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이라는 풍선

by 코코넛소녀


"울고 싶지 않았는데, 울었어요."
오늘은 8회기 마지막 상담이었다. 나는 상담실 문을 열며 감회가 새로웠다. 지난 두 달 동안 매주 수요일마다 이 문을 열었고, 그때마다 조금씩 다른 마음으로 이 자리에 앉았다.


선생님은 평소처럼 따뜻한 미소로 나를 맞이했다. 나는 자리에 앉아 전날 회사에서 있었던 일을 털어놓았다.
점심시간이 끝나갈 무렵, 나는 선배와 함께 사무실 근처 카페에 앉아 있었다. 원래는 가벼운 잡담을 나누다 돌아가려던 참이었다. 그런데 어느새 대화의 흐름이 회사 이야기로 흘러갔다.


"복직하고 힘들지? 팀장님이랑은 괜찮아? 팀장님 피드백 방식이 좀 세기도 하고, 너한테 유독 까다롭게 구는 것 같긴 해."
선배의 말에 나는 애써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 네. 뭐... 적응 중이에요."
"그래도 너무 스트레스받지는 마. 너도 팀장님 스타일에 조금 더 맞춰줄 필요가 있긴 해."
"그러니까... 제가 더 맞춰야 한다는 말씀이세요?"
선배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네가 사회생활을 편하게 하려면 당연히 위에 맞춰야지. 그 자리에 있는 사람은 다 그 자리에 있는 이유가 있는 거야."
선배는 별생각 없이 한 말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에게 그 말은 마치 '그래도 네가 더 노력해야지'라고 들렸고, 서운한 감정이 들었다.
그리고 그 순간—눈물이 나왔다.
예상도 못 했던 타이밍이었다.


나는 당황해서 얼른 눈을 깜빡였다. 커피잔을 집어 들어 얼굴을 가려보려했지만, 이미 선배는 눈치채고 있었다.
"야... 우는 거야?"
선배는 멋쩍은 듯 한숨을 쉬며 말했다.
"너 되게 오래 참았구나. 많이 힘들었구나."


그 말에 나는 가만히 있었다. 그러고 보니, 정말 그랬다. 나는 한참을 참고 있었고, 오늘 그 참았던 감정이 사소한 말 한마디에 스르르 풀려버린 것이었다.




"그때 기분이 어땠어요?"
선생님의 질문에 나는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이상하게 두 가지 감정이 있었어요. 선배에게 서운한 감정이 들면서도, 외롭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데 또... 만약 선배가 저를 위로했다면, 그게 더 자존심 상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나는 잠시 숨을 고르며 덧붙였다.
"예전에도 비슷한 경험이 있었어요. 누군가 '너 진짜 힘들겠다'라고 해줬는데... 이상하게 기분이 후련하지가 않더라고요. 오히려, 제 상황이 정말 문제가 있다는 걸 공식적으로 확인받는 느낌이랄까요?"


"그리고 또 하나, 후회됐어요. 그래도 선배 앞에서 울지 말았어야 했는데... 그냥 참았어야 했는데..."


선생님은 나를 가만히 응시하며 이야기했다.
"그런데 오연님, 참을 수 있었다고 생각하세요?"
나는 순간 멍해졌다.
"..."
"참을 수 있었다면, 참았겠죠."
"그렇긴 하네요."
"그럼, 그 눈물은 정말 부끄러운 걸까요? 아니면 오연님이 그동안 꾹꾹 눌러왔던 감정이 흘러나온 걸까요?"
"아마... 후자겠죠."
"네. 그리고 그 감정을 계속 억누르면, 또 비슷한 순간에 터져 나올 수도 있어요. 중요한 건, 그 감정이 어디서 오는지를 이해하는 거예요."
"맞아요. 울고 나면 기분이라도 개운해야 하는데... 그런데 문제는 제가 괜히 울었다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요? 어떻게 하면 감정을 담백하게 이야기할 수 있을까요?"


선생님은 조용히 미소를 지으며 물으셨다.
"이럴 때는—항상 제가 얘기했듯이—내 안에 어떤 감정들이 있는지를 먼저 살펴보는 게 도움이 돼요. 혹시 오연님 안에, 자기감정을 알아봐 주길 바라는 어떤 마음이 있지 않을까요?"


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그 감정들에 대해서 머릿속에서 한 번 상상해 볼게요. 눈을 감고 상상하는 게 더 도움이 될 수 있어요."



나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나는 상상 속에서 작은 방을 떠올렸다. 그 작은 방 안에 풍선들이 여러 개 떠 있었다.
"뭔가... 감정들이 풍선 모양으로 방 안에 가득 차 있는 느낌이에요."
"어떤 풍선들이 보이나요?"
"여러 가지 색깔이 보여요. 빨간색도 있고, 보라색도 있고..."
"그럼 그중에 한 감정을 만나볼까요? 어떤 풍선이 눈에 들어오세요?"
나는 방 안을 천천히 둘러보고 시선을 안쪽으로 옮겼다. 문 쪽은 특히 비좁아서 풍선들이 서로 부딪히고 있었는데, 안쪽에 풍선 한 개가 혼자 고요히 떠 있었다.


