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fying Gravity - 뮤지컬 위키드를 통해 본 삶의 교훈
3월 뉴욕의 거리는 우리나라 초봄 날씨와 유사하다. 가벼운 코트를 걸치고 적당히 차가운 공기의 감촉을 느끼며 한가로이 걷기에 제격이다. 한 손에 베이글을 다른 한 손에 커피 한 잔을 거머쥐고 잠시 뉴요커 감성에 빠져본다.
뉴욕 7번가와 8번가 사이, 브로드웨이길을 걷다가 50th St.으로 꺾어지면 브로드웨이 뮤지컬의 성지, 거슈윈 극장(Gershwin Theatre)과 만나게 된다. 갑작스레 떠나온 뉴욕 여행길에서 뮤지컬 위키드(Wicked) 포스터를 보는 순간 이것만큼은 꼭 보고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라스트미닛 티켓 구매를 하려다 보니 무대와 아주 근접한 '오케스트라' 구역 자리만 남아 있다. 적잖은 비용을 지불했지만 자리는 정 중앙, 최고의 위치에 앉는 행운을 얻었다. 덕분에 배우들의 표정 연기며 움직임 하나하나를 놓치지 않고 직관할 수 있었고, 오케스트라 라이브 연주를 생생히 감상할 수 있어 그 감동이 배가 되었다.
이제부터 초록 마녀 '위키드' 뮤지컬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뮤지컬 위키드는 그레고리 맥과이어(Gregory Maguire)가 1995년에 출간한 소설 위키드(Wicked: The Life and Times of the Wicked Witch of the West)가 원작이다. 이 소설은 우리가 익히 잘 알고 있는 오즈의 마법사를 재해석한 작품으로, 오즈의 마법사에서 서쪽의 사악한 마녀로 알려진 '엘파바'를 이야기의 중심으로 데려왔다.
초록 피부를 갖고 태어난 엘파바는 독특한 외모로 인해 어릴 때부터 주변으로부터 따돌림을 당하며 자란다.
학교에 입학한 후에도 엘파바는 외모가 다르단 이유로 친구들로부터 왕따를 당한다. 그 와중에 엘파바는 공교롭게도 아름다운 외모를 지닌 인기녀 글린다와 룸메이트가 된다.
이 뮤지컬 스토리의 양 축은 엘파바와 글린다의 상반된 조건에 대한 사람들의 편견에서 출발한다. 이들은 처음에 서로를 거부하고 대립하다가 결국은 각자의 다름을 인정하고 절친이 되어 진실된 우정을 쌓아간다.
엘파바는 성장해갈수록 사회의 편견으로부터 스스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점차 사악한 마녀의 모습으로 변해가는 엘파바는 편견이 빚어낸 선과 악의 경계에 대한 근본적 질문을 던진다.
뮤지컬의 하이라이트는 엘파바가 '한계를 넘어서(Defying Gravity)'라는 노래를 열창할 때다.
엘파바는 자신을 가로막는 한계를 깨고 스스로의 길을 개척하기로 결심하며 하늘로 치솟는다. 1막의 마지막 클라이맥스인 이 순간, 화려한 무대 조명과 엘파바의 폭발적인 가창력, 오케스트라의 열정적인 연주가 합을 이뤄 잊을 수 없는 명장면을 연출한다. 동시에 우리 모두 주변의 편견에 굴하지 않고 자신의 신념에 따라 세상의 규칙과 맞서나 가야 한다는 강렬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2막은 엘파바의 고난과 희생에 관한 내용으로 엘파바와 글린다, 그리고 남자친구 피에로의 삼각관계를 다룬다. 엘파바가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글린다는 엘파바와 피에로를 세상 밖으로 피신시키고, 결국 글린다가 오즈 나라를 통치하며 정의로운 지도자로 거듭난다는 이야기로 막을 내린다.
1부에 비해 2부의 구성이 다소 아쉬운 점이 있었으나 이 이야기의 메시지는 명확하다. 우리도 살다 보면 스스로의 한계를 극복(Defying Gravity) 해야 할 때가 있고, 주변의 어떤 시선에 굴하지 않고 꿋꿋이 자신의 길을 가야 한다는 것이다.
2시간 반동안 뮤지컬 속에 온전히 빠져있다가 극장 밖으로 나오니 '아 여기가 브로드웨이 한복판이구나'를 실감할 수 있었다.
공연이 끝난 지 한참이 지났지만 공연장 밖은 다양한 인종, 성별, 연령대의 관람객들이 홀에 나와 사진을 찍고, 기념품을 구매하며 공연장 떠나기를 못내 아쉬워했다. 뮤지컬의 감동을 함께 한 관객들 간에는 이 순간 어떠한 편견도 다름도 느껴지지 않았다.
극장 앞은 밤늦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인산인해를 이뤘다. 한참 동안 나도 Defying Gravity를 열창하던 엘파바의 음성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브로드웨이 현지에서 본 뮤지컬이라 그런지 감동이 몇 배 더 크게 느껴졌던 것 같다.
오랜만에 찾은 뉴욕에서 브로드웨이 뮤지컬, 특히 '위키드' 관람은 그간 무료하던 감성을 일깨워주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요즘같이 세상이 혼란스럽고 복잡한 때일수록 '스스로의 신념대로 살아가는 용기가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때가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며 제법 쌀쌀해진 뉴욕의 밤거리를 걸었다.
<여름에서 가을로 가는 중> 매거진은 매일매일 저의 다양한 기억을 소환해 보려는 시도입니다. 이 과정에서 잊고 있던 소중한 추억과 행복했던 기억, 제 곁을 지켜준 사람들을 떠올려 보려 합니다. 독자 여러분의 다양한 의견이나 공감하는 내용이 있으시면 댓글로 남겨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