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 필요한 당신에게>>
퇴근길 재래시장은 언제나 생동감이 넘칩니다. 늘 제 자리를 지키는 상인들 이건만, 매일이 새롭습니다. 여름 더위 속에 자줏빛 가지가 풍성하던 풍경도, 입추가 지나자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사근사근 초록빛으로 빛나던 오이는 어느새 빛바랜 연두를 닮아가고, 호박의 누런 살빛에 섞여 사라집니다. 뜨거운 햇살 때문인지 상추는 좀처럼 눈에 띄지 않습니다. 여름 채소들도 사람처럼, 저마다 다른 클라이맥스를 지나가는 걸까요.
같은 물건이라도 좀 더 싼 곳을 찾아 두리번거리는 아낙의 눈빛은 여전히 살아 있습니다. 그녀 마음속에는 아마도 가족들과 맛있는 저녁을 나눌 상상이 가득하겠지요. 왜소한 체구에도 양손 가득 장바구니를 들고 거침없이 걸어가는 중년의 여인, 쑥스러운 얼굴로 ‘수박 사세요’를 외치는 청춘의 목소리, 이 모든 것이 시장을 에너지로 가득 채웁니다.
나에게도 단골 가게가 생겼습니다. 몇 번의 시행착오 끝에 정착한 생선가게입니다. 처음 찾았던 가게는 이름부터 범상치 않았습니다. ‘소녀시대’라는 간판을 보고 호기심이 생겼습니다. 생선과는 어울리지 않는 이름에 이끌려 들어가 보니 총각 넷이서 흥정에 열을 올리고 있었습니다. 시세는 몰랐지만, 일관성 없는 말들에 믿음이 안 생겨 그 이후로는 가지 않았습니다.
두 번째 가게는 낙지를 포장하던 아저씨의 손놀림이 어설퍼 보였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집으로 가는 길에 까만 비닐봉지에서 물이 줄줄 흘러내렸습니다. 그렇게 세 번째 가게에서야 드디어 멈춰 섰습니다. 이곳의 아저씨는 진짜였습니다. 생선 하나하나를 정성스레 설명하고, 새벽 경매장에서 신선한 생선을 낙찰받아 온 이야기까지 풀어놓습니다. 열정과 진심이 느껴졌지요. 오징어 세 마리를 샀을 뿐인데, 오늘은 거의 다 팔았다며 두 마리를 더 얹어주셨습니다. 나는 덤에 약한 사람인가 봅니다. 고마움과 기쁨이 겹겹이 쌓여, 그날 이후로 나는 그곳의 단골이 되었습니다.
오늘도 자연스레 그 가게 앞에 멈춰 섭니다. 나보다 먼저 와 생선을 고르고 있는 손님이 둘, 회를 뜨는 아저씨의 손놀림은 빠르고 정교해서, 넓은 쟁반 가득 회가 금세 채워집니다. 회를 들고 가는 손님의 발걸음은 경쾌하고, 손질된 갈치와 자반을 받아 든 아주머니도 익숙한 모습입니다. 가게 주인과 스스럼없이 인사를 나누며 시장 골목으로 사라집니다.
드디어 나의 차례가 되었습니다. 오늘은 연어를 사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밝은 주황빛 살점이 두툼하고 싱싱하여, 마치 투명하게 빛나는 듯 보입니다. 그런데 아저씨는 갑자기 팔딱이는 전어 다섯 마리를 비닐봉지에 담아 내 손에 안깁니다. “오늘 오래 기다렸으니까 덤으로 드릴게요.” 아저씨는 그렇게 말하며 웃습니다.
그 순간, 마음속에서 소용돌이치는 외침이 생겨납니다
덤이라지만, 내 손에 쥐어진 건 아직 살아 있는 생명체였습니다. 이 작은 몸짓들이 내게는 뜻밖의 선물이지만, 그들에겐 얼마 남지 않은 마지막 숨결일 터.
‘아직 살아 펄떡이는 덤, 나는 이 생명을 어떻게 감당해야 하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