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孤: 혼자라고 느낄 때

낯선 시공간 속 쫄깃한 긴장감, 그리고 단단해지는 내면

by 열음

기차가 지나간다. 기차가 역전을 지날 때마다 '번쩍'하고 번개가 친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여기는 미국 시카고 다운타운 한복판에 위치한 아파트다. 창밖으로 보이는 도시는 분주하지만, 이곳에서의 나는 오롯이 혼자다.



스스로 단단해지고 싶을 때, 혼자만의 여행을 시도해 보는 건 어떨까.


홀로 공항에 도착했을 때의 괜스레 긴장되는 입국심사, 호텔로 향하는 낯선 도로와 표지판, 처음 접하는 공기와 새로운 냄새까지. 혼자 하는 여행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생생한 순간들이 펼쳐진다. 구글맵에 의지해 길을 찾다가 지하철역으로 내려가는데 갑자기 신호가 끊기기도 하고, 지하철 표를 구매하려다 예상치 못한 상황과 마주하기도 한다. 때로는 골목길을 잘못 들어서 막다른 길에 부딪히기도 한다.


낯선 곳을 홀로 여행하다 보면 ‘나는 철저히 혼자구나’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갑작스레 길을 잃었을 때, 새벽에 눈을 떴는데 ‘내가 왜 여기 있지?’ 하고 순간적으로 머리가 하얘질 때.... 혼자라는 사실이 더 깊숙이 다가온다.


완전히 새로운 곳으로 떠나는 여행은 설렌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다양한 상황 속에 스스로를 온전히 내던져야 하기에 한 순간도 긴장을 늦출 수 없다. 곧 닥칠지도 모르는 위험에 대비할 수도, 문제가 생겼을 때 누구와 상의할 수도 없다. 모든 것을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 극한의 도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낯선 시공간으로 떠나는 혼자만의 여행은 스스로를 단단하게 만들어 주는 매력적인 선택지다.


때로는 잘못 들어선 골목길에서 오래전부터 가고 싶었던 서점이나 카페를 우연히 발견하는 행운을 만나기도 한다. 허름해 보이던 음식점이 미슐랭 스타를 받은 맛집이기도 하고, 거리 공연에서 예상치 못한 감동을 얻기도 한다. 혼밥을 하며 온전히 음식 맛에 집중해 보는 경험도, 낯선 이의 친절을 통해 아직 세상이 살 만하다는 위안을 얻는 순간도 있다.




며칠 전, 뉴욕 타임스퀘어 42번가 역에서 소호로 가기 위해 지하철을 탔다. 문득 ‘이곳의 바닥 청소는 대체 언제 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뉴욕 지하철은 120여 년의 역사가 켜켜이 쌓여 있는 공간이다. 계단과 바닥은 시꺼멓고 끈적이며, 반질반질하게 닳아 있다.


오후 5시, 퇴근을 앞둔 다양한 사람들이 하나둘씩 계단을 따라 내려온다. 인종, 성별, 나이, 직업이 모두 다르다. 월가 초년생으로 보이는 평범한 회사원부터 독특한 개성을 뽐내는 젊은이까지, 그야말로 자유 그 자체의 모습이다.


이번 여행을 통해, 말로만 들었던 뉴욕 지하철을 처음 경험했다. 보호막 없이 철로와 맞닿아 있는 승강장을 넘어 지하철에 올랐다. 특유의 쿰쿰한 냄새가 코끝을 스친다.


사람들은 서로 최대한 몸을 부딪히지 않으려 하며 저마다의 영역을 유지한다. 누군가는 에어팟을 낀 채 창밖을 응시하고, 누군가는 책장을 넘기며, 또 다른 누군가는 노트북을 펼쳐 타자를 친다. 저 구석에는 피로에 지쳐 잠든 노인이, 다른 한편에는 여행 중이거나 새로운 곳으로 떠나는 듯한 이들이 보인다.


뉴욕 지하철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지만, 누구에게나 같은 의미로 다가오지는 않는 공간이었다.




기차가 또 한대 지나간다. 창밖으로 번쩍 빛이 스친다. 여행의 끝자락, 피곤한 다리를 이끌고 석양을 바라보며 그동안의 여정을 되새긴다. 그리고 한층 단단해진 나 자신을 발견하며 고요한 행복을 느낀다.


이 순간이 바로 혼자 떠나는 여행의 매력이 아닐까.


<여름에서 가을로 가는 중> 매거진은 매일매일 저의 다양한 기억을 소환해 보려는 시도입니다. 이 과정에서 잊고 있던 소중한 추억과 행복했던 기억, 제 곁을 지켜준 사람들을 떠올려 보려 합니다. 독자 여러분의 다양한 의견이나 공감하는 내용이 있으시면 댓글로 남겨 주세요.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