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부터는 나 혼자 운동하는 시간을 갖겠다고 남편과 약속했다. 출산 후 이어진 육아와 회사 생활 속에서 나만의 시간을 가진다는 건 늘 미뤄왔던 일이었지만, 이제는 꼭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남편도 흔쾌히 자기가 그 시간에 애들을 보겠다고 했다. 그 말이 고마웠지만, 마음 한켠에서는 과연 내가 원하는 만큼 시간을 확보할 수 있을까 하는 불안도 있었다.
저녁 무렵 가족 모두 함께 밖으로 나섰다. 아직 운동을 등록하기 전이라 나는 같이 나가서 혼자 강변을 뛰고 아이들은 남편과 놀이터에서 놀기로 했다.
상황은 매끄럽게 흘러가지 않았다. 킥보드를 타고 나온 현지는 나를 따라가겠다고 했다. 그럼 우선 산책을 하자고 하고 우리는 다 같이 강변을 걸었다.
하지만 아이들은 계속 내 옆에 있으려 했고, 남편은 동우 옷을 챙기지 못했다며 날이 쌀쌀해지니 오늘은 다 같이 빨리 들어가자고 말했다.
그 순간 가슴이 답답해졌다. 혼자 있기로 한 첫날인데 결국 단 하루조차 허용이 안 되는 건가 싶었다.
“왜 나한테 이런 시간을 안 주는 거야?”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날카로워졌다.
남편도 지지 않았다. “걸을 만큼 걸은 거 아니야? 오늘은 이 정도면 된 거지.”
서로의 말은 엇갈렸고, 표정은 굳어졌다.
결국 남편은 아이들을 데리고 먼저 들어가고 나는 혼자 좀 더 있다가 들어가기로 했다.
남편과 아이들에게서 등을 돌린 순간, 마음공부 책에서 읽은 구절이 떠올랐다.
'삶은 늘 편안할 필요도, 언제나 기분 좋을 필요도 없다. 좋다, 나쁘다 이름 붙이지 않고 그저 느껴질 수 있다면, 그때야말로 마음이 한 걸음 자라난다.'
마음공부를 시작 하기 전에는 두 가지 방법만 알고 있었다. 화를 터뜨리거나, 꾹 참거나.
이제는 점점 알아가고 있다. 터뜨리지도, 억누르지도 않고, 그저 지금 올라오는 내 감정을 바라보는 또 다른 선택지가 있다는 사실을.
나는 벤치에 앉아 숨을 고르며 내 감정을 들여다봤다. 서운함, 억울함, 답답함… 그리고 그 밑바닥에 깔린 바람.
내가 원한 건 혼자 있는 시간을 확보하는 게 아니라, 이해와 공감이었다.
“그 시간이 필요하구나, 그 마음 알겠다”라는 한마디. 바로 그것이었다.
문득 어린 시절의 내가 떠올랐다.
아빠는 자신의 의견과 다른 것에 늘 “시끄러워”,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그냥 이렇게 해”라고 잘라내곤 했다. 이유가 맞든 틀리든 상관없었다. 나는 그저 내 마음을 들어주길 바랐다. 설령 내가 엉뚱한 소리를 해도, “오연아, 너 그렇게 하고 싶었어?”라고 물어봐 주길 바랐다. 하지만 그 말은 끝내 들을 수 없었다.
그래서인지 지금 남편이 현지에게 “우리 현지 그랬구나” 하고 말해줄 때 내 마음이 먼저 따뜻해진다.
이제 그 이유를 알겠다.
그 말은 현지를 향한 동시에 어린 시절의 나를 향한 말처럼 들리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고 싶었구나
오늘 내가 남편에게서 기대했던 건 바로 이거였다.
산책길 바람이 차갑게 불어왔지만, 내 안에서는 무언가 조금 가벼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래, 나.. 그렇게 하고 싶었구나'
그리고 이어서,
'괜찮아. 이제는 내가 너를 알아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