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글 쓰기를 원하는 것보다

내가 글 쓰기를 더 바랐던 친구 <<위로가 필요한 당신에게>>

by 감성닥터

스무 살, 갓 대학에 입학한 나는 하루하루가 낯설고, 조금은 들뜬 시기였다. 국문학 수업이라 해도 대단한 감흥은 없었고강의실은 지루함과 졸음 사이 어딘가에서 맴돌고 있었다. 안경 너머로 우리를 응시하던 여교수는 가냘픔 뒤에 단단한 기품을 숨기고 있었고,그녀의 시선이 흘러간 자리마다 우리는 괜히 고개를 돌리곤 했다.

그날, 교수님은 김춘수의 ‘꽃’을 읊조릴 사람을 찾고 계셨다. 나는 무심히 손을 들었고, 마치 숨을 쉬듯 시를 외웠다. 좋아하는 것을 만나면, 사람은 뜻밖의 용기를 꺼내게 되는 것 같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 목소리는 조금 떨렸지만 단호했고, 친구들의 눈빛은 놀라움과 생경함으로 일렁였다. 그 순간은 오래도록 그들의 기억에 남아, 시간이 훌쩍 흐른 뒤에도 가끔 화제에 오르곤 했다.

그 시를 외운 건 오래전부터였다. 누구도 시를 외우라 하지 않았지만, 나는 외웠고, 오래도록 그 구절들을 가슴에 품고 있었다.


시와 처음 만난 건 열다섯의 봄날이었다.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 하나가 이상하게 가슴을 설레게 했고, 나는 그 감정을 표현할 길이 없어 시집을 펼쳤다. 의미도 알지 못한 채, ‘목마와 숙녀’를 읊고, ‘즐거운 편지’를 되새기며, ‘낙화’의 쓸쓸함을 흉내 냈다. 시는 곧 나의 또 다른 언어가 되었고, 말로는 닿을 수 없던 세계를 그 짧은 행들 속에서 건져 올렸다.


그 무렵, 내 곁엔 마음이 닮은 친구가 있었다. 우리는 수업이 끝나면 함께 밥을 먹고, 버스를 타고, 해가 저무는 교정의 벤치에 앉아 계절의 향기를 맡았다. 나는 종종 그 친구에게 쪽지를 건넸다. 노래의 제목 하나, 어설픈 시구 몇 줄, 때로는 날씨에 대한 감상 같은 것들. 고등학교 시절, 교과서 아래로 몰래 손을 뻗어 친구에게 전하던 쪽지처럼, 조심스럽고 따뜻하게.


그 쪽지들은 버스 의자의 틈 사이에 끼워두곤 했다. 언젠가 먼 훗날, 우리가 다시 그 자리에 앉아 오래된 종잇조각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기대를 했다.

그 친구는 내 글을 읽으며 눈을 반짝였고, 내가 언젠가 책을 낼 거라며, 나보다 더 들떠 미래를 꿈꾸었다.


그러나 낭만은 언제나 그렇듯, 벚꽃처럼 왔다가 바람처럼 사라졌다. 살구빛 블라우스 위로 꽃잎이 흩날리던 어느 날부터우리의 시절은 조금씩 바래가기 시작했다. 어느새 말하기 전에 한 번 더 망설이게 되었고, 종이 위에 적히던 문장들도 그저 한철 머물다 사라지는 꽃잎처럼 느껴졌다.

아마도, 우리 사이의 평행선이 어긋날까 두려웠던 건 아닐까

그래서 더 조심스러웠고, 서서히 더 멀어졌는지도 모른다.


나는 아직도 가끔 생각한다.

그때의 쪽지들은 어디쯤 흘러가 있을까.

내가 글 쓰기를 원하는 것보다, 내가 글 쓰는 것을 더 바랐던 그 친구는 지금 어디에서, 어떤 표정으로 나를 기억하고 있을까.


작가의 이전글덤으로 온 전어야, 미안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