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움의 미학
청소는 비움이다.
오랜만에 아침 일찍 창문을 열고 대청소에 나섰다. 1월 중순을 막 지난 한 겨울의 차디찬 바깥공기가 왠지 상쾌하게 느껴진다.
공부가 주업이던 시절, 나는 공부 시작 전에 일단 책상 정리를 하곤 했다. 그동안 쌓였던 뽀얀 먼지를 걷어내고, 이미 필요 없어진 지나간 자료들을 모두 치운다.
가끔은 너무 열심히 청소를 한 나머지 막상 하려던 공부가 시작되기도 전에 지쳐 버린 경우도 있다. 하지만 깨끗이 정리된 책상을 보면 내 맘 속의 묵은 때까지 다 벗겨낸 느낌이 들었다. 싸악 비우고 나면 그다음 채울 거리에 대한 목표가 생긴다.
그렇다고 내가 결벽주의자나 항상 이렇게 깨끗한 책상을 유지하는 건 결코 아니다. 내가 원할 때, 내가 하고 싶을 때, 내가 필요로 할 때만 청소를 한다.
만약 내가 모르는 사이 내 책상이 정리되어 있거나 누군가에 의해 억지로 청소를 강요받는다면 나의 분노 지수가 높게 올라간다. 내 정리에는 나만의 룰이 있기 때문이다.
어릴 적, 학교에 간 사이에 엄마는 내 책상을 정리해 주시곤 했다. 내가 책상만은 건드리지 말아 달라고 그토록 부탁했건만.…
엄마는 엄마의 방식대로 책상을 정리하고, 당신의 중요도에 따라 위치를 바꿔놓으셨다. 검증은 안되지만 내 책상 위 일기장도 가끔 들춰 보시고, 책상 위에 붙여놓은 쪽지들도 걸레질하다 떨어뜨려 놓으시기도 했다.
이런 날, 나는 "엄마!"를 앙칼지게 부르고 불같이 화를 내곤 했다. 하지만 엄마의 청소 본능은 크게 변하지 않았던 걸로 기억한다. 엄마는 그렇게 엄마 나름대로의 비움을 해 나가셨던 게지.…
회사에 있는 내 책상 위에는 항상 자료가 그득 쌓여있었다. 노트북을 사이에 두고 오른쪽은 오늘 해야 할 일, 왼쪽은 필요한 자료, 책상 앞 파티션에는 형형색색의 포스트잇이 해야 할 일의 우선순위를 표시하며 붙어있었다.
나는 이 난잡한 환경을 사랑했다. 이렇게 쌓여있는 일들을 하나씩 처리해 내고 나면 날을 정해 깨끗하게 책상 위를 정리하곤 했다.
하루는 상무님이 지나가다 "김 차장, 오늘 기분 좋은 일이 있나 봐. 그럴 때마다 책상이 저리 눈이 부시게 변하네?"하고 껄껄 웃으신다.
그렇다. 그렇게 난 티를 내며 가끔씩 청소를 했다. 비우고 싶을 때는 확실하게.…
몸도 마찬가지다. 레몬다이어트에 도전한 적이 있었다. 아니, 여러 번 시도하곤 했다.
지방이 지나치게 축적됐다고 느끼거나, 중요한 일이 있어 사이즈를 좀 줄이고 싶을 때, 입고 싶은 옷이 생겼을 때 나는 정기적으로 레몬다이어트에 도전한다. 10일 동안 열심히 몸속을 청소하는 루틴으로 내겐 꽤 잘 맞는 다이어트 치트키다.
이렇게 몸을 깨끗하게 하고 나면 체중만 줄어드는 게 아니다. 몸속 노폐물이 모두 깨끗하게 청소된다. 피부도 좋아지고, 위도 줄어들어 몸도 가볍다. 다만 머리숱도 함께 정리되는 게 문제라면 문제랄까...
정기적인 몸과 마음, 나를 둘러싼 주변의 청소... 비워야 채워진다. 나의 삶의 루틴이다.
새해도 밝았는데 슬슬 레몬다이어트를 시작해 볼까나?
<여름에서 가을로 가는 중> 매거진은 매일매일 저의 다양한 기억을 소환해 보려는 시도입니다. 이 과정에서 잊고 있던 소중한 추억과 행복했던 기억, 제 곁을 지켜준 사람들을 떠올려 보려 합니다. 독자 여러분의 다양한 의견이나 공감하는 내용이 있으시면 댓글로 남겨 주세요.