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이 지나 나는 다시 상담실에 앉아 있었다.
"요즘 남편이랑 또 대화가 안 돼요."
나는 한숨을 쉬며 말을 꺼냈다.
"요즘 이사 갈 집 알아보고 있잖아요. 그런데 남편이 자꾸 옛날 얘기를 꺼내요. 몇 년 전에 집을 사려고 했었는데 그때 저랑 의견이 달라서 거기를 못 샀다고 자기 말대로 했으면 지금쯤 집 값이 많이 올랐을 거라고요"
선생님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들으셨다.
"저희는 그 때 분명히 상의했고, 그 동네는 단점도 분명해서 서로 최선의 선택을 했다고 생각했거든요. 이제 와서 남 탓을 하는 것 같아요."
"그럴 때 어떤 기분이 드세요?"
"억울하죠."
나는 선생님이 뭔가 위로의 말을 해주시길 기대했다. 평소라면 '힘드셨겠어요'라고 해주셨을 텐데, 오늘은 달랐다.
선생님은 그냥 조용히 나를 바라보고 계셨다.
"같이 얘기해서 그렇게 하지 않았느냐고 하면, 제가 운전을 못해서 거기 이사 가지 않은 이유가 제일 큰 거라고 얘기해서 제 속을 긁어요."
내 말투는 점점 빨라졌다.
"하시만 저희가 그 집을 사지 않은 이유는 청약을 좀 더 기다려보는 게 낫겠다고 결론을 내려서 그런 거였거든요"
선생님은 여전히 아무 말씀이 없으셨다.
"남편도 그때는 고개 끄덕여놓고, 꼭 필요하지 않은 말을 계속 해서 사람 속을 뒤집어놔요."
나는 선생님의 눈치를 살피며 말했다.
평소 같으면 선생님이 내 말에 공감해 주시고, 힘들었을 거라고 말해주셨을 텐데, 오늘은 왜 이렇게 답답하게 가만히 계신 거지?
선생님은 조용히 나를 바라보다가 물으셨다.
"오연님, 지금 어떤 느낌이 들어요?"
나는 무의식적으로 두 손을 깍지 낀 채 힘을 주었다.
"그냥... 답답해요. 대화가 잘 안 통하는 느낌이요."
나는 잠시 멈췄다가 말했다.
"선생님한테 말씀드려도 뭔가... 시원하게 안 풀리는 것 같고. 평소랑 다르게 느껴져요."
선생님은 잠시 침묵하시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네, 맞아요. 오연님 느낌이 정확하세요."
"네?"
"사실, 제가 지금 오연님 이야기를 일부러 듣지 않고 있거든요."
나는 당황했다.
"무슨 말씀이세요?"
선생님은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아직 받아들이기 힘들 수도 있지만, 언젠가는 한 번 말해줘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나는 가만히 선생님을 바라봤다.
"오연님은 대화를 할 때, 자신이 받아들일 수 있는 말은 듣고 받아들이지만, 그렇지 않은 말은 밀어내는 경향이 있어요."
"... 그런가요?"
"네. 물론 오연님 말과 생각은 틀리지 않았어요. 하지만 세상에는 서로 다른 견해와 생각들이 있죠. 예를 들어 책을 읽거나 정보를 찾을 때 오연님은 자신의 생각과 맞는 부분을 찾고 거기서 정보를 얻는 것 같아요. 반대되는 건 잘못됐다고 여기죠."
선생님은 말을 이었다.
"저와 대화할 때도 제 이야기가 오연님의 생각과 다르면 다시 질문을 던지거나 다른 이야기로 돌려서 결국 듣고 싶은 말을 끌어내려하죠."
나는 반박하고 싶었지만, 마음 한편에서 인정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친구와 대화 중에도 내 말에 반응이 시원치 않으면 '이 얘긴 다른 친구한테 해야겠다'하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지금 기분이 어때요?"
"글쎄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나는 당황했고 실수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러고 보면, 저한테 그런 면이 있는 것 같긴 해요."
"왜 그렇게 되는걸까요?"
"음... 누구나 자기 말이 맞다고 하는걸 좋아하지 않을까요? 아.. 그러고보니... 누군가 제 말이 맞다고 공감해 줄 때, 제가 잘하고 있다는 걸 확인받는 느낌이 드는 것 같아요"
선생님은 고개를 끄덕이셨다.
"맞아요. 계속 공통된 부분이 있어요. 오연님은 잘 하고 있다는 인정을 받고 싶은 만큼 누군가 오연님의 말에 동조하지 않으면, 상처받거나 혹은 그가 무시한다고 느끼는 게 아닐까 싶어요.
그리고 수치스럽다는 단어를 종종 쓰시는데 그런 속마음이 상대방에게 들켜서 수치심을 느낄까봐 오연님도 모르게 더 방어적으로 되는 것 같기도 하구요. 남편분이 오연님 말을 듣지 않는다고 생각하는만큼 오연님도 그럴 때가 있는거죠."
그 말을 듣는 순간,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나는 인정받고 싶었다. 동의받고 싶었다.
항상 그럴 수 없다는 걸 머릿속으로는 알면서도.
선생님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지금까지 만남으로 저는 오연님과 신뢰가 쌓였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이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거예요. 그런데 만약 신뢰가 없었다면, 이런 말들을 들을 때 상처받거나 화가 났을 수도 있겠죠?
그리고 사실 저도 예전엔 누가 나를 무시한다고 느끼면 예민하게 반응했어요. 하지만 지금은 누가 제 머리 위에 올라가려 해도 신경 쓰이지 않아요."
"... 어떻게요?"
"그건, 제가 저를 충분히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에요."
선생님은 잠시 멈췄다가 말을 이었다.
"그리고 누군가 나를 무시한다고 느끼는 사람은, 사실 본인도 사람을 줄 세우고 있을 수 있어요."
"...!"
그 말에 나는 잠시 조용히 생각에 잠겼다.
"그럼 저는 앞으로 그냥 다 들어주는 연습을 우선 해야 할까요?"
선생님은 미소 지으며 말했다.
"다 들어줄 순 없죠. 중요한 건, '내가 지금 내 생각을 고집하는 순간인지' 아니면 '상대가 무례한 건지' 그걸 분별하는 거예요."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남편 생각이 났다.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인정받고 싶었고, 상처받고 싶지 않았구나.
그만큼 우리는 자신과 다른 서로의 얘기를 점점 더 듣지 않게 된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