"안쪽에... 풍선이 하나 있어요."
"그 풍선은 무슨 색인가요?"
"초록색이에요. 뭔가... 푸른 숲이 떠올라요."
"푸른 숲을 떠올리게 하는 초록색 풍선을 발견하셨군요. 그럼 그 감정 풍선을 직접 만져본다면 어떤 느낌일까요?"
나는 그 풍선에게 다가갔다. 손을 뻗어 조심스럽게 만졌다.
"이게 풍선처럼 빤질빤질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 벨벳처럼 부드러워요. 안쪽은 고무공 같고요. 풍선처럼 터질 것 같지는 않은데, 말랑말랑하면서도 단단해요."


"뭔가 펑 터져버릴 것 같은 느낌인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말랑말랑하고 부드러운가 보네요. 그럼 그 초록색 감정을 좀 더 가까이서 들여다볼까요? 그 감정이 지금 어떤 모습으로 있는 것 같아요?"


나는 잠시 그 풍선을 응시했다.
"가만히... 떠 있어요. 다른 풍선들이 서로 밀고 부딪히는데, 이 풍선은 조용히 제자리에 있는 것 같아요."
"그렇군요. 조용히 제자리에 있는 초록생 풍선. 오연님은 그걸 어떻게 느끼세요?"


나는 조금 더 집중했다.
"안정적인 느낌이 들어요. 흔들리지 않는..."


선생님은 잠시 기다렸다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럼 그 감정이 오연님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을까요?"
나는 다시 한번 초록빛 풍선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벨벳같이 부드러운 감촉을 느끼며 천천히 풍선 주위를 돌았다. 뒤쪽도 만져보고, 위쪽도 살짝 눌러보았다. 풍선은 내 손길에 반응하듯 살짝 흔들렸지만, 이내 제자리로 돌아갔다.
그리고 조금씩, 천천히, 초록색 풍선이 나에게 무언가를 전해주는 것 같았다.


"네가 노력하고 있는 걸 안다고... 점점 변화할 거라고... 그렇게 말해주고 있는 것 같아요."


선생님은 또 한 번 기다렸다가, 나직이 나에게 물었다.
"그럼 그 감정에게 이름을 붙인다면 뭐라고 할 수 있을까요? 그 감정은 어떤 감정일까요?"


나는 한참 고민하다가 머릿속에 떠오른 단어를 꺼냈다.
"... 희망이요."
그 말을 내뱉는 순간,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


잠시 후 나는 천천히 눈을 떴다.
"저는 그동안 회사에서 팀장님의 변하지 않는 태도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노력하는 모습으로 인정받고 싶었어요. 그리고 육아하면서 남편하고 자주 부딪치면서도 뭐라도 해보려고 한 것 같아요. 그래서 지금 여기까지 오게 된 것 같고요."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힘들었겠다'라고 말해주면 한편으로는 위로가 되면서도, 이상하게도 수치스러운 기분이 들었어요. 내가 힘들어하고 있다는 걸 남들이 알아차리는 게 부끄럽고..."
나는 깊이 숨을 들이마셨다.


"그런데, 방금 떠올린 희망이라는 감정이 저에게 말을 걸어주는 것 같아요. '네가 노력하고 있는 걸 내가 안다'라고, '분명히 조금씩 변화하고 있다'고요."
"그 희망이 오연님에게 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있었나 보네요."
"네... 제가 제 자신에게 해주지 못했던 말 같아요. 저는 늘 '아직 부족해, 더 해야 해'라고만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정작 제 안의 희망은 '이미 충분히 노력하고 있어'라고 말해주고 있었던 것 같아요."
나는 잠시 말을 멈췄다가 이어갔다.
"그러니까... 수치심도, 서운함도, 결국은 제가 제 노력을 인정받고 싶었던 마음에서 온 거였나 봐요. 제가 저를 인정해주지 않으니까, 남들한테서라도 인정받고 싶었던 거고요."


"오연님 마음속에 그동안 그 말을 건네주고 싶어 했던 초록색 풍선이 있었네요."
선생님은 한참 있다가 말을 덧붙였다.
"... 희망의 이야기를 이제야 들어주셨네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순간 마주친 선생님의 눈가에도 살짝 눈물이 맺혀 있었다.


선생님은 잠시 침묵하다가 조용히 말했다.
"오연님, 지난 두 달 동안 정말 많이 성장하셨어요. 처음 오셨을 때 오연님은 해결책만 찾으려 하셨어요. 어떻게 하면 남편을 바꿀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아이를 바로잡을 수 있을까, 회사에서 내 능력을 알아줄까. 하지만 지금 자신의 감정을 들여다보고 있으니까요."


선생님이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오늘 만난 희망은 늘 거기 있었지만, 오연님이 듣지 못했던 목소리예요. 이제는 들을 수 있게 되신 거예요."


나는 눈물을 닦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감사합니다, 선생님."
"저도 감사해요. 오연님과의 시간이 저에게도 큰 의미였어요."


상담실을 나서며 내 마음에 있는 초록색 풍선을, 희망을 놓지 않은 내 자신이 자랑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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