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勞: 폭삭 속았수다 우리 모두

서로를 보듬어 준 커다란 울림

by 열음

“엄마랑 할머니, 그리고 내 이야기인 줄 알았어. 아빠는 또 왜 이렇게 우리 아빠 같아, 짜증 나게...” 페이스타임 속 딸아이가 차마 얼굴을 보여주지 못한 채 목이 잠겨 운을 띄운다. 무슨 일인가 싶어 새벽잠에서 화들짝 놀라 깼다. 요즘 화제의 드라마 마지막 4화를 저 멀리 타국에서 먼저 챙겨 본 딸아이의 솔직 후담이다.


뉴욕에서 잠시 만났다가 공항에서 눈물로 헤어진 지 갓 사흘이 지난 오늘, 스물여섯 딸아이와 한 드라마를 통해 1만 Km 거리 차를 바로 옆 온기로 보듬었다. 탄탄한 플롯, 꼼꼼한 시대적 고증, 뛰어난 연출, 그리고 폭발적인 연기력이 완전체를 이룬 우수한 드라마 덕분이다.




힘든 역경을 딛고 시대를 살아낸 문학소녀 애순, 어려운 경제 상황에도 부모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란 금명, 그들을 묵묵히 지켜낸 관식의 이야기는 우리 세대에 공감을 주는 이야기로 그득했다. 독특한 제목이 의미하는 ‘수고했다’는 뜻을 알게 했고, 부모세대와 자녀세대의 엄청난 간극을 단숨에 하나로 이어주는 따뜻한 매개체가 됐다.


특히 금명의 세대가 딱 내 나이와 오버랩돼 당시 대입, 취업, 시대상황을 떠올리게 했고, 대학생 철부지 때 이야기는 마치 우리 딸아이의 몇 년 전 모습과 흡사해 몰입감이 배가 되었다. 게다가 가을 편(9-12화)은 나와 딸아이가 때마침 뉴욕 호텔방에서 함께 시청할 수 있어서 자칫 낯설 수 있는 옛날 이야기보따리를 아이에게 한바탕 풀어놓을 수 있었다. 덕분에 딸아이의 공감 포인트가 더 넓어졌던 것 같다.


금명이 결혼식 장면은 내가 결혼한 시기와 비슷해 흥미로웠다. 당시 웨딩드레스며 결혼식 당일 새벽에 식장으로 이동하며 부모님께 내뱉은 뾰족한 말들, 지금은 돌아가신 우리 아빠와 웨딩마치를 연습했던 오래전 그날을 떠오르게 했다. 남편은 나와 달리 이 장면을 보며 머지않아 겪게 될 딸아이의 결혼식 날을 상상했다고 했다. 남편이 느닷없이 딸아이에게 전화해 말한다. “딸! 타지에서 힘들거나 수틀리면 빠꾸, 아빠 여기 서 있을게. “




딸아이와 작별의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에 이 드라마 마지막 네 편을 연이어 시청해서 그런지 딸아이와 마찬가지로 나의 눈물 버튼이 모두 다 눌려졌다. 따뜻한 드라마 덕분에 멀리 떨어져 있는 우리 가족이 하나로 더 단단하게 연결되었다. 친정 엄마께도 괜히 전화 한 통 넣어본다.


자식으로 부모로 살아온 우리 모두 “폭삭 속았수다!” 달콤 쌉쌀한, 그러면서 훈훈한 주말이 그렇게 지나갔다.


60년대부터 현재까지의 엄청난 대서사를 이리도 말캉말캉하게 잘 엮어낸 제작진에게 경의를 표한다.


<여름에서 가을로 가는 중> 은 일상에 대한 고찰 및 다양한 기억을 소환해 보려는 시도입니다. 이 과정에서 하루를 기록하고 잊고 있던 소중한 추억과 행복했던 기억, 제 곁을 지켜준 사람들을 떠올려 보려 합니다. 독자 여러분의 다양한 의견이나 공감하는 내용이 있으시면 댓글로 남겨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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