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평가

무용치료와 사탕

by 코코넛소녀

인사평가 시즌이 다가오면, 사무실 공기는 알 수 없이 긴장감이 감돌았다.

서류를 넘기는 소리, 팀 채팅방에 뜨는 짧은 알림음, 모두가 조금 더 조심스레 움직이는 분위기였다.


회계연도가 끝나기 전, 내가 맡고 있는 프로젝트를 깔끔하게 마무리해야 했다. 점심도 대충 때우고 돌아와, 지출결의서를 올리기 전에 누락된 항목이 없는지 꼼꼼히 확인하고 있었다.


그때, 옆자리 김 과장이 다가왔다.

“아직 점심시간인데 벌써 일하세요?”

나는 피곤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프로젝트가 조금 늦어져서요. 얼른 마무리하려고요.”


그러자 김 과장은 뜻밖의 말을 꺼냈다.

“하긴, 인사평가가 얼마 안 남았잖아요. 육아휴직 다녀오셨으니 프로젝트가 조금 늦어져도 다들 이해할 거예요. 너무 무리하지 마세요.”


그의 한 문장 한 문장이 거슬렸지만 나는 애써 가볍게 대답했다.

“네. 그만큼 더 신경 써야죠.”


괴장은 말을 이어갔다.

“아니, 제가 드리고 싶은 말은…

괜히 그런 모습이 안 좋은 말을 불러올까 봐 걱정되어서요. 복직 이후에 누가 성과에 대해 크게 기대하겠어요? 무 열심히 하는 것처럼 보이려고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거든요."


내가 그를 빤히 쳐다보자, 그는 이어서 말했다.

"물론 저는 절대 그렇게 생각 안 해요. 그냥 몇몇 분들이 ‘육아휴직 다녀온 사람이 인사평가에서 너무 욕심내는 건 아니지 않냐’는 말을 하더라고요. 꼭 과장님 얘기는 아니고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단순히 기분이 나쁜 걸 넘어서서, 그동안 쌓아온 노력이 단번에 무너지는 듯한 허탈함이 몰려왔다.


그는 내 표정을 살피더니 웃으며 말했다.

“저는 과장님이 늘 열심히 하는 사람이라는 걸 알아요. 그냥 다들 시즌이 시즌이라 예민한 것 같아요. 신경 쓰지 마세요.”


하지만 이미 말은 내 마음속 깊이 파문을 남겼다. 그가 자리로 돌아간 뒤, 나는 모니터 화면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손끝이 미세하게 떨렸고, 머릿속에는 분노와 억울함이 뒤섞인 생각들이 빙빙 맴돌았다.


'김 과장 말이 사실일까? 누군가 나에 대해 그렇게 말한걸까?'

‘내가 자리를 비운 게 그렇게 부담이었나?’

‘내가 열심히 하는 모습이 가식적으로 보인다는 건가?’

‘그렇다면… 나는 사람들이 기대하는 방식대로 행동했어야 했던 걸까?’


질문이 꼬리를 물었다.


그때 가방 속 사탕이 떠올랐다.


‘내가 지금 무슨 기분이지?’

사탕 덕분에 나는 잠시 멈춰 서서 자신에게 물었다.



방금 전 김 괴장의 말이 어떻게 나를 흔들었는지 하나씩 짚어보았다.

‘다른 사람의 말이 내 노력을 한순간에 무너뜨린 것 같아 속상해.’

‘내가 뭔가 잘못한 사람처럼 느껴져서 억울해.’


그러자 또 다른 질문이 따라왔다.

‘그렇다면, 내가 진짜로 원하는 건 무엇일까?’


마음속에서 답이 또렷하게 올라왔다.

‘나는… 내가 노력한 만큼 인정받고 싶어. 그리고 내가 무가치하지 않다는 걸 느끼고 싶어.’


그제야 감정의 정체가 분명해졌다.

‘그래, 나는 억울하고 화나. 그리고 사실 한편으로는 무섭기도 해. 내가 이렇게 노력해도 인정받지 못할까 봐.’


그때 깨달았다. 복직 후 가장 두려워했던 건 바로 이런 말들이었다는 것을.

혹시라도 누군가 ‘육아휴직 다녀온 사람’이라는 이유로 성과를 의심하거나, 욕심을 부린다고 생각할까 봐 늘 조심했다.

상사든 동료든, 좋은 평가만 받아야 한다고 스스로 다짐하며 일해왔다.


하지만 지금 마음 한편이 속삭였다.

‘나를 괴롭히는 건 사람들의 말이 아니라, 이런 일을 절대 겪고 싶지 않다는 나의 집착이었구나.’


세상은 내가 원하는 대로만 흘러가지 않는다. 그리고 모든 사람이 나를 이해해 줄 필요도 없다.

그건 애초에 불가능하다.


중요한 건 내가 이 일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였다.


나는 눈을 감고 심호흡을 했다. 감정의 무게가 서서히 풀려나갔다.

누군가의 말이 불편하더라도, 그것이 곧 나의 가치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 순간 마음속 긴장이 조금 풀렸다.


모니터에 띄워진 파일이 다시 눈에 들어왔다. 해야 할 일은 나를 기다리고 있었고, 이제는 손끝이 떨리지 않았다.


나는 조용히 마우스를 잡았다.


일은 일대로, 마음은 마음대로,

그렇게 나는 나대로,

다시 나아갈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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