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주가 지났다.
상담센터는 회사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에 있었다.
[마음길 심리상담센터]
'환영합니다' 팻말이 걸린 유리문을 밀고 들어서자, 40대 중반쯤으로 보이는 여자가 나왔다.
"안녕하세요. 오연님이시죠? 저는 김수진이에요."
그녀는 나를 사방으로 나 있는 방 중 맨 왼쪽 방으로 안내했다. 학창 시절 다니던 아담한 공부방 생각이 났다.
"편하게 앉으세요."
나는 선생님과 마주 보고 앉았다.
"요즘 어떠세요?"
나는 50분을 꽉 채워 얘기했다.
낯선 사람에게 이렇게 솔직해질 만큼, 내 안에 하고 싶은 말이 이렇게 많았나 싶었다.
선생님은 내 말을 끝까지 들어주셨다. 고개를 끄덕이며, 가끔 '힘드셨겠어요'라고 말해주시며.
매주 수요일 점심시간, 나는 상담센터를 찾았다.
누군가 내 말을 들어준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위로가 되었다.
그리고 상담을 다녀온 며칠은 정말 평화로워진 기분이 들기도 했다. 남편과 덜 싸웠고, 아이들한테 짜증도 덜 냈다.
하지만 다음 주가 되면 또 쌓였다.
5회 차 상담
"주말에 아이들이랑 놀이터 다녀왔어요."
나는 의자에 앉자마자 말을 꺼냈다.
"최근에 어린이집 선생님이 둘째가 오래 걷는 걸 힘들어하는 것 같다고 해서, 바깥놀이를 자주 해줘야겠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주말에 제가 애들을 데리고 나가서 숨바꼭질도 하고 정말 열심히 놀아줬어요. 남편은 그날 이사 갈 집 알아본다고 나갔고요."
"그런데요?"
"그날 애들을 재우고 나서 영상을 하나 봤는데, 남편이 보면 좋을 것 같아서 공유했어요. 아빠들이 아이들이랑 바깥놀이 많이 해주는 게 좋다는 내용이었는데..."
나는 잠시 말을 멈췄다.
"작은방에 있던 남편이 격앙된 목소리로 '왜 보냈냐'라고 하더라고요. 영상 앞부분에 아빠들은 골프 치고 회식 가느라 바쁘다는 말이 나온다면서요. 자기는 그런 것도 안 하는데 왜 그런 걸 보내냐고."
"오연 님은 어떤 의미로 보내신 거예요?"
"그냥... 앞으로 더 신경 써보자는 뜻이었어요. 바깥놀이 중요하다는 얘기 때문에 둘 다 신경 쓰자고 보낸 거거든요."
선생님이 잠시 생각하시다가 물으셨다.
"그때 어떤 느낌이 드셨어요?"
"느낌이요? 뭔가 또 핀트가 빗나갔다고 느껴져서 답답했어요."
"답답하셨군요."
"제가 말했죠. '앞부분은 신경 쓰지 말고 내용만 봐달라'라고. 근데 남편은 자기도 오늘 이사 갈 집 알아보느라 힘들었다고.
그러면서 솔직히 놀이터 갔다고 했을 때 자기는 추운데 나갔다 해서 좀 그랬다고 하더라고요… 저랑 완전히 생각이 달랐던 거죠"
선생님은 잠시 침묵하시다가 물으셨다.
"그 말을 들었을 때는요?"
나는 한숨을 쉬었다.
"선생님,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해요? 뭔가 대화가 항상 이런 식이에요. 서로 중요시하는 게 다르고... 또 자기를 비난한다고 넘겨짚고 기분 나빠하고."
"그럼 남편이 뭐라고 말해주는 게 좋았을까요?"
"저는 '고생했어'라는 말 한마디만 들고 싶었는데. 어떻게 말해야 남편이 제 마음을 알아줄까요?"
선생님은 그 말에 대한 대답대신 내게 다시 한번 어떤 기분인지 질문을 던졌다.
"아까 답답하셨다고 하셨는데, 다른 느낌은 없으셨어요?"
"다른 느낌이요?"
"그 답답함 밑에 어떤 마음이 있을까요?"
"밑에요?"
"답답함 뒤에 서운함이 있을 수도 있고, 화가 있을 수도 있어요."
"아..."
나는 잠시 생각해 봤지만,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너무 어렵게 느껴졌다. 괜히 선생님 얼굴을 쳐다보기가 힘들어서, 책상 위에 그어진 낙서 같은 선을 바라봤다.
"아마 남편에게 고생했다는 말이 우선 아니냐고 하면 더 싸울걸요."
나는 침묵을 견디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말을 했다.
선생님은 고개를 끄덕이셨다.
"계속 남편에게 어떻게 말하는 게 좋을지 생각하고 계시죠? 오연 님과 대화를 나눠보며 느낀 건데, 오연 님은 표면에 있는 감정은 잘 알아차리고 계세요.
하지만 그 밑에 깔린 마음은 아직 익숙하지 않으신 것 같아요."
선생님이 천천히 말씀하셨다.
"오연 님은 해결책을 찾는 데 익숙하세요. 하지만 감정을 먼저 알면, 해결책도 더 명확해질 수 있어요.
그래서 감정을 느낀다는 게 가장 중요해요"
무용치료 선생님이 했던 말과 비슷했다.
이제 감정을 느낀다는 게 뭔지 알게됐다고 생각했는데... 여전히 어려웠다.
건물 밖으로 나오자 차가운 바람이 불었다.
'너의 기분은 지금 어때?'
답답했다. 그리고 조금 혼란스러웠다.
나는 천천히 회사로 걸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