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용치료와 사탕
어느 날, 온 가족이 차를 타고 외출을 나갔을 때였다. 첫째 현지가 계속해서 차 안의 노래를 바꿔달라고 했다.
아이들 전용 재생목록을 틀어두었지만, 지금 듣고 싶은 곡이 아니었던 것 같다.
“그럼 다른 거 틀어줄게.”
나는 조수석에서 핸드폰을 꺼내 곡을 넘겼다.
잠시 뒤, 또다시 “이거 싫어.”
그리고 또 “다른 거~~~.”
현지는 몇 곡을 연달아 넘기게 했다.
남편도 처음엔 다음 곡으로 넘기며
“이건 괜찮아?” 묻기도 하고 친절하게 반응했다.
하지만 요청이 계속되자 목소리가 조금씩 건조해졌다.
어느 순간 남편이 언성을 높이며 짜증스럽게 말했다.
“언제까지 그렇게 할 거야? 어? 그냥 듣는 게 뭐가 문제야!”
순식간에 차 안 공기가 무거워졌다.
뒷좌석을 흘깃 보았다.
현지는 어깨를 웅크리고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시선은 바닥을 향하는 듯하다가도, 슬쩍 아빠 쪽을 살피는 것 같았다.
무슨 말이 잘못됐는지 모른 채 혼이 나고, 눈치부터 보게 되는 아이의 표정이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자꾸 그러면 해주기 어렵다고 설명이든 경고든 먼저 해야 하지 않을까. 그래야 현지도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아.”
남편은 반박했다.
“지금 이렇게 말한 게 경고한 거야.”
“아니, 이건 잘 들어주다가 갑자기 혼내는 것처럼 느껴지는데? 그러니까 현지도 헷갈려하는 거야.”
남편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근데 왜 또 나한테 뭐라고 해? 지금 잘못한 건 현지야. 왜 자꾸 나를 문제 삼아.”
그제야 남편이 자기가 훈육할 때 끼어들지 말아 달라고 했던 게 생각났다.
오늘은 외출하는 동안 남편과 싸우지 말아야지 다짐했는데, 아이들 앞에서 말다툼을 해버린 것이 후회되기도 속상하기도 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차 안은 조용했고, 가로등 불빛이 천천히 창밖을 지나갔다.
동우는 잠이 들었고, 현지도 눈을 감고 있었다.
그때 남편이 껌을 꺼내 씹기 시작하자, 현지가 말했다.
“아빠, 나도 껌 줘.”
나는 달래듯 말했다.
“현지야 너 자는 거 아니었어? 지금은 잘 시간이니까, 껌은 내일 먹자. 다시 눈 감아볼까?”
그런데 남편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또 따라 하네. 현지는 맨날 다른 사람이 하는 거 따라 하려고 하더라.”
갑자기 아이의 행동을 문제가 있는 것처럼 낙인찍는 말투가 마음에 걸렸다.
단지 껌을 달라고 했을 뿐인데, 그걸 꼭 그렇게 말해야 했을까.
이런 말이 반복되면, 현지는 ‘나는 따라 하기만 하는 아이’라고 느끼게 되지 않을까.
그동안 나는 감정이 올라오면 바로 말해야 마음이 가라앉는 편이었다.
하지만 나에게는 미리 챙겨둔 사탕이 있었다. 가방 속에 손을 넣자 사탕 박스가 손에 잡혔고, 첫 번째 사탕을 꺼내 입에 넣었다.
단맛이 퍼지면서 긴장이 살짝 풀렸다.
선생님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사탕이 감정을 들여다보는 시간을 만들어줄 거예요.’
나는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다.
‘지금 이 감정은 뭘까.’
‘이런 남편의 말투가 반복되면 현지가 상처받을까 봐 걱정돼.’
‘나는 남편이 현지를 지적하는게 불편해.'
'이런 얘기를 하다가 또 언성이 높아질까봐 불안해’
창밖을 바라보며 깊게 숨을 내쉬었다.
말하고 싶다는 생각은 여전했지만, 지금은 분위기를 지키고 싶었다.
그때 남편이 테일러스위프트 신곡 얘기를 꺼냈고 우리는 그 주제로 대화를 나눴다.
평소 같았으면 지금 느끼는 감정이 너무 중요하게 느껴져 이 부분을 정리하기 전엔 다른 대화로 넘어가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말을 꺼내기 전에 내 감정을 먼저 살폈고, 우리는 자연스럽게 다른 이야기를 했다.
‘나도 하고 싶었던 말을 참고도 이렇게 다른 대화를 이렇게 이어 갈 수 있구나.’
현지 얘기가 다시 나왔다.
현지가 잠든 걸 확인하고는 나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아까 껌 얘기할 때, 그 말투가 좀 마음에 걸렸어.”
그러자 남편은 키즈카페에서 있었던 일을 꺼냈다.
“현지가 다른 애들 하는 걸 계속 따라 하려고 했어.
왜 현지는 그냥 자기가 하는 걸 집중하면 되는데, 자꾸 남을 따라 하려는 거지? 아무튼 계속 그런 모습이 있어서 얘기해 줘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어. 현지가 자꾸 다른 사람 따라 하는 모습이 있다는 걸 알려줘야 된다고 생각했어”
그 말에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하지만 내 생각은 조금 달랐다.
“생각은 이해하는데, 사실 아이들은 원래 다른 사람이 하는 것 관찰하는 것도 좋아하고 따라 하기도 하고.. 그게 잘못된 건 아닌 거 같은데, 그리고 지금 그렇게 얘기한다고 해서 현지에게 와닿는 방식은 아니었을 것 같아.”
남편은 단호하게 말했다.
“아니 그래도 나는 내 방식대로 말할 거야. 그게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아.”
순간 대화가 안 통한다는 사실이 느껴지면서 답답함이 올라왔다.
하지만 이번엔 알았다.
이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지나가는 것도 선택이라는 걸.
나는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었다.
‘지금 내가 해야 할 말보다, 지키고 싶은 분위기가 더 중요해.’
그리고 남편에게 말하는 대신, 조용히 나 자신에게 속삭였다.
‘잘했어. 흔들리지 않은 너는 옳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