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석에 따라 상황은 변한다
“언니를 이기려고 하면 어떡해? 동생인 네가 참아야지."
"네가 누나니까 동생에게 양보해야지?"
삼 남매 중 둘째인 나는 항상 손해를 보며 자랐다고 생각했다. 언니는 언니라서 남동생은 동생이니까 둘째가 물러서야 했기 때문이다.
어릴 적 집에 여유가 없었던 것도 아닌데 나는 항상 언니의 작아진 옷을 물려받아야 했고, 남동생이 태어날 때까지 짧은 커트머리와 바지를 주로 입어야 했다. 나도 언니처럼 레이스가 나풀거리는 원피스를 입고 싶었고, 긴 머리를 핑크색 리본으로 묶고 싶었는데 말이다.
둘째 딸이라 부모님의 관심에서도 항상 후순위로 밀렸다. 음악을 하던 언니에게 온통 신경을 쓰시던 엄마께 둘째는 그저 투명인간이었다. 아들인 동생은 언제나 맘껏 챙겨주지 못해 미안해하셨고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막둥이였다.
결국 둘째는 부모님의 도움 없이 일처리를 해 나가는데 익숙해졌다. 언제 어디서나 스스로 생존법을 찾아내는 데도 탁월한 능력을 지니게 됐다.
이제와 돌이켜 보면 결국 둘째라 손해를 봤다기보다는 둘째 딸로 자랐기 때문에 세상에 맞서 스스로 살아가는 자립심을 키울 수 있었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게다가 내 주장을 펼치기보다 위아래 사이에서 들어주고 공감하는 입장에 있다 보니 주변에서 성격이 원만하다는 칭찬도 많이 듣게 되었다.
언젠가 삼 형제가 모여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허심탄회하게 털어놓은 적이 있다. 둘째만 자라면서 서럽고 힘들었던 게 아니었다.
첫째는 부모의 기대치가 높아 스트레스가 심했고, 막내는 아들이라 느끼는 부모에 대한 책임감이 부담됐다고 했다. 상대적으로 둘째는 본인만 생각하며 하고 싶은 걸 다 하며 살아가는 모습이 오히려 부러웠다는 것이다.
둘째 딸로 자라면서 항상 마음속 응어리로 갖고 있던 오해가 어쩌면 나만의 착각이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한때 정주행 했던 <응답하라 1988> 드라마 중 “착각은 짧지만, 오해는 길다. 그리하여, 착각은 자유지만 오해는 금물이다"란 대사가 생각났다.
사람들은 주관적으로 상황을 판단하고 착각하기 때문에 오해를 갖고 살아가는지도 모른다.
니체는 "사실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존재하는 것은 해석뿐이다"라고 했다. 같은 상황도 사람마다 다르게 해석될 수 있기 때문에 지금도 곳곳에서 혼란이 거듭되는 건 아닐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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