生: 오여사님의 값진 인생

엄마의 산수연을 축하하며

by 열음

첫눈이 소복이 내리던 지난 12월, 엄마의 산수연을 무사히 마쳤다.


몇 해 전 아빠가 허망하게 가시고 부모님과 함께하는 매 순간이 더없이 소중함을 알았다. 엄마의 가장 젊은 날인 오늘, 네 번째 스무 살을 제대로 '축하'해 드리고 싶었다. 어쩌면 이번 행사는 우리 엄마, 오여사님을 주인공으로 한 생애 첫 번째 공식 행사란 생각이 들었다.




홀로 되신 후 번잡함을 싫어하시는 엄마 뜻에 따라 친가와 외가의 직계 형제 20여 분만 초청하기로 한다. 간단한 카톡버전 초대장을 만들고 친척분들께 일일이 전화를 걸어 참석여부를 확인했다.


최소 70세 이상의 고령 게스트들이라 특별히 오시는 길과 교통편이 복잡하지 않은 장소로 심사숙고해 결정했다. 행사를 위한 배너와 떡케이크, 오신 분들을 위한 답례품도 주문했다. 식사 메뉴도 어르신들의 건강에 누가 안 되는 종류로 엄선했다.




마지막 비장의 무기로 엄마의 일생을 담은 영상물 제작에 도전했다.


엄마가 문갑 서랍에 소중하게 간직하고 계신 빛바랜 결혼사진부터 삼촌, 이모를 통해 얻은 처음 보는 엄마의 10대 사진, 우리 형제들이 가지고 있던 엄마의 2-30대 사진까지....


모으고 모으다 보니 그녀가 살아온 지난 80년 인생이 하나둘씩 되살아 났다.


엄마 인생의 스토리보드를 만들고, 사진을 배치하고, 음악을 입히고, 며칠밤을 새워 영상 편집을 마쳤다. 전문가 솜씨에 비하면 여러모로 서툴고 어설펐지만 엄마를 주인공으로 한 '인생 영화' 한편이 완성됐다.




행사날이 밝았다. 오늘따라 공기의 감촉이 사뭇 다르게 느껴졌다. 우리 형제들과 조카들, 그리고 잠시 입국한 딸아이까지 오늘을 축하하기 위해 모인 자랑스러운 엄마의 자손들이 오늘의 주인공을 엄호했다.


친척분들이 하나둘씩 모이셨다. 오랜만에 뵙는 친척 중에는 비교적 평안한 노후를 보내시는 분도 보이고, 세월의 무게를 힘겹게 버티는 분도 계셨다. 감사하게도 모두 아빠의 빈자리를 대신해 엄마의 산수연을 축하해 주셨다.




엄마의 동영상은 대성공이었다. 엄마를 비롯한 친척들의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친척들의 회상과 덕담이 이어졌고 영화 ‘The End’와 함께 지난 80년 그녀의 인생이 값지게 갈무리 지어졌다.


"꽃보다 예쁜 우리 엄마, 80번째 생신 축하해요! 건강하게 오래오래 곁에 계셔 주세요!”


<여름에서 가을로 가는 중> 매거진은 매일매일 저의 다양한 기억을 소환해 보려는 시도입니다. 이 과정에서 잊고 있던 소중한 추억과 행복했던 기억, 제 곁을 지켜준 사람들을 떠올려 보려 합니다. 독자 여러분의 다양한 의견이나 공감하는 내용이 있으시면 댓글로 남겨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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