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이 필요한 종류의 인간

by 코코넛소녀

며칠이 지났지만 답답함은 사라지지 않았다.
회사에서도, 집에서도, 자꾸만 그날의 장면들이 떠올랐다. 남편의 큰 소리, 현지의 움츠러든 어깨, 그리고 내 안에서 올라오는 불편함.


'왜 계속 마음이 안 풀리지?'


점심시간, 나는 회사 식당에서 밥을 먹으며 혼자 생각에 잠겼다. 동료들의 웃음소리가 들렸지만, 나는 그 소리 속에 있지 않았다.


밥을 먹고 사무실로 돌아와 습관처럼 회사 게시판을 훑어봤다. 그러다 한 공지가 눈에 들어왔다.


[임직원 심리 상담 프로그램 안내]


'아, 이런 것도 있었구나.'


8회기 무료 상담.

전문 상담사와의 1:1 대화.

비밀 보장.


마우스 휠을 천천히 돌리며 내용을 하나하나 읽어 내려갔다.


예전에 다른 부서에 있는 동기와 나눈 대화가 떠올랐다.


"자꾸 이런 생각이 들면 혹시 상담 같은 거 받아야 하는 걸까? 심리 상담?"

고민을 얘기하고 별생각 없이 덧붙인 말이었다.


동기가 아메리카노를 한 모금 마셨다. 잠시 생각하는 듯하다가 컵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사람마다 필요한 게 다르잖아. 그런 게 필요한 사람이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는데..."


그리고 나를 쳐다봤다.

"이런 얘기하는 거 보니까, 너는 그게 필요한 사람일지도 몰라."


순간, 가슴이 철렁했다. 나는 그때 내 감정이 당황스러웠다. 동기는 그저 내 질문에 답한 것뿐이라는 걸 잘 아는데 무언가 부족한 인간이 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상담이 필요한 종류의 인간.


하지만 마음공부를 시작하고 시간이 조금 흐른 지금은 문득 궁금해졌다.
'전문가는 이런 상황을 어떻게 볼까?'


회사에서 누군가의 말 한마디가 하루 종일 신경 쓰이던 일, 아이들이 잘 크고 있는 걸까 하는 불안함, 남편과의 관계에서 느끼는 불편함...

지금 내가 잘 살고 있는 걸까? 하는 의문.


모든 걱정과 고민이 정당한 건지, 아니면 내가 예민한 건지 혼자서는 답을 찾기 어려웠다.


무용 치료를 하면서 감정을 회피하지 않고 마주하는 연습을 했다. 감정적으로 반응하지 않고, 그저 느끼는 연습. 사탕을 먹으며 '너의 기분은 지금 어때?'라고 묻는 것도 그런 연습의 일부였다. 하지만 쉽지 않았다. 불쑥불쑥 찾아오는 부정적인 감정들이 아직은 버겁게 느껴지기도 한다.


나는 신청하기 버튼을 눌렀다.
간단한 정보를 입력하고, 상담 가능한 시간대를 선택했다. 손가락이 '제출' 버튼 위에서 잠시 멈칫했지만, 나는 천천히 클릭을 마쳤다.


[상담 신청이 완료되었습니다]


화면에 뜬 문구를 잠시 들여다봤다. 가슴이 조금 두근거렸다.


그날 저녁, 집에 돌아와 남편에게 말했다.
"오빠, 나 회사에서 심리 상담 프로그램 신청했어."


남편이 핸드폰에서 눈을 떼고 나를 바라봤다.
"심리 상담?"
"응. 회사에서 지원해 주는 거래. 8번 무료로."


남편은 잠시 나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도움이 되면 좋겠다."


나는 방으로 들어가 침대에 앉았다.
2주 뒤에 첫 상담이 잡혔다. 2주. 길다면 긴 시간이고, 짧다면 짧은 시간이다.

그때까지 또 많은 일이 생기겠지. 아이들이 떼를 쓰고, 남편이 화를 내고, 나는 중간에서 어찌할 바를 모르는 상황도, 누군가의 말이 마음에 남아 내 일에 집중하기 어려운 상황도..


하지만 2주 뒤면 누군가와 이 상황을 나눌 수 있다. 그 사람이 어떤 답을 줄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함께 생각해 볼 수는 있을 것이다.


무용 치료 선생님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자기를 들여다본다는 건 용기예요."

나는 한 번 더 용기를 내기로 했다. 도움을 청하는 용기.

그렇게 생각하자 더 이상 부끄럽지 않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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