을 진행하게 되었어요."
고개를 끄덕이며 선생님의 이야기를 듣다가 눈이 마주쳤다. 처음 만났지만 그녀의 눈에는 친밀감을 느끼게 하는 힘이 있었다.
이어서 참가자들도 자기소개를 했다. 참가자는 나를 포함해 총 3명이었다.
"저는 홍보팀에서 일하고 있어요. 얼마 전에 육아휴직에서 복직했는데, 적응하는 게 쉽지 않네요."
내 이야기를 그렇게 간단히 요약했지만, 말끝을 떼기가 쉽지 않았다. 복직 후 회사에서의 불편한 상황이 머리를 스쳤다.
첫 번째 활동은 좋아하는 동물이나 되고 싶은 동물을 그려보는 워밍업이었다. 며칠 전 유튜브에서 들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아들 교육 전문가가 말하길, 아들은 자신을 상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상어처럼 친구를 이기려고 싸우고 경쟁하는 아이에게 그는 바다의 진정한 왕은 상어가 아닌 고래라는 사실을 알려주면 좋겠다고 했다.
고래는 평화롭게 바다를 떠다니면서도 모두가 두려워하는 존재다.
'지금 내게 필요한 건 바로 저 고래의 힘이야.'
나는 파란색 색연필로 대번에 고래를 그렸다.
활동은 본격적으로 이어졌다. 선생님은 음악에 맞춰 직선으로 걷기를 지시했다.
벽을 만나면 방향을 바꿔 다시 직선으로 걷는 간단한 동작이었다. '이 정도는 쉽지.'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이어 강하게 걷는 동작이 이어지자 어색함이 밀려왔다.
발을 쿵쿵 구르며 자신감을 표현하라는 선생님의 말에, 나는 억지로 손뼉을 치고 발을 구르며 따라 했지만 속으로는 빨리 이 시간이 끝나기만을 바랐다.
다음으로 선생님은 비눗방울처럼 가벼워졌다고 상상하며 몸을 움직여 보라고 했다. 비눗방울, 나비, 그리고 새처럼 자유롭게 움직이는 동작이 이어졌다.
'내가 이런 걸 하고 있다니.'
주변을 의식하며 잠시 주위를 살폈지만, 다른 참가자들은 모두 자신의 동작에 몰두하고 있었다. 나도 조금씩 나의 동작에 몰입해 갔다.
마지막 활동은 '외로움'이라는 주제로 동작을 만들어보는 것이었다. 나는 최근 회사에서 있었던 일이 떠올랐다.
사무실에서는 바로 옆자리에 있는 사람들끼리도 메신저로 소통한다. 때로 내 뜻이 잘 전달되고 있지 않다고 느낄 때가 있었지만, 사무실의 적막을 깨고 목소리를 낼 용기가 없었다.
불편한 사람일수록 최대한 메신저로만 얘기했다.
며칠 전 팀장이 지시한 업무를 마치고 단체 채팅창에 파일을 업로드했을 때였다.
한참 시간이 흐르고, 메신저에 뜬 문장은 이랬다. "오연씨, 내 말이 그렇게 어려운가?"
그 메신저에는 우리 팀원들이 모두 있었고, 나는 얼굴이 달아올랐다.
빠르게 메신저에 뜬 숫자가 없어졌다. 모두 그 문장을 읽었다.
그날의 긴장감과 수치심이 떠오르며, 나는 그날 집으로 돌아가던 길을 떠올렸다.
터덜터덜 느린 걸음으로 바닥을 바라보며 걸었던 퇴근길.
나는 특별한 동작 없이 그저 그때처럼 터벅터벅 걸었다. 다행히 동작에 그 진정성이 담겼던 걸까.
나는 어느 순간 선생님이 나와 같은 걸음걸이로 내 뒤를 따라 걷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