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원점으로... Life is a journey
"이제 다시 제자리로 돌아갈 때가 된 것 같지?"
1년일 줄 알고 나왔던 미국 생활이 아이의 교육과 합을 맞추다 보니 어느새 15년이 지났다. 이제 우리가 떠나온 그 자리로 돌아가야 할 때다.
쥬쥬는 무사히 원하는 대학에 진학했다.
대학 합격 발표일에 겪은 숨 막히는 긴장감, 합격을 확인한 순간의 희열, 최종 한 학교를 선택해야 하는 결정의 순간까지...
치열했던 대학 입시 과정을 겪은 아이는 그동안 익숙해진 실리콘밸리 근방의 학교가 아닌 비행기로 한참을 날아가야 하는 동부 쪽에서 대학 생활을 해보고 싶어 했다. 부모 입장에서는 집은 떠나더라도 자동차로 언제든 달려가면 볼 수 있는 곳으로 가기를 원했다. 하지만 쥬쥬는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곳에서 진정한 홀로서기를 꿈꿨던 모양이다.
자식 이기는 부모는 없다고 했던가... 우리는 결국 쥬쥬에게 설득되었고, 아이의 뜻을 지지해 주기로 했다.
대학에 쥬쥬를 홀로 남겨 둔 채 남편과 나는 비행기 대신 자동차를 렌트해 실리콘밸리로 향했다.
러쉬모어(Mount Rushmore National Memorial)의 웅장함, 유타-애리조나 보더에 위치한 마뉴먼트밸리(Monument Valley)가 주는 자연의 신비로움, 그랜드캐년, 브라이스캐년, 아치 등 거대한 캐년들 앞에서 인간의 한없이 작아짐을 온몸으로 느꼈다.
초자연의 곳곳을 마주하며 우리 부부는 아이가 태어나면서부터 유치원과 초등학교, 중고등학교를 지내기까지 지난 18년간 키우며 겪었던 이런저런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서로가 기억하는 조각을 꿰어 맞추고, 공유하며, 울다가, 웃다가, 눈물 콧물 다 짜며 허전함을 달랬다.
유난히 눈물이 많은 나와 무덤덤하지만 속 정이 깊은 남편은 이렇게 아이가 떠난 텅 빈 집을 마주하기에 앞서 몇 날 며칠을 길에서 헤매다 마침내 실리콘밸리로 돌아왔다.
우리 가족은 각자 자리의 일상으로 복귀했고, 틈틈이 영상통화를 하며 아이의 대학 생활을 함께했다. 방학마다 쥬쥬는 집에 돌아왔고, 그렇게 만났다 헤어지기를 반복하다 보니 어느새 4년이란 시간이 훌쩍 지났다. 그 사이 COVID-19라는 사상 초유의 사태를 맞아 온라인을 통한 비대면 졸업식도 경험했다.
감사하게도 쥬쥬는 여러 가지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무사히 공부를 마치고 원하는 분야로의 사회 첫 발을 내디뎠다.
“한 학년 올라갈 때마다 부모는 아이에게서 한 발자국씩 뒤로 물러나는 겁니다.”
한 교육 전문가가 했던 말이 생각난다. 자녀가 한 학년씩 올라갈 때마다 부모는 반대로 한 발자국씩 뒤로 물러나야만 자녀가 성인으로서 온전히 홀로 설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자식은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이 잠시 맡겨 둔 것이라고 한다. 지금까지 아이가 제 트랙에서 올바로 달릴 수 있도록 곁에서 함께해 왔다면, 이제부터는 홀로 힘차게 달려갈 수 있도록 뒤로 물러나 아이의 미래를 응원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실리콘밸리 키즈 키우기>라는 긴 터널을 지나 이제 남편과 나는 다시 우리 땅으로 돌아왔다. 아이의 멋진 커리어우먼으로서 제2의 홀로서기를 응원하며…
그리고 나는 지금 한국의 실리콘밸리, 판교의 한 커피숍에서 이 글을 쓰고 있다.
“Life is a journey, not a destination.”
그동안 <실리콘밸리 키즈 키우기> 연재를 응원해 주신 독자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이번 연재는 제가 귀국한 후 실리콘밸리에서의 생활을 정리해 보기 위해 오래간만에 글쓰기에 도전한 첫 시도였습니다. 여러모로 부족한 부분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응원 보내주시고 관심 가져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