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용치료와 사탕
일주일 만에 다시 찾은 무용치료 수업.
선생님은 지난 시간보다 더 부드러운 목소리로 오늘의 주제를 꺼냈다.
“오늘은 신체와 감정의 연결을 살펴보겠습니다. 우리가 느끼는 불편함은 때로 몸으로 드러나기도 하죠. 그 감각을 따라가 보면, 지금까지 억눌려 있던 감정이 무엇인지 알 수 있어요.”
참가자들은 동그랗게 모여 앉았다. 바닥에는 사람 형태가 그려진 종이와 빨간색 색연필이 준비되어 있었다.
선생님은 종이를 나눠주며 말했다.
“지금 몸에서 불편함을 느끼는 부위에 표시를 해보세요. 그리고 그 감정이 어떤 상황에서 시작됐는지 떠올려 봅시다.”
나는 종이 위에 손, 발, 가슴, 그리고 아랫배를 빨간색으로 칠했다.
손과 발은 긴장할 때마다 금세 땀이 났고, 어딘가 존중받지 못한다는 느낌이 들 때면 가슴이 서서히 조여오듯 답답해졌다. 그 감각이 아래로 내려가 아랫배까지 전해질 때도 있었다. 특히 임신 중 배가 자주 뭉치던 날엔 그 긴장이 더 예민하게 감지되곤 했다. 배 뭉침이 심했던 날, 내 불안이 아이에게 전해지는 것 같아 미안했던 순간들이 스쳐 지나갔다.
언제 이런 느낌을 느끼는지 생각해보니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회사였다. 회사에서 팀장의 답변을 기다리는 와중에 이런 느낌이 가장 심해지는 것 같았다. 그녀는 내가 보고하는 업무에 바로 답변을 하는 경우가 드물었다.
내 오른쪽 옆자리에는 중년의 여성이 앉아있었다. 나는 그녀가 엄마보다는 조금 젊어 보인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첫째 날 자신을 표현하는 동물로 곰을 그렸고, 닉네임은 ‘순이’였다.
순이 님은 자신의 종이를 들여다보며 작게 한숨을 쉬었다. 단정하게 차려입고 있었지만, 어쩐지 말투와 표정은 지쳐 보였다.
그녀는 “어깨가 제일 안 좋아요. 늘 딱딱하게 굳어 있는 것 같아요” 하고 이야기했다.
맞은편에는 이십대로 보이는 Gym형철 님이 있었다. 첫째 날 그는 자신의 실제 이름을 따서 닉네임을 정했다. 이름은 김형철인데 운동을 좋아해 Gym형철이라고 불러달라고 했고, 무용 치료도 몸을 움직이는 거라 관심이 생겼다고 했다. 그는 빨간 사인펜으로 몸 테두리 전체를 따라 그렸다. 그는 “솔직히 어디가 불편한지 모르겠어요. 그냥… 몸 전체가 무거운 느낌?”이라고 했다.
선생님은 자리에서 일어나 참가자들에게 요가 매트를 건넸다.
참가자들의 시선은 선생님에게로 향했다.
“이제 눈을 감고, 바닥에 누워 떠오르는 감정과 함께 머무르는 시간을 가져볼게요.
방금 압도적인 감정이 일어날 때 내 몸 안에서 그 감정이 느껴지는 곳을 찾아보았죠?
이제는 그 부위에 집중하면서 감정이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지금 나는… 긴장하고 있어’,
‘내가 다 해야 할 것 같아서 무거워’
또, ‘뭐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나 스스로와 멀어진 느낌이 들어’
이런 식으로 그 무거움을 말로 풀어내보는 거예요. 감정은 때로 정확한 말이 되기 전에 먼저 몸으로 옵니다.
그래서 이렇게 몸의 감각을 단서 삼아, 내 마음이 느끼는 걸 조용히 들여다보고, 있는 그대로 말해보는 연습이 필요해요.”
나는 눈을 감고 며칠 전 팀장과의 일을 떠올렸다. 회사는 매년 연말 우수한 성과를 낸 직원들에게 상을 준다. 표창을 위해서는 직접 추천서를 작성해서 제출해야 하는 절차가 있었다.
작년에 복직하고 아직 제 자리를 찾지 못했다는 조급함이 있었던 나는 올해는 업무를 조금 무리해서라도 인정을 받을 수 있는 수준으로 끌어올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다행히 내가 담당하는 홍보 간행물 자료는 시의성도 뛰어났고, 최근 회사 방침에 따라 AI를 활용한 그림을 삽입해 사내에서 화제를 모으고 있었다.
몇몇 동료는 개인 부문에 도전하라며 격려했지만, 나는 올해는 좋은 동료로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컸기 때문에 팀 부문에 지원하려고 했다. 특히 이번 프로젝트에서 활용한 AI 기술이 회사의 방침에 부합하는 중요한 성과였기 때문에, 그 부분을 강조하며 문서를 작성했다.
며칠 뒤, 나는 팀장에게 문서 제출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찾아갔다. 팀장은 나를 쳐다보지도 않고 말했다.
“아, 내가 조금 고쳐서 냈어.” 그 순간, 내 머릿속이 멍해졌다.
조금 고쳤다. 그 말은 단순히 띄어쓰기나 문장 표현을 다듬었다는 의미가 아닐 수 있었다. 문서의 방향 자체가 바뀌었을 가능성을 의미했다. 그런데도 팀장은 수정된 내용을 나와 공유하지 않았다.
나는 기분이 께름칙했다. 내가 열심히 고민하고 정성껏 만든 문서였는데, 왜 나에게 알리지 않고 그렇게 했을까?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며칠 전 점심시간에 우연히 봤던 광경이 떠올랐다.
팀장과 주영 과장이 함께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하던 모습. 두 사람은 유난히 진지하게 대화하고 있었다. 그 장면이 불현듯 떠오르면서 나는 의심이 들었다.
주영 과장은 나보다 나이는 조금 많았지만, 경력은 비슷한 수준이었다. 나이 차이도, 연차 차이도 애매하게 걸쳐 있어서, 어디까지 편하게 지내야 할지, 어디서부터 선을 지켜야 할지 종종 헷갈리는 사이였다.
또 그녀는 가끔 회의에서 다른 팀원들의 아이디어를 자신의 방식대로 재구성해 발표하곤 했다.
혹시 그녀가 자기 사업 아이템을 문서에 포함시키자고 팀장을 설득한 건 아닐까?
순간 내가 예민한걸까 생각했지만,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이 무리는 아니라고 여겨졌다.
얼마 전 회식 자리에서 내가 공적 조서를 작성한다고 하자, 주영 과장은 눈을 반짝이며 이렇게 말했다.
“그럼 이번에 제 아이디어도 같이 넣어보는 건 어때요? 많이 넣을수록 좋은 거 아닌가요? 다 우리 팀을 위한 거잖아요!”
나는 그때 그냥 웃어넘겼다. 주영 과장이 워낙 강한 캐릭터라 굳이 대립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와서 생각하니 그녀의 태도가 예사롭지 않았다.
그날 오후, 나는 회사 그룹웨어를 통해 팀장이 제출한 추천서를 확인했다. 예상대로, 문서에는 내가 초안에서 작성한 내용과는 다른 요소들이 추가되어 있었다.
특히 주영 과장의 프로젝트 아이디어가 굵은 글씨로 강조되어 있었다. 마치 핵심 기여자가 그녀인 것처럼 보였다. 모니터를 보며 나는 깊게 숨을 내쉬었다.
내가 작성한 문서가 맞긴 하지만, 더 이상 온전히 내 것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