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회기 상담이 끝나고 한 달이 지났다.
현지는 여전히 의존적일 때가 있고, 요즘 들어서는 동우도 떼를 많이 쓴다. 집에서는 남편의, 출근하면 팀장님의 기분을 살피는 일상은 비슷하다.
드라마틱한 변화는 없었다.
하지만 뭔가 달랐다.
예전의 나는 삶이 특별히 불행한 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다시 태어나도 지금의 삶을 살고 싶나요?"라는 질문에는 선뜻 '그렇다'라고 답할 자신이 없었다.
그 사실이 왠지 서글펐다.
나는 내 자신도, 내가 가진 삶의 조건들도 어딘가 조금은 부족하다고 느끼고 있었다.
그런데 이제는 조금 다르게 답할 수 있을 것 같다.
지난주 저녁, 현지가 종이접기를 하며 밥을 먹고 있었다.
예전 같았으면 남편이 "현지야, 밥 먹고 해야지. 지금 뭐 하는 거야?"라고 재촉했을 것이다. 나는 남편이 화를 낼까 봐 불안해지며 눈치를 살폈을 것이다. 그리고 "현지야, 일단 먹어"라며 얼른 숟가락에 밥을 떠주거나, 색종이를 바로 뺏어버렸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남편이 "현지야, 네가 접은 거 정말 예쁘다"라고 했다. 그리고 "대신 밥 먹고 접자"라고 얘기했다.
현지는 "응. 이것만 접고 안 접을게"하고 신나게 대답했다. 남편은 현지를 웃으며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가슴이 따뜻해졌다. 그리고 생각했다.
'내가 뭘 했지?'
돌이켜보면 별거 없는 것 같았다. 남편이 혼낼 때 바로 끼어들지 않으려 애썼다. 대신 현지에게는 "괜찮아. 아빠 말대로 해보자"라고 차분히 같은 방향으로 설명해주려 했다. 그리고 나중에 조용히 남편에게 "아까 현지가 놀란 것 같던데"라고 말해보기도 했다.
작은 것들이었다.
하지만 그 작은 것들이 결코 쉽지 않았다는 걸, 이제는 안다.
얼마 전, 부서 회식이 있었다.
술잔이 오가던 중, 업무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흘러갔다. 팀장님이 부장님에게 육아휴직 다녀온 옆 팀 직원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 친구는 좀 아쉽더라고요.."
부장님이 고개를 끄덕이다가 갑자기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오연 씨도 알지? 잘해야 해."
순간 멈칫했다. 저 말이 무슨 뜻이지? 나도 그 직원처럼 적응 못 한다고 생각하는 걸까? 아니면 그렇게 되지 말라는 경고일까?
팀장님을 통해 내 평판도 좋지 않게 전달됐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스쳤다. 괜히 억울한 기분이 밀려왔다.
예전 같았으면 목소리가 작아지고 주눅 들었을 텐데, 나는 맥주를 마시며 생각했다.
'아, 내가 이런 말에 불편함을 느끼는구나.'
그리고는 그게 끝이었다.
나는 그 순간 생생하게 자각했다. 내 마음이 단단해졌다는 사실을.
감정에 휘말리지 않고, 그냥 있는 그대로의 감정을 바라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업무에서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나에게는 완벽주의적인 성향이 있다. 보고서 한 장을 만들 때마다 '더 잘해야 한다', '이 정도로는 부족해'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그 탓에 보고서를 완성하는 데 많은 시간이 걸렸고, 공들인 시간에 비해 결과물은 만족스럽지 않았다.
완벽함에 대한 집착이 내 손끝을 무겁게 만들고, 스스로를 지치게 했다.
이제는 내 마음을 천천히 들여다본다.
'아, 나는 지금 잘하고 싶구나. 잘해서 인정받고 싶은 거였구나.'
그 사실을 인정하면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그리고 감정을 돌아보며 적어둔 몇 가지 실천 항목들―'슬라이드 노트를 먼저 적어보기', '완성도에 집착하지 말고 초안을 빨리 만들기'를 떠올린다.
그리고 그 방법들을 실제로 적용하며 보고서를 조금 더 효율적으로 작성하려 노력하다 보니 업무 성과도 눈에 띄게 달라졌다.
예전에는 상사의 말투에 상처받고, 대화의 한마디 한마디를 신경 쓰느라 지나치게 많은 에너지를 쏟았다. 그런데 이제는 그 시간이 눈에 띄게 줄었다.
업무 중에 느끼던 긴장이 완화되자, 업무 중에 좌절감이나 속상함 대신 긍정적인 정서를 떠올리는 순간이 많아졌다.
즐거움, 의욕, 상쾌함, 뿌듯함, 그리고 열정.
이 중 어떤 감정이 지금 내 기분을 가장 정확하게 말해주는 걸까, 하고 고르는 재미까지 생겼다.
이제 사탕을 가방에 넣고 다니진 않는다. 그래도 괜찮다. 이제는 사탕 없이도 내 마음을 물어볼 수 있다.
"너는 지금 어떤 기분이야?"
그 질문 하나로 나는 나를 존중하는 법을 배웠다.
물론 여전히 남편과 나는 육아 문제로 부딪힐 때가 있다. 아이에게 예민하게 반응하는 남편을 보면 답답하기도 하다.
하지만 예전처럼 그 감정이 바로 싸움으로 번지진 않는다. 이제는 한 발짝 물러서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아, 내가 지금 남편 때문에 불안해하고 있구나. 그 불안이 나를 조급하게 만드는구나.'
예전엔 이런 감정이 올라오는 것 자체가 불편했다. '이런 감정이 드는 것은 뭔가 잘못됐다는 신호가 아닐까?' 하며 그런 감정을 억누르려고만 했다.
이제는 그것이 없애야 할 신호가 아니라, 그저 내가 불편하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메시지일 뿐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자 감정의 깊이가 이전만큼 아래로 가라앉지 않는다는 것이 분명히 느껴졌다.
만약 20대의 내가 심리 상담을 받았더라면?
일찍부터 스스로 감정을 돌아볼 수 있었을 텐데. 그럼 덜 상처받고, 좀 더 평화롭게 살 수 있지 살았을까? 그런 생각이 들 때면 왠지 억울하기도 하다.
문득 마지막 상담 때 선생님이 하셨던 말이 떠올랐다.
"지금이 아니었다면 오연님은 이만큼 내적 성장을 이루지 못했을지도 몰라요. 우리 만남이 지금이어야 했던 이유예요."
그 말을 다시 떠올리니,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지금이었기 때문에, 나는 이만큼 깊이 나를 돌아볼 수 있었다.
지금이었기 때문에, 나는 희망을 만날 수 있었다.
이전에는 감당할 수 없었던 무언가가 지금은 준비된 마음으로 닿을 수 있었다.
예전의 나는 변화를 거창한 것으로 생각했다. 뭔가 큰 계기가 있어야 하고, 드라마틱한 전환점이 있어야 한다고 믿었다.
하지만 진짜 변화는 이렇게 오는 거였다. 조용히, 천천히, 일상 속에서.
어느 날 문득 뒤돌아보니 내가 달라져 있는 것.
나는 이제 조급하지 않다. 서두를 필요도 없다.
언젠가 필요할 때 내면과 깊이 만날 것이고, 그렇게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믿는다. 그리고 자연스레 일어날 변화에, 오랜만에 설레는 감정을 느낀다.
오랜만에 나는 나의 미래가 기대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