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단해지고 있는 걸까?

by 코코넛소녀

우연한 기회에 참여한 무용 치료 프로그램을 시작으로 나는 마음공부 여정을 걷고 있다.


회사에서의 일, 남편과의 관계, 아이들의 모습. 하나씩 쌓이다 보면 어디서부터 풀어야 할지 막막한 날들이 많았다.


어느 날 저녁엔 나침반 어플을 깔아 침대 방향을 확인하기도 했다.
“침대 머리맡이 동쪽을 향하면 기운이 나빠진다던데…”
혹시라도 바꾸면 조금은 나아질까 싶어 베개를 반대 방향으로 놓고 누웠다.
하지만 정확히 반대로 눕자니 어딘가 불편했다. 결국 모로 누웠고, 그 자세가 더 어색해서 괜히 우울해졌던 기억이 났다.


그런 걸로까지 기분이 달라진다고 믿었던 나, 참 힘들었나 보다....



호흡 명상과 마음공부에 대한 책을 읽으며 요즘 나는 조금은 새로운 세계에 접어든 듯한 기분이었다.
마음이 가벼워지는 순간들이 종종 찾아왔다.
업무도 급한 일이 없어 팀장과의 관계도 무난하게 유지되고 있었다. 남편도 이전보다 차분해진 듯했다. 아이들에게 화내는 일도 눈에 띄게 줄었다.
그 변화가 어리둥절하기도, 신기하기도 했다.

“오빠, 요즘 애들한테 화를 안 내는 것 같아.”
남편은 별것 아니라는 듯 말했다.
“애들이 말을 잘 들어서 혼낼 일이 없잖아.”



그러던 어느 날, 아이들을 위해 뮤지컬을 보러 간 날이었다.
공연 내내 집중했던 현지는 공연장을 나와 흥분한 얼굴로 두리번거리더니, 출입구 쪽 솜사탕 가게를 가리켰다.

“엄마! 솜사탕!”
공연 전부터 약속했던 터라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사러 가자.”

그런데 줄이 생각보다 길었다.
남편이 시계를 힐끗 보더니 말했다.
“차 막히기 전에 빨리 가야 할 텐데.”

순간 망설였다.
아이와의 약속을 지키고 싶었지만, 남편이 점점 불편해하는 게 느껴졌다.

“현지야, 솜사탕보다는 편의점에서 젤리 사는 게 어때? 저기 줄이 너무 길어서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릴 것 같아.”

“싫어! 약속했잖아!”

그때였다.
“어서 안 와? 그럴 거면 놓고 간다!”
남편이 단호한 목소리로 외쳤다.

남편의 목소리가 한 번 더 높아졌다.
“지금 안 오면 편의점도 안 간다. 당장 와”
그 말에 아이는 멈칫했고 눈에는 눈물이 맺혔다.



나는 속이 타들어 갔다.
“오빠, 잠깐만. 현지랑 이야기하고 있어.”
“이야기는 나중에 해.”
남편은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순간 두 가지 생각이 동시에 스쳤다.
한편으로는 남편의 말이 일리가 있었다.
많은 사람이 오가는 곳에서 아이를 달래는 게 좋은 방법일까, 싶었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현지에게 설명을 받아들일 시간을 주지 않고 몰아붙이는 게 옳은 걸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나는 다시 현지를 향해 몸을 숙였다.
“엄마랑 잠깐만 얘기해 볼까? 솜사탕이 아까부터 먹고 싶었지? 엄마도 현지 마음 알고, 약속한 건 지켜주고 싶어. 그런데…”

남편은 동우를 데리고 이미 걸음을 돌리고 있었다.
“나 먼저 간다.”

결국 나는 현지를 번쩍 안아 들고 남편을 따라갔다.

집에 돌아온 후, 남편이 먼저 입을 열었다.
“현지랑 대화 나누는 걸 방해하려던 건 아니었어. 근데 거기가 입구 쪽이라 정신없는데 그러는 건 좀 아닌 것 같아서 나도 모르게 그랬던 것 같아. 뭐라고 하려던 건 아닌데 미안해. 다음엔 얘기하고, 조금 떨어진 데 가서 하면 괜찮을 것 같아.”

그 말에 마음이 조금 누그러졌다.
먼저 이야기해 준 것이 고마웠다.
그렇게 남편과는 서로 조심스럽게 맞춰 가는 느낌이었다.

그런데..
그 평온은 오래가진 않았다.
며칠 뒤, 다시 불편함이 올라왔다.

“현지야, 당히 좀 하라고했지? 이제 잘 시간인데, 계속 한 번만 한 번만 해달라 그러고.

너 아까도 아빠가 뭐 하는데 와가지고 방해하고 왜 그러는거야 도대체?"


남편은 한 번 화가나면 이전 일까지 끄집어내고 감정적으로 애를 몰아붙이는 편이었다.

대체적으로 좋은 아빠라고 생각하지만, 훈육 방식은 여전히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아이들이 잠든 후,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앞으로 현지한테 뭐라고 할 때, 조금 더 부드럽게 말해주면 어때?”
“그게 무슨 말이야?”
“현지랑 자기 전에 이런저런 얘기하잖아. 그럴 때 보면 아빠가 무섭다고도 하거든.”

“지금 애랑 나 사이를 이간질하는 거야?”

“아니, 그런 뜻이 아니라…”

나는 그저 현지가 아빠를 좋아하지만, 너무 강하게 때가 있어 아이 마음이 위축될까 걱정된다고 말하고 싶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남편은 이미 내 말을 듣고 있지 않았다.

“그럼 뭔데? 나는 현지랑 충분히 잘 지내.”
남편의 목소리가 점점 높아졌다.

나는 할 말을 잃었다.
다시, 균열이 시작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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